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車 46% 늘었는데…'검머외' 혼다 어코드의 고민 [주말車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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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어코드 11세대 완전 변경모델이 지난해 10월 국내에 하이브리드와 가솔린 모델로 각각 출시됐다. 사진 혼다코리아

혼다 어코드 11세대 완전 변경모델이 지난해 10월 국내에 하이브리드와 가솔린 모델로 각각 출시됐다. 사진 혼다코리아

혼다의 중형 세단 ‘어코드’는 1976년 첫 생산 이후 반백 년 가까이 일본 차의 자존심을 지켰다. 자동차 시장 개방 이후 ‘한국에 정식 수입된 첫 일본 차’(1989년) 타이틀도 갖고 있다. 다만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끈 적은 없다.

어코드 11세대 완전 변경모델이 지난해 10월 국내에서 하이브리드와 가솔린 모델로 각각 출시됐다. 최근 완성차 시장에서 내연기관과 전기차의 장점을 모두 갖춘 ‘하이브리드 차량’이 대세로 떠올랐지만, ‘어코드 하이브리드’는 지난달까지 370여 대 팔리는 데 그쳤다. 왜 이렇게 인기가 없을까. ‘어코드 하이브리드’를 타고 서울~강원 인제 등 총 350㎞ 거리를 달리며 그 이유를 찾아봤다.

내부 공간 넓어…콕핏은 아날로그 감성

신형 혼다 어코드는 차량 내부 공간 활용이 뛰어나다. 신장 185㎝ 남성이 2열 레그룸에 앉아도 넉넉할 정도다. 사진 혼다코리아

신형 혼다 어코드는 차량 내부 공간 활용이 뛰어나다. 신장 185㎝ 남성이 2열 레그룸에 앉아도 넉넉할 정도다. 사진 혼다코리아

11세대 어코드는 넓다. 전장은 전 모델보다 65㎜ 길어진 4970㎜다. 중형차이지만 전폭·전고가 각각 1860㎜·1450㎜로, 현대차 준대형 세단 그랜저(전장 5035㎜, 전폭 1880㎜, 전고 1460㎜)보다 약간 작은 정도다. 외형은 차량 앞에서 사이드까지 ‘쭉 찢어진 모양’의 주행등 덕분에 날렵하고 와이드한 이미지가 더욱 두드러진다. 차량 내부 공간 활용도 뛰어나다. 신장 185㎝ 남성이 2열에 앉아서 발장구(?)를 칠 수 있을 정도로 레그룸이 넉넉하다.

하지만 콕핏(운전석)은 아직 과거에 머무는 느낌이다. 최근 신차들이 스크린으로 둘러싸인 ‘디지털 콕핏’을 주로 채택하는 것과 달리 어코드는 센터 디스플레이를 제외하곤 대부분 아날로그 물리 키를 채택했다. 익숙함이 운전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측면이 있지만, 첨단 차량이라는 느낌은 덜하다.

혼다 어코드 11세대 콕핏은 센터 디스플레이 외에는 대부분 아날로그 물리 키를 채택하고 있다. 사진 혼다코리아

혼다 어코드 11세대 콕핏은 센터 디스플레이 외에는 대부분 아날로그 물리 키를 채택하고 있다. 사진 혼다코리아

운전석에 앉자 시트 포지션은 푹 꺼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주행감과 응답 속도도 양호하다. 액셀을 밟으면 ‘차량과 내 몸이 한 몸인 듯’ 스르륵 미끄러져 나갔다. 고속도로에 들어선 뒤에는 차량의 덜컹거림이나 흔들림이 거의 없고, 코너링도 부드러웠다. 어느 상황에서도 운전자가 의도한 대로 차를 제어할 수 있게 도와주는 ‘모션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처음 적용됐다는 게 혼다 측의 설명이다.

알아서 ‘가다 서다’…편안한 주행보조

혼다 어코드의 엔진룸. 사진 혼다코리아

혼다 어코드의 엔진룸. 사진 혼다코리아

고속도로에선 각종 주행보조 기능 ‘혼다 센싱’이 운전자의 피로를 줄여줬다. 디지털 계기판에 주변 도로 상황이 표시되고, 정체 시에는 도로 상황에 따라 차량이 알아서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새롭게 적용된 ‘트래픽 잼 어시스트’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하이브리드 차량인 만큼 시속 50㎞ 이하에서 전기 모터 동력으로 차량이 움직이고 그 범위를 넘어서면 내연기관 엔진이 작동하는데, 전기-내연기관 전환도 부드러웠다. 일부 하이브리드 차는 전기 모터와 내연기관 엔진이 함께 돌 때 갑자기 차가 출렁이는 일도 있는데, 어코드는 그렇지 않았다.

혼다 어코드 하이브리드의 에너지 흐름도. 사진 혼다코리아

혼다 어코드 하이브리드의 에너지 흐름도. 사진 혼다코리아

350㎞를 달린 뒤 계기판에 표시된 연비는 리터당 19㎞였다. 하이브리드의 장점은 전기차처럼 따로 배터리를 충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엔진 주행 때 알아서 배터리를 충전해주기 때문이다.

‘한미 FTA’ 덕 보려 했지만…가격만 높아졌다

혼다 어코드의 최대 단점은 ‘5340만원’이라는 높은 가격이다. 하이브리드차는 ‘무공해차 구매 보조금’ 혜택도 폐지돼 이 돈을 고스란히 내야 한다. 30여년 만의 ‘수퍼 엔저’(달러 대비 일본 엔화 약세)임을 고려하면 혼다의 차량가격은 지나치게 높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어느정도 이해는 간다. 국내 수입되는 혼다 어코드는 미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이른바 ‘검은 머리 외국 차’다. 때문에 생산비·물류비 등 비용 면에서는 불리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무관세 혜택을 누리기 위해 택한 전략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출고가를 높이는 악수가 됐다.

혼다 어코드 11세대 완전 변경모델 뒷면. 사진 혼다코리아

혼다 어코드 11세대 완전 변경모델 뒷면. 사진 혼다코리아

최근 하이브리드차는 ‘기름 적게 먹는 차’라는 기본 인식에서 나아가, 성장이 둔화한 전기차 시장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고 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하이브리드차량 등록 대수는 30만9164대로, 전년보다 46.3% 증가했다.

일본 차는 하이브리드차에서 강점을 보여왔는데, 혼다는 한국 시장에서는 실력을 뽐내지 못했다. 지난해 토요타(렉서스 포함)는 하이브리드차를 앞세워 한국에서 2만2056대의 판매고를 올렸지만, 국내에 내연기관차만 내놓은 혼다의 판매량은 1385대에 그쳤다. ‘노 재팬 사건’(2019년 한·일 무역분쟁)의 여파가 잦아든 뒤 하이브리드차의 출시 여부가 두 일본 차 회사의 실적을 갈랐다.

혼다 어코드는 성능면에서 ‘장점도 없지만, 단점도 없는 차’다. 특별히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진 않지만, 디자인·안전성·완성도 등 빠지는 것도 없다. 탄탄한 기본기를 갖췄다는 의미다. 국내에 불어오기 시작한 ‘하이브리드 바람’에 어떻게 편승할지가, 혼다의 남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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