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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대 높던 프랑스 요리 민주화했다…그 셰프가 금지한 한가지

중앙일보

입력

데이비드 불레이 셰프(가운데)의 젊은 시절. 1991년 사진이다. AP=연합뉴스

데이비드 불레이 셰프(가운데)의 젊은 시절. 1991년 사진이다. AP=연합뉴스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메뉴판만 봐도 위축되기 마련이다. 프렌치 파인 다이닝(fine dining)의 경우, 가격대와 메뉴 이름 때문에 그 어려움은 배가 된다. 그런 이들에게 구세주 같은 존재가 '테이스팅 메뉴(tasting menu).' 문자 그대로 '맛 보기'를 위한 작은 분량의 추천 아이템을 모아둔, 가성비 메뉴다. 이 테이스팅 메뉴를 처음으로 만든 미국인 셰프, 데이비드 불레이(David Bouley)가 지난 12일(현지시간) 사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4일 추모기사에서 "불레이에겐 끊임없는 아이디어의 샘이 있었고, 그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 재능이 있었다"며 "프렌치 누벨 퀴진(현대 프랑스 요리)을 새로운 미국 스타일로 번역해냈다"고 전했다. 콧대 높은 프랑스 요리를 테이스팅 메뉴 등을 통해 '민주화'한 인물인 셈이다. 그의 사인은 심장마비. 70세를 일기로 급작스레 유명을 달리했다.

불레이의 레스토랑은 세계적 미식 평가지인 미쉐린 가이드(Guide Michelin)의 별도 다수 획득했다. 프랑스 요리의 저변을 넓히면서도, 그 질 역시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가 고급 식재료 또는 비싼 식기에 천착하건 아니다. 그의 레스토랑에서 오래 일했던 빌 요세스 셰프는 NYT에 "데이비드는 트러플(송로버섯, 세계 3대 진미)이나 캐비어(철갑상어 알) 보다는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딸기 같은 재료에 관심이 더 많았다"고 전했다.

2014년 당시의 데이비드 불레이.  AP=연합뉴스

2014년 당시의 데이비드 불레이. AP=연합뉴스

국내엔 불레이가 낸 레스토랑은 없다. 그럼에도 셰프들과 미식가 사이에서 데이비드 불레이의 명성은 높다. 『미식의 테크놀로지』(중앙북스)와 같은 전설적 셰프들과의 인터뷰집에도 불레이는 첫번째로 등장했다.

책의 저자인 쓰지 요시키(辻芳樹)는 15일 중앙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데이비드는 요리의 근간을 꿰뚫었기에 미식을 언어로 치환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비단 프랑스 요리뿐 아니라 아시아 음식에 대한 이해도 역시 최고 수준이었다"며 "미식의 새 패러다임으로 도약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던 그의 급작스러운 별세는 엄청난 슬픔"이라고 말했다. 쓰지는 일본 세계 3대 요리학교인 쓰지 요리학교 교장이다. 국내엔 '츠지 요리학교'로도 알려져 있는데, 국내에선 정호영 카덴 오너 셰프가 이곳 출신이다.

『미식의 테크놀로지』(중앙북스)표지.

『미식의 테크놀로지』(중앙북스)표지.

불레이는 미국 코네티컷에서 나고 자란 전형적인 미국인이었다. 그런 그는 프랑스 요리에 매료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요리를 배우고 익혔다. 미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레스토랑을 차리기 전, 뉴욕의 많은 유명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일하며 업계에 뿌리를 내렸다. 자신의 레스토랑을 오픈한 건 1987년, 그의 34세였다. 그는 곧 승승장구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 불레이 등을 뉴욕뿐 아니라 여러 곳에 오픈했고, 미국의 여러 미식 안내서에서 '베스트 레스토랑'으로 선정됐다. 유명 미식 매체 자가트(Zagat)가 1991년 "생의 마지막 만찬은 어디에서 하고 싶은가"라고 7000명이 미식가 독자에게 물었는데, 대다수가 "불레이"라고 답했다고 NYT는 전했다. 그의 레스토랑은 소셜미디어에 올리기 위해 요리 사진을 찍는 것을 금지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셔터의 찰칵 소리 또는 플래쉬 등이 다른 손님에게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미식의 경험에만 온전히 집중하길 바란다는 그의 고집때문이었다.

사진 촬영은 금지했지만 그 외 다른 문턱은 확 낮췄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프렌치 퀴진(cuisine·요리)의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방송에도 출연하고 책도 많이 썼다. 그는 보다 많은 이들이 미식의 즐거움을 느끼기를 바랐다. 그런 그가 후배 요리인들에게 남긴 메시지는 이렇다.

"남의 레시피를 따라만 한다면 좋은 셰프는 될 수 없다. 너만의 것을 찾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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