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에 전 주미대사 "북·일 관계개선, 한·미·일 협력보다 후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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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로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지구 전투에 이은 새로운 전쟁의 발발을 우려하고 있다. 그 가운데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을 국빈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나 자위대와 주일미군의 연계 강화 등 두 나라의 안보 협력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외교 전문가인 사사에 겐이치로(佐々江賢一郎·72) 전 주미 일본대사는 지난 15일 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런 세계 정세 속에서 “이제는 일본과 한국이 안보협력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미국은 현재 아시아 밖에서 벌어지는 충돌에 에너지를 쏟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 핵·미사일 위협, 북·러 군사협력 강화 문제 등에 공동의 위기 의식을 갖고 있는 한·일 양국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사에 겐이치로 전 주미 일본대사가 15일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사사에 겐이치로 전 주미 일본대사가 15일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사사에 전 대사는 일본 외무성에서 아시아대양주국장(6자회담 수석대표 겸임), 사무차관, 주미대사 등 요직을 거쳤다. 국가안보전략 등 ‘안보 3문서’ 개정을 위해 일본 정부가 지난 2022년 설치한 전문가회의의 좌장으로 일본 방위력의 근본적인 강화를 제안한 인물이다. 지난 8일 기시다 총리가 방미길에 오르던 날 관저로 불러 조언을 구했을 만큼 총리의 신뢰가 두텁다.

그는 최근 일본과 북한이 접근하는 분위기에 대해선 “미국과 한국이 대화의 문을 닫은 상황에서 대화 의지를 보이는 나라가 일본뿐이기 때문에 북한이 일본을 흔드는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현재 일본에 북한과 국교정상화가 우선순위가 높은 과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일·미·한 간 안보와 경제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번 미·일 정상회담 핵심은?
“일본은 2022년 국가안전보장전략 등 안보 3문서 개정을 통해 반격 능력(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비롯해 일본 안보 정책의 향후 방향을 제시했다. 이에 맞는 형태로 일·미 동맹을 강화한다는 것이 이번 안보 관련 합의의 핵심이다. 일·미 양국의 억지력 통합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미국을 바퀴의 ‘중심축’으로 두고 한·일 등 동아시아 동맹을 ‘바퀴살’로 보는 안보 개념)’의 면적이 보다 넓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일·한 관계 개선을 바탕으로 일·미·한 안보협력도 강화될 것이다.”

-일본이 방위력을 강화하는 이유는?
“방위력 강화와 일·미 동맹 강화 논의는 1990년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급진전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중국에 대한 위기 의식이 커졌다. 특히 2010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주변 해역에서의 중국 어선 충돌 사건과 2012년 센카쿠 열도 국유화에 따른 중국 선박의 영해 침범이 급증해 일본 국민이 큰 충격을 받았다. 여기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한 것이 결정타가 됐다. 상대적으로 미국의 힘이 약화하면서 일본이 자체적인 방위력 강화와 일·미 안보 체제를 근본적으로 업그레이드할 필요성이 증가했다.”

-한·일 간 협력도 조금씩 진전되고 있는 것 같다.
“냉전 시대에는 평화에 익숙하다 보니 안보에 느긋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기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북·러 간 군사적 협력 강화도 일·한 양국의 공통된 문제다. 양국은 한 배를 타고 있다. 늘 북한의 위협을 받으며 전쟁에 대비하고 있는 한국의 위기 의식에 일본이 이제 가까워졌다고 할 수도 있다. 일본이 억지력 강화를 위해 반격 능력 등을 갖추는 것은 동맹국이나 우방국과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1998년 일·한 공동선언(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일명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안보협력을 포함했지만 당시에는 현실성이 없었다. 이제 일·한이 안보협력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 같다.”

-최초의 미·일·필리핀 정상회담, 오커스(AUKUS, 미·영·호주)와의 협력 등이 ‘중국 포위망’이란 지적이 있다.
“중국의 군사적 확장 정책에 대한 반작용이지, 중국 포위망이 아니다.”

-한국에선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과거 일본의 군사적 확장 정책과는 전혀 다르다.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에서는 한 때 일본이 방위력을 강화하는 데 대한 경계가 있었지만, 현재는 이해하고 환영한다. 중국의 도전이 커졌고, 이 때문에 일본 미국과 관계 설정을 통해 외교적 균형을 잡아야할 필요성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스스로 전쟁을 도모하는 의지는 전혀 없다. 2차 대전 이후 자위대는 단 한 번도 포탄을 쏘지 않았다. 일본이 위협을 받았을 때 대응하는 수동적인 움직임일 뿐이다.”

-중동 정세가 긴박하다. 한·일 양국은 무엇을 해야 하나.
“일·한 양국 모두 에너지안보와 경제안보의 관점에서 중동에서 분쟁이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를 피하기 위해 모든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유엔에서 공동 보조를 취하고, 같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노력을 함께 서포트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의 동아시아에 대한 대비가 미흡해질 수 있을텐데.
“중동 정세는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미국이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에도 바쁘다. 이 때문에 일·한 양국이 동아시아에서 함께 억지력을 강화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북한이 북·일 관계에 관한 담화를 내놓은 시점은  한국 총선 직전이었다. 북한에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나.
“북한이 늘 하는 이간질에 편승해선 안 된다. 현재 미국이나 한국은 대화의 의지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 반면 북한과 대화하겠다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나라가 일본뿐이기 때문에 일본을 흔드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다만 핵과 미사일 문제는 미·북 협상이 핵심이고, 미·북 관계가 진전되지 않는 한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일·북 대화가 이뤄지면 지역 정세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실질적인 진전이 있을진 봐야 한다.”

-북·일 관계에 당분간 큰 진전이 없을 것이란 뜻인가.
“현재로썬 북한과 국교정상화가 우선순위가 높은 과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미·한 간 안보와 경제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다.또 납치 문제도 북·일 관계에서 피할 수 없는 문제다.”

-한국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하면서 일본에선 한·일 관계가 다시 악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외교를 국내 정치 도구로 이용해선 안 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견이 있는 건 당연하지만, 여야 간 외교정책이 크게 다르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민과 관계국이 휘둘리게 되고, 국가신뢰도도 떨어뜨린다. 한국 국민은 이런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사에 겐이치로(佐々江賢一郎)=2012~2018년 주미대사를 역임했으며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취임 전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회담 성사에 관여했다. 한·일 관계에 깊이 관여해 1998년 ‘한·일 공동선언’ 당시 외무성 담당 과장으로 초안을 작성했고, 사무차관 시절엔 위안부 합의의 밑그림이 된 이른바 ‘사사에안’을 제안했다. 현재 일본국제문제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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