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청, ‘KF-21 인니 분담금’ 1조원 삭감 수용…기술 이전도 축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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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정부가 한국형 전투기 KF-21 사업의 공동 개발국인 인도네시아 기술진이 기밀 유출 수사를 받는 가운데 ‘개발 분담금을 덜 내고 기술도 덜 받겠다’는 인도네시아 측 제안을 사실상 수용하기로 했다. 분담금 삭감과 기술 유출 시도는 별개 문제라면서다.

방위사업청은 8일 “인도네시아가 KF-21 체계 개발 종료 시점인 2026년까지 6000억원을 내는 것으로 분담금 조정을 제안했고, 제안대로 조정을 추진 중”이라며 “조정된 분담금 규모에 맞춰 인도네시아로의 기술 이전 가치 규모도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방사청은 국방부·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와 협의를 거친 뒤 이르면 이달 말 열리는 방위사업추진위원회 회의에서 최종 결정을 내릴 계획이다.

방사청에 따르면 당초 인도네시아는 2026년까지 전체 개발 비용 중 60%에 해당하는 1조6000억원을 분담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4000억원을 냈고, 2000억원만 더 내겠다고 최근 제안했다.

인도네시아 측의 책임 미이행을 받아들이기로 한 이유에 대해 노지만 방사청 한국형전투기사업단장은 “체계 개발 시기와 전력화 임박 시점에서 인도네시아 측의 분담금 미납과 의사 결정 지연이 지속되면 KF-21 전력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분담금을 더 받겠다고 시간을 끄느니,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전력화에 집중하겠다는 취지다.

방사청은 인도네시아가 당초 약속보다 1조원을 덜 내기로 했지만, 실제 공백 비용은 5000억원 규모라고 설명했다. 개발 과정에서 비용 절감이 이뤄져 전체 개발비가 8조1000억원에서 7조6000억원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연구진의 노력으로 이뤄낸 비용 절감 혜택을 인도네시아가 보는 결과로 이어진다. 한국 측에서 재정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기술을 덜 주는 방안’과 관련해서도 인도네시아가 KF-21의 핵심 기술을 이미 빼돌렸다면 이제 와서 이전받는 기술의 규모를 줄이는 건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실제 경찰은 인도네시아 기술진이 지난 1월 비인가 USB 여러 개를 지니고 있다가 적발된 사건을 놓고 기술 유출 사건이 조직적·계획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에 대해 방사청은 “시스템적으로 e메일 등이 통제돼 (빠져나간 내용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당시 적발된 USB에는 무단 촬영한 설계도면과 인도네시아어로 작성된 보고서 등 6600건의 자료가 담긴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관계자는 “인도네시아가 아세안(ASEAN) 맹주 국가로서 미치는 영향력을 무시하기 어렵다”며 “고민을 거듭하다 내린 선택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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