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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진전 없이 빈 수레만 요란한 연금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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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1월 국회 연금개혁 특별위원회에서 김용하 민간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지난 1월 국회 연금개혁 특별위원회에서 김용하 민간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여야 모수개혁 논의 사실상 중단, 정부와 핑퐁게임

“인기 없어도 연금 개혁하겠다” 대통령 약속 지켜야

국민연금 개혁의 시계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국회 연금특위의 논의 상황을 보면 여야가 모수개혁 방안을 정부에 떠넘기려 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모수개혁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것으로 연금개혁의 근간이다. 공무원·사학연금 등 공적연금 개선을 추진한다고 했지만 본질에서 벗어난 물타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당초 연금특위 산하 민간자문위는 보험료율을 현재 9%에서 15%까지 단계적으로 상향하는 데는 합의했었다.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할지, 50%로 인상할지를 놓고는 열띤 토론을 벌였다. 여기에는 보험료율이 25년째 제자리라는 점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이 18.2%라는 점이 감안됐다. 모수개혁의 큰 방향을 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도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지금 추세면 2041년부터 연금재정이 적자로 전환되고, 2055년이면 기금이 소진된다. 5년 전인 4차 재정추계 때보다 소진 시점이 2년이나 빨라졌다. 2046년 출산율(1.21명)이 안정화된다는 전제를 했기 때문에 지금 같은 저출산 추세가 지속되면 상황은 더욱 악화할 수 있다.

보험료율 및 소득대체율 추이와 국회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가 검토했던 2가지 방안. [연합뉴스]

보험료율 및 소득대체율 추이와 국회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가 검토했던 2가지 방안. [연합뉴스]

그러나 국회가 모수개혁에서 손을 떼기로 하면서 민간자문위의 합의는 사실상 물거품같이 됐다. 지난 9일 연금특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성주 의원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문제는 쉽게 합의될 수 없다. 정부가 종합계획을 내면 국회가 최종 결정할 사안”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간사인 강기윤 의원도 “구조개혁을 충분히 논의하고 (모수개혁 논의를) 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개혁의 총대를 메고 싶지 않은 국회의 속내가 빤히 보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험료율을 올리는 게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금개혁은 피할 수 없다. 지금 고치지 않으면 그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진다. 5년 전 문재인 정부가 연금 고갈의 통지표를 받고도 무책임하게 개혁을 미뤄 발생한 대가를 이미 잊었는가.

당초 연금개혁의 키를 국회에 넘긴 정부의 잘못도 없지 않다. 입법 사항이라지만 연금 문제는 정부가 더욱 책임감 있게 논의를 이끌어가야 한다. 지난달 민간자문위의 ‘보험료율 15% 인상 합의’ 소식이 나왔을 때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정부안이 아니다”며 발뺌하기에 바빴다. 당장 쏟아질 여론의 비판이 두려워 선 긋는 데만 급급한 태도였다.

공은 다시 정부로 넘어갔다. 윤석열 대통령은 “연금개혁은 인기가 없어도 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예고한 종합운영계획 발표는 10월이다. 정부와 여야가 책임 있는 자세로 국민의 노후생활을 안심시킬 개혁에 임해 주길 바란다. 지금처럼 핑퐁게임하듯 서로의 책임을 떠넘기는 면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