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1500년 역사의 손님 접대 음식,사자머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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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머리를 닮은 돼지고기 미트볼 스즈터우(獅子頭). 바이두(百度)

사자 머리를 닮은 돼지고기 미트볼 스즈터우(獅子頭). 바이두(百度)

스즈터우(獅子頭), 우리말로 사자 머리라고 하는 중국 요리가 있다. 한국의 중국 음식점에서도 간혹 볼 수 있다. 돼지머리처럼 설마 진짜 사자 머리로 요리했다고 믿을 사람 아무도 없겠지만 이름만 거창할 뿐 사자 머리와는 하나도 관계없다. 하다못해 생김새도 닮지 않았다.

사자 머리는 알고 보면 일종의 돼지고기 미트볼이다. 물론 서양 미트볼과 비교해 중국적 특징은 있다. 유럽 미트볼은 일반적으로 작은 편이다. 역사적으로 부스러기 고기를 뭉쳐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미국 미트볼은 훨씬 크다. 아기 주먹만 하다. 미국에 이민 온 가난한 남부 이탈리아인들이 고향에서는 먹을 수 없었던 미트볼의 한을 풀기 위해 큼직하게 만든 것이 유래라는 속설이 있다. 하지만 중국식 미트볼인 사자 머리는 더 크다. 어른 주먹만 하다. 중국식 미트볼은 왜 이렇게 커졌으며 왜 사자 머리라는 엄청난 이름을 지었을까?

이름과 달리 사자 머리는 돼지고기 완자에 지나지 않기에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내력이 거창하다. 일단 뿌리가 깊다. 중국 음식 사학자들은 대략 1500년 전의 농업서 6세기 『제민요술』에 나오는 도환적(跳丸炙)을 그 기원으로 꼽는다. 도환이란 뭉친 눈사람처럼 공을 굴리며 노는 옛날 중국 놀이다.

제민요술에는 『식경』에 이르기를 양고기와 돼지고기를 다져 생강, 귤껍질, 파 등과 함께 섞어 탄환처럼 만들어 굽는다고 요리법이 적혀 있다. 얼핏 보면 그저 그런 고기완자처럼 보이지만 1500년 전 생강이나 귤껍질 등은 값비싼 고급 향신료였다. 그렇기에 상류층의 고급 요리였음을 알 수 있고 지금은 사라진 식경에 실려있다니 그 시대의 연회 요리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요리는 두 번째로 중원을 통일한 수양제 때 새로운 요리로 거듭난다. 지금의 산시성 서안인 장안에서 멀리 떨어진 장쑤성 양주를 잇는 대운하를 건설한 수양제는 후궁과 신하를 이끌고 양주로 시찰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양주의 4대 절경인 만송산(萬松山), 금전돈(金錢墩), 상아림(象牙林), 규화강(葵花崗)을 돌아본 후 요리사를 불러 자신의 양주 여행을 기념하는 요리를 만들라고 명령했다. 옛날 중국에서는 멋있는 경치를 요리로 표현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만송산을 본 딴 생선 요리 송서계어(松鼠桂魚). 바이두(百度)

만송산을 본 딴 생선 요리 송서계어(松鼠桂魚). 바이두(百度)

요리사가 고민 끝에 만든 요리가 만송산을 본뜬 생선 요리인 송서계어(松鼠桂魚), 금전돈을 그려낸 새우 요리 금전하병(金錢蝦餠), 상아림을 요리로 표현한 닭고기 상아계조(象牙鷄條) 규화강의 모습을 나타낸 돼지고기 완자 규화헌육(葵花獻肉)이다. 여기서 규화는 해바라기이니 얼핏 수사자 머리와도 닮은꼴이다. 네 가지 요리를 맛본 수양제가 만족해 기뻐하면서 신하를 모아 잔치를 벌였는데 이때부터 장안의 높은 벼슬아치들은 손님을 초대하면 이 요리를 내놓으면서 명품요리가 됐다.

세월이 흘러 수나라가 망하고 당나라가 들어섰다. 사치를 즐기며 악명이 높았던 측천무후의 간신 환국공 역시 손님을 초대해 호화판 연회를 열고 수양제가 즐겼다는 네 가지 요리를 차려냈다.

그런데 초대받은 손님 중 한 명이 규화헌육을 보며 “국공께서는 반평생 말을 달리며 전쟁터에서 보내셨는데 그 전공이 누구와도 견줄 바가 없으니 마땅히 사자의 띠를 두르실 자격이 있습니다”라며 아첨했다. 환국공이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손님들에게 “오늘 밤 연회에서 맺은 우정을 위해 앞으로 규화헌육을 사자 머리(獅子頭)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때 이후 돼지고기 완자 이름이 사자 머리가 됐다고 한다.

어쨌든 이런저런 역사가 전해지기 때문인지 사자 머리는 중국에서 손님 접대 요리로, 특히 개혁개방 이후 외국의 국빈 접대 요리로 자주 연회상에 올랐고 1992년 한중 수교회담이 열릴 때 오찬 요리로 나왔다.

미국과 중국 수교의 주역이었던 저우언라이 전 중국 총리도 사자 머리 완자를 특히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1976년 1월 사망하기 전의 저우언라이가 중국의 영빈관인 조어대의 특급 요리사를 찾으며 사자 머리 완자탕(淸湯獅子頭)을 먹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사자머리가 강소성 양주를 중심으로 한 회양요리고 양주는 저우언라이의 고향이었던 만큼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맛보고 싶었던 음식 역시 고향의 맛이 아니었나 싶다.

떨어지는 폭포수가 1km(飛流直下三千尺)나 된다는 이태백의 표현처럼 수사자 갈기만큼이나 부풀리기 좋아하는 중국이다. 돼지고기 완자인 사자 머리에도 1500년의 역사와 수많은 인물이 등장해 사실과 소문이 이리저리 얽히면서 입맛 돋우는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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