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가 된 인간? 대신 자유를 얻었다"…우리가 몰랐던 카프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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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국내 첫 시선집을 번역해 펴낸 편영수 교수.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있다. 전민규 기자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국내 첫 시선집을 번역해 펴낸 편영수 교수.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있다. 전민규 기자

올해는 작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가 별세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손꼽히는 카프카 전문가, 편영수 전주대 명예교수가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민음사)을 펴냈다.
그는 서울대 독문학과에서 카프카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카프카 관련 책을 여러 권 내 한독문학번역상 등도 받았다.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본사에서 편 교수를 만났다. 그는 "우리가 모르는 카프카를 전하고 싶었다"며 운을 뗐다. 실제 카프카는 초고속 승진을 했던 유능한 회사원이기도 했다고 편 교수는 전한다.

청년기 프란츠 카프카의 모습. 중앙포토

청년기 프란츠 카프카의 모습. 중앙포토

이번 책은 카프카가 직접 그린 드로잉과 시를 묶었다. 카프카라고 하면 으레 떠오르는 『변신』의 벌레로 변한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 『성』의 주인공 K의 서사는 없다. 대신 카프카가 직접 그린, 일견 투박하지만 볼수록 다중적인 의미가 녹은 드로잉과, 번역된 문장인데도 운율과 리듬이 살아있는 시가 독자들을 기다린다.

책은 독일어 원문을 병기했는데, 편 교수는 "시와 소설의 구분을 하지 않고 글의 음악성을 중시했던 카프카의 뜻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카프카는 독일어로 글을 쓴 체코 작가다. 책을 읽다 보면 카프카가 엮어낸 독일어 단어들이 변주하는 소리가 궁금해진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프란츠 카프카가 그린 드로잉 60여점 중 일부. 민음사 제공

프란츠 카프카가 그린 드로잉 60여점 중 일부. 민음사 제공

2024년 대한민국의 우리가 카프카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카프카는 내면으로 퇴각해 침잠하는 작가가 아니라, 현대사회의 부조리를 적극 비판하고 바꾸려는 의지를 가진 작가였다. 그런데 우린 실존주의 문학의 창시자 정도로만 좁게 해석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카프카가 14살 때부터 썼던 시에는 그의 고민이 깊게 담겨 있다. 그가 소설에서 다룬 인간의 불안이나 공포는 개인의 심리상태 그 이상이다. 현대사회의 전체주의적 관료제와 약탈적 자본주의에 대한 해석이다. 카프카는 사실 우리로 따지면 근로복지공단과 같은, 노동자를 위한 산업재해 보험 공사에서 14년을 근무했는데, 업무 중에도 노동자를 위해 적극적으로 일했다."  
대표적 사례는.  
"노동자들이 법률 지식이 없어서 당하기만 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소송 비용을 대신 내주거나, 대패로 일을 하다 손가락 절단 사고를 자주 겪자 보호 장치를 직접 발명하기도 했다. 업무에도 굉장히 뛰어났다. 소설과 시만 잘 쓴 게 아니라, 보고서도 훌륭했다. 표현은 문학적인데 논점과 핵심은 짧고 강렬하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보고서를 썼다. 그를 상사들은 예뻐해서 초고속 승진을 시켰고, 건강이 안 좋아졌을 때도 집에서 병가를 내고 업무 처리를 하도록 양해해줬다."  
프란츠 카프카의 드로잉과 시를 엮은 신간 표지. 민음사

프란츠 카프카의 드로잉과 시를 엮은 신간 표지. 민음사

만약 카프카가 21세기에 되살아난다면.  
"지금도 같은 글을 쓰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카프카는 사람들에게 변화를 하라고 글을 통해 촉구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대다수 인간은 변화를 해야하는지조차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의지가 없거나, 속수무책으로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 중에서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을 제목으로 선정한 이유는.  
"우리 모두의 삶은 결국, 망설임의 연속 아닐까. 카프카는 경계인이었다. 어디에도 완벽하게 속하지 못한 채, 이 세계와 저 세계 사이 경계에 존재했다. 아웃사이더였던 그 덕분에 우리는 세계를 더 넓게 볼 수 있다. 경계 안에서만 있으면 세상이 좁게 보이지만, 경계 사이에 있으면 넓게 볼 수 있으니까. 그렇게 넓게 볼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카프카에의 마음을 담은 선택이기도 하다."  

원문은 이렇다.
"목표는 있으나, / 길은 없다 / 우리가 길이라고 부르는 것은, / 망설임이다."

프란츠 카프카가 그린 드로잉 60여점 중 일부. 민음사 제공

프란츠 카프카가 그린 드로잉 60여점 중 일부. 민음사 제공

편 교수가 좋아하는 카프카의 시는 내용이 어둡다. 그러나 어둠을 직시하는 것은 빛을 향한 첫걸음이다. 어둠을 이해해야 밝음이 밝을 수 있어서다.

프란츠 카프카 전문가로 손꼽히는 편영수 전주대 명예교수. 전민규 기자

프란츠 카프카 전문가로 손꼽히는 편영수 전주대 명예교수. 전민규 기자

편 교수가 또 하나 강조한 것은 각자 나름의 카프카를 해석하는 열린 방식이다. 그는 "카프카가 제일 싫어한 것은 한 가지 생각이나 해석만 강요한 전체주의적 사고였다"라며 "현대 문학의 아버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카프카의 작품은 전체주의적 권력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읽힐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간이 2명 이상만 모여도 권력관계가 되니, 카프카는 영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카프카를 변주해온 작가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카프카를 변주해온 작가다.

해석의 다층성을 강조하며 편 교수는 카프카의 대표작 『변신』얘기를 꺼냈다. 그는 "벌레가 된다는 걸 우리는 흉측하고 안 된 일이라고 부정적 해석만 하지만, 사실 벌레가 된다는 건 '탈주'의 의미가 서려 있다"며 "주인공이 벌레가 되는 것은 인간성도 노동력도 가족과의 소통도 다 포기하는 대신 자유를 획득하는 것으로도 읽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다층적 면이 있기에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와 같은 현대 작가들도 끊임없이 카프카를 나름의 방식으로 변주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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