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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까지 날 포기할 수 없죠" 스키국대 그녀가 마음 쏟아낸 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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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서 작가. 중앙일보 옥상에서 촬영했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스키선수인 그에게 추위는 차라리 친구였다. 장진영 기자

강영서 작가. 중앙일보 옥상에서 촬영했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스키선수인 그에게 추위는 차라리 친구였다. 장진영 기자

"근육을 키우기 위해선 상처를 먼저 내고, 회복기를 주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한국 스포츠 사상 최연소 알파인스키 국가대표를 지낸 강영서(27) 씨의 말이다. 몸뿐 아니라 마음의 근육도 마찬가지다. 강영서 작가가 펴낸 신작, 『나까지 나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문학동네)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다. 강 작가는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작가로 데뷔한 계기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상처를 내고, 회복하고, 다시 상처를 내면서 성장을 하는 건데, 몸은 스케줄로 관리할 수 있지만, 마음은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저녁마다 마음에 약을 바르고 회복하는 과정이 일기를 쓰는 거였어요. 그래도 낫지 않은 상처도 있었고요. 그렇게 만든 책입니다."  

태극 마크를 달기까지, 강영서 선수의 인생은 '승승장구'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흰 눈을 보기 힘든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29개월에 부모님의 권유로 우연히 스키를 신으며 운명을 만났다. 초등학교에 다니며 전국동계체육대회 4관왕, 18세에 최연소 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꿈의 무대를 목전에 둔 스키 신동에게, 인생은 태클을 건다. 첫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무릎 인대가 파열됐다. 의사는 말렸지만, 특유의 뚝심으로 러시아 소치 올림픽 스키장의 기문은 통과했다. 이후 그를 기다린 건 깊고도 긴 슬럼프.

2017년 당시 강영서 선수. "여자 알파인 스키 간판 강영서 선수"라는 제목으로 2018년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을 당시다. 중앙포토

2017년 당시 강영서 선수. "여자 알파인 스키 간판 강영서 선수"라는 제목으로 2018년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을 당시다. 중앙포토

그는 "힘들 때 결국 그 힘듦을 헤쳐나가는 건 제 몫이더라"며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일단 해보자며 어떻게든 버티며 잘 헤쳐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 해보니 아니었던 것들이 쌓이면서, 비슷한 경험을 하고 계실 분들에게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고 출간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10대에겐 그때만이 가질 수 있는 싱싱한 열정의 소중함, 20대에겐 꾸준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전하고 싶다"며 "30대 이상 독자분들껜 그냥 '예쁘게 봐주세요'라고 하고 싶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강영서 작가 책 표지. 띠지의 사진 저작권은 대한체육회. 출처 및 저작권 문학동네

강영서 작가 책 표지. 띠지의 사진 저작권은 대한체육회. 출처 및 저작권 문학동네

운동선수의 꿈인 올림픽 무대. 지금 떠올리면 어떤가요.  
"삭막함, 슬픔, 아름다움, 이런 단어들이 떠올라요. 2014년 소치 올림픽은 부상으로 어쩔 줄 몰랐을 때 느꼈던 쓸쓸하고 막막함 때문에 '삭막함'이라는 감정이 드는 것 같네요. 2018년 평창의 경우는 고국의 올림픽이었기에 의미가 더 컸는데 꼭 같이 나가고 싶었던 선수가 출전을 마지막 순간에 못하게 되어 슬펐습니다. 2022년 베이징은, 최선에 최선을 다했지만, 또 부상을 입으면서 완주조차 못해서 허무했고요. 하지만, 책을 쓰면서 이런 모든 과정도 제가 어떻게 마음먹기에 따라 아름다움으로 변할 수 있음을 깨달았어요. 사실 이런 경험 덕에 '피지컬 100 시즌2'에도 도전할 수 있던 거니까요."  

작가로서의 강영서는 책으로 만날 수 있으나, 선수로서의 강영서의 면모는 오는 19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피지컬 100 시즌 2'에서 만날 수 있다.

강영서 작가에겐 성실하고 묵묵하게 스스로를 단련시켜온 사람 특유의 맑음이 있었다. 장진영 기자

강영서 작가에겐 성실하고 묵묵하게 스스로를 단련시켜온 사람 특유의 맑음이 있었다. 장진영 기자

몸이 너무 힘들 땐 어떻게 하나요.  
"(싱긋 웃으며) 선수인 저에겐 사실 몸이 힘들다는 건, 잘하고 있다는 뜻이라서 안심이 돼요. 몸이 힘든 게 저에겐 마음이 든든해지는 일인 거죠. 가장 힘든 건 마음이 힘들어서 몸이 편해지고 싶을 때였어요. 힘들어도 마음을 다잡는 게 아니라, 그냥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럼 가뜩이나 무거운 몸이 더 무거워져요. 그 마음의 짐을 쏟아내는 저만의 루틴이 일기를 쓰며 저의 감정을 직시하는 거였어요. 그 시간이 없었다면 다음날 아마 (잠시 침묵) 움직일 수도 없었을 것 같아요."  

강영서 작가는 책 초판 한정 사인본에 "지금 그냥 바로 해(Do it now!)"라는 말을 적었다. 망설이고 힘들어할 그 시간에 부딪혀 보라는, 그가 몸소 겪어온 인생의 지혜다.

그런 그에게도 두려웠던 순간이 있을까. 그는 마지막 출전했던 올림픽 선발전에서, 출전 직전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던 때라고 답했다. 강 선수 겸 작가는 "가장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면서 동시에 그 순간을 이겨낼 수 있었다"며 "잘하고 싶으면서도 쥐구멍으로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고 털어놨다. 전날 경기가 강풍으로 연기되면서, 스트레스 지수는 최고치를 넘어 한계치에 도달했던 상황. 그럼에도 강영서는 완주를 해냈다.

부산 출신 동계올림픽 종목 선수를 응원하는 플래카드. 2018년 부산시청에 걸린 현수막이다.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강영서 선수. 송봉근 기자

부산 출신 동계올림픽 종목 선수를 응원하는 플래카드. 2018년 부산시청에 걸린 현수막이다.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강영서 선수. 송봉근 기자

그에게 스키란 뭘까 물었다. 그는 "처음엔 내가 곧 스키이고, 스키가 곧 나라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스키의 시점에선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저 내가 사랑하는 마음만큼 스키도 나를 사랑해줬으면 한다"며 웃었다.

현재 부산광역시 체육회 스키팀 소속 선수인 강영서 작가는, 지난해 난생처음 스키를 여행으로 다녀왔다고 한다. 가족과 함께 일본 홋카이도의 눈을 달리며, 진정 행복했다고 말하는 강영서 작가의 눈은 순수하게 반짝였다. 스키의 신이 감복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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