남성 디자이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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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10면

가끔 텔리비전 드라마의 장면에 남성의상 디자이너 혹은 남성 헤어디자이너가 등장할 때마다 똑같은 거북스러움과 개운치 않은 뒷맛을 느끼곤 한다.
어째서 드라마 작가가 바뀌고 그때마다 내용도, 배우도 달라지는데 패션에 관련된 직업을 가진 남성이 등장 할 때마다 그려지는 이미지는 거의 같은지. 괘 한결같이 심히 꾸민 말투와 행동들을 하도록 시키는지 늘 의아함을 갖도록 만든다.
우리 패션 사의 초기에 활동을 시작했던 남성디자이너들의 행동이, 혹은 매스미디어에 등장하기를 즐기는 남성 디자이너들의 행태가 작가들에게 그와 같은 뚜렷한 이미지를 남겨놓았기 때문일까. 혹은 일반 대중들이 그런 인물들의 등장을 즐기고 있기 때문일까.
나는 우리 패션계에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남성 패션 인들을 떠올리며 비교해보곤 한다.
물론 그들은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남성들에 비해 미에 대한 강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선택하는 헤어스타일·의상·장신구에 대해 독특한 취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취향이 기괴한 취미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들의 직업은 여성의 겉차림을 꾸며주는 역할을 하는 관계로 여성 자체가 그들의 관심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행동과 언어가 여성과 유사해진다는 것은 굉장히1차 적인 발상이라고 여겨진다.
내가 굳이 이를 지적하는 이유는 나의 직업 동료들을 우스광스럽게 등장시키지 않아도 그들의 직업을 나타낼 수도 있고 드라마도 얼마든지 재미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나아가 드라마에 나타난 패션 디자이너들의 이미지로 인해 한국패션의 국제화 시대를 이끌어갈 아주 재능 있고 장래성 밝은 차세대 패션디자이너들의 등장이 조금이라도 저해 받는다면 얼마나 국가적인 손실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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