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로 음표를 그리다…사진가 바키 "배고픈 예술가? 난 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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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예명 BAKI로 유명한 박귀섭 작가의 작업실 벽은 그의 포트폴리오다. 김종호 기자

예명 BAKI로 유명한 박귀섭 작가의 작업실 벽은 그의 포트폴리오다. 김종호 기자

카메라로 그림을 그린다. 박귀섭 작가 이야기다. 오선지인가 싶어 들여다보면 음표가 무용수다. 호수의 검은 돌인가 싶었더니, 웅크리고 있는 남자의 등. 예명 바키(BAKI)로 유명한 그를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작업실로 찾아갔다. 그는 다음달 4~12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전시 '레이어(LAYER)' 작업에 한창이다. 14회를 맞이한 대한민국 발레축제의 일환이다.

국립발레단 단원들로 오선지를 그린 박귀섭 작가의 작품.

박귀섭 작가의 작품. 발레무용수 김성민·류형수·용기·최선용·김명윤·김은실 씨.
무용수 프로필 사진도 찍는다. 박 작가가 찍은 김기민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

사진작가는 찍는 데는 익숙하지만 찍히는 데는 그렇지 않다. 박 작가는 예외다. 찍히는 데도 선수다. 사진기자가 1시간 가까이 촬영을 진행해도 지친 기색 없이 포즈와 표정을 다양히 취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출신이다. 무대를 위해 매일 갈고 닦은 아름다움을 관객을 위해 보여주는 게 직업이었다.

어린 시절 체육 선생님이 "유연하다"며 권한 게 발레 바(barre)를 잡은 계기가 됐다. 두각을 드러냈고, 솔리스트로 다양한 역을 맡았지만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스틸부터 동영상까지, 그는 보다 다양한 형태로 이미지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병행을 하다 결국 퇴단을 결심했다.

박귀섭 작가와 그의 카메라. 그의 예명 BAKI는 어린 시절 별명이라고 한다. 김종호 기자

박귀섭 작가와 그의 카메라. 그의 예명 BAKI는 어린 시절 별명이라고 한다. 김종호 기자

그를 기다린 건 가시밭길. 사진과 영상을 정식으로 공부한 적 없는 그에게 사람들은 "어느 학교 출신이냐"를 물었고, 그가 즐겨 쓴 합성 기법을 두고는 "이건 사진 작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좋다, 내가 하는 건 아트워크(artwork)"라며 더 독기를 품었다. 그러다 해외에서 연락이 왔는데, 국내에도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였다. "당신 작품을 인스타그램에서 봤다"며 "내 소설 표지에 쓰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박 작가의 커리어는 순풍을 탔다. 우연한 행운에 기댄 순풍이 아니라, 철저한 계획과 노력의 결과다. 그는 "5년, 10년 단위로 작업 계획을 다 세워두고 매 순간 작품 구상을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이번 전시엔 어떤 작품을 구상 중인가.  
"지금까진 화려한 이미지의 작업을 했다면 이번은 덜어내는 작업이다. 무용수들의 선을 강조한다. 단순한 게 더 어렵다. 이미지뿐 아니라 거문고와 무용을 접목한 영상도 구상했다. 안무도 따로 작업 중인데, 소리를 동작으로 표현하는 거라 까다롭다."  
왜 선, 왜 영상인가.  
"항상 생각하는 게, 시간인 것 같다. 사진은 0.01초의 찰나, 영상은 많은 시간을 압축한 완벽한 시간이다. 춤이라는 것은 무대에서 볼 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고. 이 셋의 접점을 찾으려 한다. 선을 택한 이유는, 삶이라는 건 결국 선이 아닐까 싶어서다. 발레 역시 바(barre)라는 선에서 시작해서 끊임없는 연습의 반복을 거쳐 아름다움을 빚어내니까.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삶을 잘 살아내는 사람들이 무용도 잘 하는 것 같다."  
박귀섭 작가의 미소는 맑았다. 김종호 기자

박귀섭 작가의 미소는 맑았다. 김종호 기자

아이디어가 특별한데.  
"그냥, 일상에서 떠올리는 것들, 꽃시장 지나가다 또는 대화를 하다 문득 드는 생각을 메모해둔다. 그냥, 하고 싶은 걸 한다."  
하고 싶은 걸로 생계를 잇는 건 어렵다.  
"맞다. 처음엔 진짜 어려웠다(웃음). 계파, 출신 이런 걸 깨려고 엄청 노력했는데, 많이 울었고 우울증도 겪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무용수로) 실패해서 어쩔 수 없이 이걸 한 게 아니야. 이걸 하고 싶어서 내가 스스로 선택한 거야. 이렇게 마음을 다잡았고, 어머니의 격려도 큰 도움이 됐다. '너가 선택한 거니 지지하겠다, 하지만 책임도 너가 져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울기만 하면 안 된다.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그 마음으로 포트폴리오를 진짜 열심히 제작했다."  

그가 무용수 시절 인연을 맺은 이들은 든든한 아군이 돼줬다. 스튜디오 입구에 있는 대형 사진의 김지영 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도 그 중 한 명이다. 박 작가는 "꽃들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질감과 색감이 더 아름다워진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를 표현하고 싶었고, 지영 누나에게 바로 전화를 했는데, 너무 멋지게 성숙한 아름다움을 표현해줬다"고 전했다.

포즈 장인, 박귀섭 작가. 오른편에 보이는 게 국립발레단 전 수석무용수 김지영 씨와 작업한 사진이다. 김종호 기자

포즈 장인, 박귀섭 작가. 오른편에 보이는 게 국립발레단 전 수석무용수 김지영 씨와 작업한 사진이다. 김종호 기자

그의 작업실엔 빈티지 타자기와 주판부터 색색의 점토까지 다양한 소품이 가득하다. 그는 "수집이 취미인 데 아이가 클 때까지는 자제하려 한다"며 웃었다. 그가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예술 동반자"라 부르는 부인은 미술 작가. 부부는 아들딸을 오손도손 키우고 있다.

꿈은 뭘까. 그는 "내로라하는 모든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을 하는 게 목표"라고 답했다. 그가 자신의 스튜디오에 그리스 신화의 아폴론이라는 이름을 붙인 까닭이다. 그는 "예술을 관장하는 아폴론을 닮고 싶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저는 '예술가들은 배가 고파야 한다'는 말 싫습니다. 원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라도 돈은 꼭 벌어야 한다고 믿어요. 더 큰 예술을 하고 싶은데 그러면 돈이 더 들죠. 일단 열심히 일해서 예산이 많이 들어도 아름다운 예술 작업을 더 많은 이들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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