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운 일을 위해 없애야 할 일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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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7호 25면

진짜 노동

진짜 노동

진짜 노동
데니스 뇌르마르크 지음
손화수 옮김
자음과모음

일자리를 찾으면서 하나 마나 한 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데 일을 하다 보면 그런 일을 맡게 될 수 있다. 그래서 바쁘게 일하다 보면 과연 무엇을 위한 일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의욕이 꺾일 수 있다. 심하면 번아웃을 겪을 수도 있다.

2년 전 한국에 소개된 『가짜 노동』은 덴마크의 인류학자와 사회학자인 두 저자가 여러 사례를 통해 이런 실상을 조명한 책이다. 새로 나온 『진짜 노동』은 그 후속작. 두 저자 가운데 인류학자이자 컨설턴트 등으로 일한 데니스 뇌르마르크의 단독 저서다. 전작에서 다룬 ‘가짜 노동’의 개념부터 다시 소개하며 문제를 풀어갈 방법 등에 주로 초점을 맞췄다.

『가짜 노동』과 그 후속작 『진짜 노동』의 저자 데니스 뇌르마르크. [사진 자음과모음]

『가짜 노동』과 그 후속작 『진짜 노동』의 저자 데니스 뇌르마르크. [사진 자음과모음]

가짜 노동은 업무처럼 보이지만 실속이나 의미가 없는 행위를 포괄적으로 가리키기 위해 만든 용어다. 결코 악의적인 의도에서 비롯된 일이 아니라는 것도 특징이다. 겉보기에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것 같지만 실제 해보면 비합리적인 경우도 포함된다. 누구도 읽지 않게 된 보고서, 업무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프로젝트를 위해 다른 직원들에게 방대한 데이터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도 예다. 행정·지원 등을 담당하는 직원들 숫자가 학생 숫자의 증가 규모보다 훨씬 비대해진 덴마크의 대학도 예로 등장한다.

가짜 노동을 없애기 위한 방법으로 저자는 여러 가지를 제시한다. 우선 조직 내 소통이 ‘헛소리’를 배제하고 명확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부터 강조한다. 2014년 노키아의 CEO 이름으로 발송된 이메일은 그 반면교사로 드는 예다. 생산성, 열망, 융합, 가치, 디지털 라이프, 디바이스 등의 단어와 자화자찬을 동원해 길게 이어지는 문장들은 도무지 그 의도를 헤아리기 힘들다. 정작 1만명 넘게 직원을 감축할 계획이라는 말은 이메일 마지막에 지나가듯 무심히 언급한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그가 제시하는 방법들은 가짜 노동을 만들어낸 토양과도 맞물린다. 직원들이 관료주의적으로 일하게 되는 이유를 짚으면서 일선 현장에 권한을 나눠주고, 관리 업무를 현장에 분산하고, 현장의 업무를 관리자나 경영진이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식이다. 이를테면 행정·지원 부서에서 현장의 실태를 모르고 내놓는 아이디어는 가짜 노동을 만들어내기에 십상이다.

이른바 ‘디지털 솔루션’에 대한 맹종도 비판한다. 디지털화를 통해 효율을 높이고 자동화를 이룰 것 같지만, 실상 사람이 해야 할 부가적 업무가 새로 생겨나는 면면을 지적한다. 의사, 교사 등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입력 작업을 부담시켜서 수집하는 방대한 데이터의 쓸모에 대해서도 되묻는다.

이런 이야기들은 인류학·사회학보다 경영학의 영역에 가깝게 들린다. 책에는 여러 경영학자들의 주장이 인용된다. 저자는 특히 현대의 경영이 핵심성과지표(KPI) 같은 지표를 목표로 삼는 데 따른 문제도 지적한다. 실질적인 가치와 효과를 창출하는 일보다 ‘측정 가능한 일’에만 방점을 싣게 되고, 정작 왜 이런 일을 하는지는 잊힐 수 있다면서다.

실행이 비교적 쉬운 방법들도 있다. 매주 한 번이든 매달 한 번이든 회의 없는 날을 정하고, 회의 시간과 참석자 수를 제한하는 등도 그런 예. 쏟아지는 이메일에 시간을 두고 답하라는 주장도 있다. 그사이 답할 필요가 없어지는 경우가 상당수라는 얘기다. 가짜 노동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일에 대해 누구의 지시인지 확인하라는 조언도 나온다. 저자 자신도 그랬지만, 기업의 이사회나 최고경영진은 지시를 했다는 것을 잊어버릴 만큼, 필요 없는 일까지 지시하는 경우가 잦다는 지적이다. 이 책의 모든 내용을 금과옥조로 여길 이유는 없지만, 조직을 이끌고 업무 환경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 사람일수록 요긴하게 읽을 대목이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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