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현장 이 문제] "폐암 발병 원인 밝혀주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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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의 성성2통 사라리. 45가구에 불과한 이 마을은 요즘 '폐암 공포'에 휩싸여 있다.

2000년 朴모(당시 63세)씨가 폐암으로 죽은 데 이어 지난 9월 전 통장인 咸모(55)씨도 같은 병으로 세상을 등졌다.

또 60대 남자 주민 두명이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죽음을 앞두고 있다. 그 외에도 인후염 등 호흡기 질병을 앓은 주민들이 한 둘이 아니다.

마을 통장 서정덕(46)씨는 "폐암 선고를 받는 주민이 언제 또 나올지 모르겠다"며 "기침만 해도 '혹시…'하며 서로 의심한다"고 말했다.

?나빠진 마을 환경=이제까지 폐암에 걸린 네명은 모두 흡연자였다.

그러나 주민들은 최근 악화된 마을 주변 환경이 발병 주원인이라고 의심한다.

이 마을의 북쪽에 있는 제 2공단엔 10년 전부터 유가공 업체 등 53곳이 입주해 있고, 남쪽 제 3공단엔 제약회사와 컴퓨터 모니터 및 벽걸이TV 제조업체 등 3개사가 4년 전부터 자리잡고 있는데 3공단 쪽에서 이유를 알 수 악취가 날아 온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특히 여름철 남동풍이 불 때는 더욱 심해진다고 한다.

공단 입주 업체들의 특성상 주변 공기를 오염시킬 만한 물질을 배출할 가능성이 희박한 것을 감안할 때 이 같은 악취는 3공단에서 1km쯤 떨어진 폐기물매립장과 백석동 쓰레기소각장에서 날아오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공장 오폐수 처리 뒤 남은 슬러지(찌꺼기)를 매립하는 폐기물매립장 부근에 가면 악취가 진동한다.

주민들은 또 2001년 마을 앞에 개통된 왕복 8차선 번영로를 오가는 하루 8천여대 차량의 매연과 먼지도 원인으로 의심한다.

咸씨의 부인 李모(51)씨는 "여름 내내 역겨운 냄새와 혼탁한 공기에 거의 질식할 지경"이라며 "평소 건강했던 남편도 갑자기 1년 전 폐암에 걸려 세상을 떴다"며 환경 악화를 발병 원인으로 지목했다.

徐통장도 "도로와 가까운 포도밭에서 일하다 보면 흰 장갑이 금새 먼지로 새카맣게 변한다"고 말했다.

마을이 주변보다 5~7m 낮은 저지대이다 보니 날씨가 저기압일 때는 온통 스모그로 뒤덮이곤 한다.

4년 전 이곳에 이사왔다는 李모(54)씨는 "심할 때는 숨쉬기조차 힘들다"며 "최근 인후염으로 자주 병원을 찾는다"고 말했다.

?발병원인 논란=발병원인 제공자로 지목받는 공단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4~10년 동안 공장을 가동해 왔는데 치명적인 오염물질을 배출했다면 수천명의 근로자 가운데 왜 지금까지 폐암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폐기물매립장을 관리하는 충남도 환경관리과도 "지난해 정기점검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천안 단국대병원 노상철 교수(36.산업의학과)는 "폐암은 유해 물질에 장기적으로 노출될 때 발병할 확률이 높으므로 현재로선 발병원인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할 수 없다"며 "주민들의 피부 및 호흡기 질환 등에 대한 병력 조사와 함께 주변 유해물질에 대한 정밀 환경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천안시에 역학조사와 함께 집단 이주 등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시는 조그만 마을에 폐암환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것과 관련, 역학조사의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으나 예산 부족으로 아직 조사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

천안=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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