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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반도체 키우려면 나무 한그루 아닌 생태계 키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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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반도체 산업은 거목 하나만 키운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거대한 숲을 만들어 생태계를 전반적으로 가꾸지 않으면 대만과 같은 경쟁력을 갖추기 힘듭니다.”

9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조명현 세미파이브 대표는 대만 반도체 시장을 ‘울창한 숲’에 비유하며 이같이 말했다. 반도체 디자인하우스인 세미파이브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국내 디자인솔루션 파트너(DSP) 4곳 중 가장 규모가 큰 회사다.

시스템 반도체 산업에서 디자인하우스는 팹리스(반도체설계 전문기업)와 파운드리(제조)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팹리스에서 설계한 ‘코드’를 파운드리에서 찍어낼 수 있는 ‘도면’으로 바꾸는 일을 담당한다.

세미파이브는 여기에 고객 아이디어를 설계해주는 디자인 플랫폼까지 더했다. 서로 다른 반도체도 전원 연결 구조 등 80%가량의 기본 토대는 동일하다. 이에 반도체를 설계할 때마다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지 않고 공통 부분을 재사용할 수 있게 효율화한 것이다. 조 대표는 “실제로 반도체를 처음부터 만들 때보다 비용이 50% 줄고, 개발 기간은 48%가량 단축됐다”고 말했다. 올해로 설립 5년째인 이 회사는 그동안 국내 디자인하우스 3곳을 흡수하고, 미국 반도체 설계자산(IP) 업체를 인수하면서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런데 파운드리 1위 TSMC가 있는 대만에는 세미파이브 같은 디자인하우스가 200개가 넘는다. 대만반도체산업협회 보고서(2021년)에 따르면 대만에는 235개의 디자인하우스가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세계 1위 디자인하우스인 GUC다. 조 대표는 “TSMC가 생길 때부터 GUC라는 디자인하우스를 만들어 키웠다”고 말했다. TSMC를 필두로 공정 설계를 하는 GUC와 팹리스가 탄탄하게 생태계를 지탱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GUC 매출의 70% 이상이 TSMC에서 나온다. 이들은 또 서로 지분 투자를 통해 파운드리-팹리스 간 끈끈한 ‘혈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19 시기 시장 호황과 미·중 무역전쟁 등에 힘입어 2020년 직접회로(IC) 설계 매출은 전년보다 23.1% 증가한 8529억 대만달러(약 35조75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다. 글로벌 IC 디자인 시장의 20.1%를 차지하고 있다. 같은 해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는 대만 전체 팹리스 매출의 18.5%에 이르는 1578억 대만 달러(약 6조6100억원)이었다

팹리스 분야에서 글로벌 3위로 꼽히는 미디어텍도 마찬가지다. 당초 이 회사는 대만 파운드리 회사인 UMC에서 분사했다. TSMC와는 경쟁사였으나 새로 거래를 트고 수시로 인력을 교류했다. 중저가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만들어 오던 미디텍은 TSMC와 함께 꾸준히 성장해 지난해 매출이 22조원에 이른다. 이 밖에도 반도체 생태계 가장 끝단을 차지하는 조립과 테스트를 담당하는 후공정(OSAT) 분야에서도 대만은 압도적이다.

반도체 스타트업 세미파이브 조명현 대표가 9일 오후 경기 판교 세미파이브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전민규 기자

반도체 스타트업 세미파이브 조명현 대표가 9일 오후 경기 판교 세미파이브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전민규 기자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시스템 반도체는 파운드리와 팹리스가 바늘과 실처럼 맞아 떨어져야 한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연주자 중 한 사람만 실수해도 작품이 망가지는데, 반도체 산업도 마찬가지”라며 “대기업부터 중견·중견기업까지 생태계가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반도체 생태계 확대를 위해선 고급 인력풀이 있어야 IP 회사·팹리스 등 생태계가 만들어진다”며 “대만처럼 숲 전체를 키우려면 우수 인력을 장기적으로 길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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