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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쳐도 괜찮아" 뉴욕서 깜짝 한글벽화 전시회 한 그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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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국에서 활동하는 미술가, 이혜수 씨 본인 제공

미국에서 활동하는 미술가, 이혜수 씨 본인 제공

지난달 미국 뉴욕 지하도에 한글로 '수복강녕' '고마워요' '사랑해요'의 문구가 알록달록 벽화와 함께 등장했다. 뉴욕한국문화원이 이혜수 작가를 초청해 마련한 깜짝 벽화 전시회다. 이혜수 작가는 워싱턴포스트(WP)ㆍ뉴욕타임스(NYT) 등에도 일러스트겸 에세이를 쓰고 있으며, 책부터 전시회까지 전방위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번달엔 한국의 대표적 간식인 붕어빵과 순대를 소개하는 일러스트 책자도 갓 출간했다. 그는 지난주 두 차례 중앙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인인 게 이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을 정도로 자랑스럽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이혜수 작가가 뉴욕한국문화원 의뢰로 그린 벽화. 이혜수 작가 제공, Hyesu Lee Instagram

이혜수 작가가 뉴욕한국문화원 의뢰로 그린 벽화. 이혜수 작가 제공, Hyesu Lee Instagram

미국으로 간 게 20대인데. 계기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20대 중반까지는 그걸 업으로 삼을 생각은 못했다. 다행히 부모님이 지원을 해주셔서 (영국) 런던과 뉴욕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하지만 쉽진 않더라. 학위를 받았음에도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제대로 된 일거리를 하나도 구하질 못했다. 일이 잘 풀리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굳이 미국에 간 이유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으면서도 나는 내가 한국에서 아웃사이더 같다는 생각을 항상 했고,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곤 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바깥세상을 탐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고, 한국 사회와 한국 사람들이 으레 기대하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내가 유별나게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생각을 깊게 하지 않고 순수하게 마음이 끌리는 대로 행동한 게 도움되었던 것 같다(웃음). 물론 미국에서 새 언어와 사회, 불확실성에 적응하는 건 어려웠다. (한국이라는) 내 뿌리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이다."  
이혜수 작가가 한국의 간식을 소개한 일러스트 책. 막 출간됐다. 이혜수 작가 제공, Hyesu Lee Instagram

이혜수 작가가 한국의 간식을 소개한 일러스트 책. 막 출간됐다. 이혜수 작가 제공, Hyesu Lee Instagram

아티스트로서 느끼는 뉴욕의 매력은.  
"뉴욕은 사랑에 빠지거나, 증오하거나, 또는 애증 하거나, 셋 중 하나다. 살기 어려운 곳이긴 하지만 이 도시엔 마력이 있다. 뉴욕은 나의 에너지를 빼앗아가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에너지로 나를 채워준다. 내가 진정한 나로 있을 수 있는 곳, 그게 뉴욕이다."  
아티스트로서 인정받기까지 어떻게 버텼나.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힘든 일만 계속될 때, 처음엔 나 자신을 탓하고, 왜 나는 재능이 더 없는지 더 열심히 하지 못하는지 스스로를 책망했다. 한국 문화에선 결국 완벽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탓하는 게 당연하니까. 하지만, 나쁜 날이 있어도 괜찮다. 망쳐도 괜찮다. 실수해도 괜찮다. 이젠 그걸 알겠다."  
작업실의 이혜수 작가. 이혜수 작가 제공, Hyesu Lee Instagram

작업실의 이혜수 작가. 이혜수 작가 제공, Hyesu Lee Instagram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한국의 후배들에게 조언은.  
"나는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일관되게 꾸준하게 성실하려 했다. 모두의 예술 세계는 그 자체로 특별하다. 그 세계를 알아줄 사람들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나간다면, 그들이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  
한국인이라는 점은 어떻게 작용하나.  
"BTS와 한국 음식, K-화장품 덕분에 굉장히 좋다. 한국인인 게 더 이상 자랑스러울 수 없을 정도로 자랑스러운 요즘이다. 한국 역시, 시간이 걸렸을 뿐, 세계가 그 매력을 찾아낸 거라고 생각한다."  

그의 인스타그램엔 앞으로의 책 출간이며 전시 등에 대한 내용이 풍성하게 올라온다. 그의 그림은 색상 스펙트럼이 넓고,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하다. 보고 있으면 세상이 그리 나쁘지 않은 곳처럼 느껴진다. 이는 순진함이라기보다는, 고통의 시간을 지나 단단해진 자기애(self-love)에 대해 많이 고민한 덕이다. 그가 WP 등에 기고한 일러스트 에세이의 주제 역시 자기애였다.

그는 "한국에서도 곧 자기애에 관한 책이 출간될 예정이라 기쁘다"며 방한 계획도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껴주려고 노력하겠다"며 "독자 여러분들도 그러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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