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보 위협하는 「유령환자」 의혹(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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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현행 의료보험이 전체 국민의 의료접근을 쉽게 했다는 긍정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형평성과 효율성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계속돼 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거의 한 세기에 걸쳐 발전·정착된 선진국에 비해 우리의 의료보험 역사가 겨우 14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과정상의 시행착오와 진통으로 간주하고 점진적 개선에 기대를 걸어왔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환자측 입장에서 자기가 원하는 의료기관에서 적절한 시기에 진료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의료서비스의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개선되지 못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최근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이라는 단체가 의료보험 연합회자료를 기초로 한 조사가 바로 그런 실상을 극명히 보여준다. 이 자료에 따르면 월평균 진료비가 2천만원 이상인 의원급 진료기관에서 의사 1인당 하루 진료환자 수가 평균 1백54명에 이른다. 하루 3백명 가량을 진료하는 의사도 40개 기관에 이르고 무려 5백26명을 진료하는 이비인후과 의사도 있다고 한다.
전체 평균으로 의사 1인이 하루 1백54명의 환자를 진료하는 경우 하루 8시간 근무라면 환자 1인당 진료시간이 3분을 약간 넘을 뿐이다. 의료계가 책정하는 의사의 하루 적정한 진료환자수 45명에 비하면 무려 3배가 넘는 숫자다. 이러한 실정은 부실진료라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조사를 실시한 소비단체의 지적도 있듯이 이 숫자 자체의 신빙성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의사 1인 진료환자수가 5백명을 넘는다는 것은 환자 1인당 진료시간이 1분 정도인 셈인데 그것으로 의료행위 자체가 가능하냐 하는 의문이다. 더욱이나 종합병원도 아닌 의원급 진료기관을 대상으로 한 조사이기에 믿기 어려운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숫자는 두가지 관점에서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늘어나는 의료수요 때문에 환자가 급증하고 이를 진료할 기관 및 의료인이 태부족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둘째는 의료인이 수입을 올리기 위해 유령환자를 진료한 것처럼 보험금 지급 청구서류를 허위로 작성했을 것이라는 혐의다.
만약 보험진료기관과 진료의사의 부족때문이라면 부실진료를 막기 위해 정부는 의료인력 수급계획을 다시 검토하여 가능한한 조속한 시일안에 이 부족현상을 개선하는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진료기관의 부도덕한 범법행위라면 이는 응분의 제재와 예방수단이 강구돼야 한다. 의료보험료는 해마다 오르는데 의료서비스는 날로 부실해진다면 모처럼 실시된 의료보험제도 자체가 뿌리채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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