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한국계 미국인 셰프 주디 주(47ㆍJudy Joo)가 요리 전문 방송국을 찾아가 "한식을 소개하고 싶다"고 했을 때, 반응은 시큰둥했다. 한국과 인연이 없는 미국인들이 알아서 찾아가는 한식당도 손에 꼽던 시절. 주디 주 셰프는 한식의 힘을 믿었고, 방송국을 설득, '간단히 만드는 한식(Korean Food Made Simple)'을 데뷔시킨다. 같은 제목으로 책도 냈다. 그를 한식세계화 1세대라 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런 그가 지난달, 뉴욕타임스(NYT)에 소개한 레시피는 다름 아닌, 호떡.
NYT 쿠킹(Cooking) 섹션은 이 매체의 유료화 콘텐트 중에서도 독보적이다. 이 섹션에서 호떡(Hotteok) 레시피는 평점 5점 만점에 4점을 기록하며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영미권에서도 이미 익숙한 비빔밥ㆍ김치ㆍ라면을 넘어, 새로운 한식에 목마른 미국인들의 호기심을 정확히 겨냥한 것이다. 그를 이메일로 만났다.
주 셰프는 원래 금융인으로 고액 연봉을 받으며 골드먼삭스ㆍ모건스탠리에서 활약했다. 콜럼비아대를 졸업하고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는 돌연 그 사다리에서 자발적으로 내려온다.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북한에서 6ㆍ25 와중에 피난을 온 뒤 고생 끝에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아버지와, 명절 때마다 꼭 왕만두를 손수 빚었던 어머니도 그의 뜻을 받아들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 금융인에서 요리인으로 업을 바꾼 계기는.
- "모건스탠리 자산분석팀 등에서 많은 경험을 했고, 성장할 수 있었지만, 금융시장과 재무라는 일을 사랑할 순 없었다. 미식을 좋아하고 관련 책 탐독을 좋아했는데, 어느날 요리업계에서 더 행복할 거라는 깨달음이 왔다. 물론 부모님은 처음엔 안 좋아하셨지만, 이미 경제적 독립을 이룬 딸의 뜻을 꺾지는 못하셨다. 나는 바로 요리학교에 진학했고, 그 뒤로 쭉 직진만 했다."
- 셰프는 체력적으로도 힘든 직업인데.
- "맞다.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하는 건 기본이다. 업무는 밑바닥부터 조금씩 차근차근 익혀야 하기 때문에 어떤 이들에겐 단조롭고 힘들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잘 견디며 성장해 나간다면, 창조와 실험을 할 수 있는 단계가 온다. 새로운 맛과 레시피를 만들어내는 경험은 비할 바 못된다."
- 한식 세계화 1세대인데.
- "아마 내가 만든 '간단히 만드는 한국 요리'가 (미국에서 만들어진) 첫 한식 방송 프로그램이 아닌가 싶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시즌 2까지 방영됐지만, 처음엔 아이디어를 오케이 받는 것도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이젠 한국 문화가 자연스레 확산하면서 사람들이 더 알고 싶어하고 배우고 싶어한다. 진심 기쁜 일이다."
- 2024년 현재 한식은 어떤 매력으로 다가가야 할까.
- "우선 해외에 사는 수백만명의 한국계 동포와, 한국을 잘 아는 외국인들이 훌륭한 대사(ambassador)들이다. 한국의 맛을 알면서 해외의 문화를 다 이해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한국식 치킨이 유행하게 된 것도 처음엔 주한미군으로 한국에서 근무했던 미국인들 덕이었다. 한식이라고 해서 반드시 전통을 100% 고수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의 발명이 내일은 전통이 되기 때문이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 "미국 캔자스시티에 사는 미국인 부부가 스파게티를 해먹으면서 소스에 고추장을 넣어본다던지, 영국 맨체스터에 사는 젊은이가 김치를 넣어 감자요리를 해보는 것, 이런 게 다 한식의 확장이다. 게다가 지금 전 세계적으로 요리업계의 화두, 시대정신(zeitgeist)라고 까지 말할 수 있는 게 바로 발효음식이다. 한식의 정수가 바로 발효 식품 아닌가. 앞으로도 무궁무진한 매력이 한식엔 있다."
- 아버지가 이북 출신이라는 점에도 혹 영향을 받았나.
- "어린 시절 우린 반드시 명절마다 둘러앉아 손만두를 빚었고, 아버지를 따라 냉면을 먹곤 했다. 아버지는 북에서 잘 사시다가 공산당에 땅을 몰수당하면서 빈손으로 이남으로 오셨고, 고생 끝에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신 뒤 미국으로 이주하셨다. 아버지는 삶의 교훈이 되어주시는 분이다. 어머니 역시 내 미각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주셨다. 냉면을 먹는 날이면 슴슴한 물냉면과 매운 비빔냉면이 함께 오르곤 했는데, 인천 출신인 어머니가 비빔냉면을 좋아하셨기 때문이다."
주 셰프는 내년까지 책 출간부터 방송, 레스토랑 오픈 등 스케줄이 빼곡하다고 한다. 그 중엔 한국 '편스토랑' 방송 프로그램으로 요리 실력을 알린 배우 류수영씨와의 협업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한국에 가면 제일 먼저 먹는 음식이 순두부 찌개"라면서 "한국에 어서 가서 음식을 엄청 많이 먹고 행복해지고 싶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