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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예술과 철학을 잇는 그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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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7호 23면

다리 위에서 니체를 만나다

다리 위에서 니체를 만나다

다리 위에서 니체를 만나다
토머스 해리슨 지음
임상훈 옮김
예문아카이브

다리(橋)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과 주변 한강 교량이 31개나 된다. 차량 통행량만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사람도 건너다닐 수 있고 지하철과 열차도 운행할 수 있다. 이처럼 다리는 공기와도 같은 존재다. 다리에 얽힌 이야기는 동·서양 할 것 없이 무궁무진하다. 『다리 위에서 니체를 만나다』는 ‘다리에 관한 모든 것’을 모아 놓은 책이다.

기본적으로 다리는 강이나 바다, 계곡 등으로 분리된 이쪽과 저쪽을 연결해 주는 물리적 건축물. 그런 점에서 보면 교통과 문명 교류는 물론이고 전쟁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다리는 인류의 삶이나 문화와 밀접한 대상이었다. 뿐만 아니라 다리는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사랑과 이별처럼 정신적인 영역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는 소재이며 철학과 문학, 신화와 전설, 역사와 예술 등을 포괄하는 존재다.

16세기 영국 템즈강의 런던 브리지 모습. 다리 위에 건물이 빼곡하다. [사진 예문아카이브]

16세기 영국 템즈강의 런던 브리지 모습. 다리 위에 건물이 빼곡하다. [사진 예문아카이브]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환상적인 다리는 오작교(烏鵲橋)일 것이다. 견우(牽牛)와 직녀(織女) 설화에 등장하는 전설상의 다리다. 음력 칠월칠석 밤에 까마귀와 까치가 날개를 펼쳐 견우와 직녀 두 별이 은하수를 건너 서로 만날 수 있게 만든 게 오작교다.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모두 전해 내려오는 설화다. 일본에선 히코보시(견우성)와 타나바타스메(직녀성)로 불린다. 이 우화는 신의 질서와 육체적 에로스 사이의 갈등이라는 주제를 갖고 있는데, 차갑고 고요한 우주 공간을 의인화했다. 무지개라는 자연현상의 아름다운 다리도 있다. 이를 통해 신의 영역으로 갈 수 있다는 상상은 북유럽 신화에도 등장하는데, 19세기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의 반지’를 통해 널리 퍼졌다.

역사에 기록된 다리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중세 기독교 세계에서는 ‘다리를 짓는 형제들’이 있었다. 개울이나 강 위에 로마와 다른 신성한 장소들로 가는 길을 만들어 순례자들의 여행을 도와줬던 사람들 이야기다. 12세의 양치기 베네제라는 이름의 소년은 1177년 아비뇽의 론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만들라는 계시를 받았다. 그의 다리 건설 작업에 종교적인 후원이 쏟아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를 짓는 형제회가 만들어졌다. 형제회를 세운 베네제는 19세에 사망해 다리에 있는 교회당에 묻히고 성자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아비뇽 다리를 건너는 교황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이 교회당에 멈춰 기도하고 자비를 베풀었다고 한다.

다리라는 인공의 길이 만들어지면 자연적 방어는 취약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다리 입구에는 요새 같은 작은 성과 탑을 세우는 게 일반적이었다. 전 세계의 위험한 다리들에는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전해진다.

기원전 62년에 지어진 가장 오래된 로마 다리인 파브리키우스 다리에서는 투신이 잦았다고 한다. 현대에도 미국 캘리포니아의 금문교 등 세계적인 다리들에서 비슷한 비극이 자주 일어난다. 바티칸에서 가까운 로마의 산탄젤로교는 성베드로 대성당과 하드리아누스 영묘로 건너가는 다리인데, 이곳은 교회의 적으로 처형된 자들의 시신을 전시하는 장소로도 유명했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도 다리와 연이 깊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입부에서 “인간은 심연 저 위, 동물과 초인 사이에 묶인 밧줄과 같은 존재다…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종착지가 아니라 다리라는 점에 있다”고 썼다. 니체가 인간에게 부여한 밧줄-다리와 초인의 이미지는 도대체 뭘까에 대해서는 지금도 그 해석이 분분하다.

이 책에는 그 밖에 다리와 연결된 음악, 춤, 영화, 시 등에 대한 다양한 스토리도 담겨 있다. 다리라는 공통 주제로 엮은 이 책을 읽고 나면 풍성한 인문학의 바다를 건넌 느낌이 든다. 다리 하나로 보물을 얻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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