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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전문가 "연애 그만뒀다"…곽정은 '붓다의 말' 파고든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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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은 작가가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 본사에서 인터뷰 중이다. 표정이 온화했고 목소리는 낮았다. 장진영 기자

곽정은 작가가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 본사에서 인터뷰 중이다. 표정이 온화했고 목소리는 낮았다. 장진영 기자

연애 전문가 곽정은 작가가 연애를 그만뒀다. 그는 신간 『마음 해방』의 한 챕터의 제목을 "나는 왜 남자를 사랑하는 일을 그만두었나", 부제는 "가야 할 길을 깨닫다"로 지었다. 지난달 26일 중앙일보에서 만난 곽 작가는 "사랑이 궁금해서 사랑에 대해 글을 썼지만, 사랑 그 너머를 생각하고 공부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고 말했다. 표정이 평온했다.

연애를 그만뒀지, 연애 전문가를 그만둔 건 아니다. 연애로부터 자유롭기에 그의 조언은 더 매력적이다. 대중이 여전히 그를 원하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40대 중반의 곽정은 작가의 성장은 현재진행형이다. 중앙그룹 발행 잡지 코즈모폴리탄에서 10여년 기자로 일한 그는 JTBC '마녀사냥'의 패널로 이름을 알렸고, 10권 가까운 에세이집을 펴냈다.

JTBC 인기 예능이었던 '마녀사냥'에 출연하던 당시의 곽정은 작가. [JTBC 홈페이지]

JTBC 인기 예능이었던 '마녀사냥'에 출연하던 당시의 곽정은 작가. [JTBC 홈페이지]

프리랜서로 활약하다 그는 문득 이렇게 깨달았다고 한다. "내가 무언가를 갖고 싶어서 안달 나는 삶을 살았구나. 이성과의 사랑이 나를 행복하게 했나? 성장하게 해줬나? 아니었다." 그는 심리학으로 석사를 취득했고 지금은 붓다의 초기 경전을 공부하며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이번 책은 그가 겪어낸 공부의 안내서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요지. 중앙일보 독자를 위한 영상 메시지도 보내왔다.

책 주제가 뜻밖이다.  
"2016년 정도, 마흔을 앞두고 유독 힘든 시간을 겪었다. '마녀사냥' 출연 후 갑자기 확 유명해졌고, 연애도 불같이 타올랐는데 갑자기 그 흐름이 가라앉고 불이 꺼지더라. 당황스러웠다. 정점에 있다가 어느 순간 정점이 아니라고 깨달으며 삶의 균형을 고민하게 됐다. 과거엔 내가 나 자신을 믿지 못했기에 믿는 척, 잘난 척, 멋있는 척을 하고 살았다. 내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본 적이 있나 싶더라."  
심리학과 명상학을 공부한 계기는.  
"나의 마음을 붙들어 맬 수 있는 형태를 갖춘 존재를 찾다가, 우선 공부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서양의 심리학과 동양의 명상학을 함께 공부하자 마음먹었고, 선학(禪學), 그중에서도 붓다(부처)의 말씀을 옮긴 초기 경전을 공부하게 됐다. 2500년 전에 붓다가 남긴 말들은 21세기에도 울림과 재미가 있는 심리학 개론서다."  
곽정은 작가는 "싱글이라는 걸 결핍으로 생각했지만 이젠 성장의 조건이라 여긴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곽정은 작가는 "싱글이라는 걸 결핍으로 생각했지만 이젠 성장의 조건이라 여긴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책 출판까지 마음먹은 이유는.  
"'나의 더 좋은 버전(better version of me)'이라는 표현을 좋아하는 데, 나도 그러고 싶었다. 독자들이 50세가 되기 전에 꼭 깨달아야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고, 나는 40대에 이런 정도까지는 공부를 했다고 전하고 싶었다. 무언가를 갖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삶, 더 못 가져서 괴로움 삶을 살았던 마음을 내려놓기까지의 과정을 나누는 나침반 같은 책을 쓰고 싶었다."    
연애를 그만둔다는 내용은 의외다.  
"방송에서 요구하는 '연애 전문가 곽정은'이라는 첫 이미지가 워낙 강했고 지금도 그렇게 쓰임을 받고 있긴 하다. 첫 책을 이혼하고 거의 1년 만에 출판했다. 이대로 함께 살다간 누구 한 명 죽을 것만 같아 힘들고 괴롭기에,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하는 것이 이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힘든 이혼 과정을 겪은 직후 썼던 게 아이러니하게도 연애 지침서였다. 지금 와서 그 내용을 읽으면 남자를 이렇게 유혹하라는 등의 내용이 부끄럽다(웃음). 하지만 그 역시, 나의 역사다. 그 덕에 오늘날의 시간과 경제적 여유도 얻을 수 있었다. 지금 이 책은 지금 나의 최선이다. 내가 발뒤꿈치도 못 따라갈 학자분들이 보시면 부족할 것이다. 그래도, 뭔가가 다 되기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으니까 (책을 냈다)."  
곽정은 작가가 출연했던 JTBC '마녀사냥'(위 사진). 최근 티빙 오리지널로 부활했다. 사진 JTBC, 티빙

곽정은 작가가 출연했던 JTBC '마녀사냥'(위 사진). 최근 티빙 오리지널로 부활했다. 사진 JTBC, 티빙

40대 중반인데 아이를 갖고 가정을 이뤄야 한다는 초조함은.  
"혈육을 만들면 어떤 갈증은 덜했을 것이고, 한때는 싱글이라는 걸 결핍으로도 여겼다. 가정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고, 내 인생은 미완성이라고도 생각했다. 이젠 아니다. 나는 내가 급하다. 마흔다섯, 여섯, 사실 나이를 세는 것도 그만두긴 했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건 명확하다. 그렇다면 공부를 조금이라도 더 해두고 싶다. 나는 혼자 살아가겠구나, 라는 이 느낌이 외려 이젠 결핍 또는 외로움이 아닌, 성장과 배움을 위한 최적의 조건이자 큰 복이라고 느낀다."  
곽정은 작가. 심리학으로 석사를 취득했고, 지금은 붓다의 초기 경전으로 박사 과정 중이다. 장진영 기자

곽정은 작가. 심리학으로 석사를 취득했고, 지금은 붓다의 초기 경전으로 박사 과정 중이다. 장진영 기자

책을 용서라는 주제로 시작했다. 책에 어린 시절 상처를 털어놓은 것도 인상적이다.  
"용서는 과정인 것 같다. 내려놓는 과정. 갑자기 '내가 너를 용서해주마'라고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일어난 일 자체보다는 거기에 덧붙인 내 생각들이다. 타인으로 겪은 아픔조차도 내 인생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로 받아들이고, 분노할 일은 분노하고 바꿔야 하는 부분은 바꾸되, 내가 스스로에게 화살을 쏘는 건 멈춰야 한다. 스스로가 붙이는 생각에 침잠하다 보면 밖에 피어있는 개나리도 볼 수 없다."  
2024년 봄의 대한민국 사회에도 울림이 큰 말이다.  
"상처를 주거나 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지 않나. 지금 우리 사회는 각박함을 넘어 비인간화하는 게 아닌가 싶다. 현대인은 의지할 무엇인가를 꼭 찾아야 하는데, 의지의 대상은 이미 붓다가 말해놓았다.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아 진리에 의지하라는 뜻이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이 믿는 진리를 굳게 믿는다면 그야말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갈 수 있다. 나아가, 내 안의 고통을 볼 수 있게 되면 타인의 고통도 볼 수 있게 된다. 내려놓지 못할 상처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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