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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절치부심, 소니·도요타·소프트뱅크 힘 합쳐 ‘파운드리’ 공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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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K반도체가 궁색한 상황에 몰리는 데는 반도체 산업의 지각변동 탓이 크다. 삼성전자와의 메모리 반도체 치킨게임에서 연전연패했던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새 역사를 쓰게 되면서다. 대만은 메모리에서 만년 후발주자였다.

그러나 시스템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자 대만은 TSMC를 중심으로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에 올라섰다. 지난해 매출 2조2630억 대만달러(약 92조5400억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42.6% 늘어난 규모다. 영업이익도 이 기간 70% 급증해 1조1600억 대만달러(약 47조7900억원)를 거뒀다. 영업이익률이 49.5%에 달한다.

한때 메모리 점유율 80%를 차지했던 일본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파운드리 분야에서 와신상담하고 있다. 일본 라피더스는 차세대 반도체 국산화를 위해 다음 달까지 공장 부지를 선정하겠다고 8일 밝혔다.

고이케 아쓰요시 라피더스 사장은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나노미터(㎚·10억 분의 1m) 공정 반도체 양산을 위해 생산에 필수적인 물과 전력의 공급이 안정적이고 교통이 편리한 곳을 선정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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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피더스는 ‘일본 반도체 부활’을 위해 도요타와 소니, 소프트뱅크, 키옥시아, NTT, NEC, 덴소, 미쓰비시UFJ은행 등 일본의 국가대표급 회사 8개사가 힘을 합쳐 지난해 11월 출범했다. 일본 기업들이 70억 엔을 출자했고, 여기에 일본 정부가 10배인 700억 엔을 댔다. “2년 뒤 2나노 최첨단 반도체 시제품 라인을 구축하겠다”는 게 당장의 목표다.

나노는 반도체 회로 선폭을 의미하는 단위다. 선폭이 좁을수록 소비 전력이 줄고 처리 속도가 빨라진다. 2나노는 수퍼컴퓨터·인공지능(AI) 등의 ‘두뇌’를 맡는 최첨단 반도체다. 인텔이 2024년, 삼성전자·TSMC가 2025년 생산을 목표로 한다. 양산에 들어간 공정을 기준으로 현재 가장 앞선 기술은 3나노다.

일본 반도체 업계는 그동안 40나노에 멈춰 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쉽게 말해 축지법으로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하겠다고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라피더스는 IBM과 제휴하고, 미국의 연구 거점에 기술자를 파견할 계획이다.

일본의 이런 호언에 대해 전문가들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자본과 경험, 기술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반도체 업계의 ‘수퍼을(乙)’로 불리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이 공급하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얼마나 확보하느냐다. 이 장비는 대당 3억5000만 달러(약 4300억원)에 이른다. 반도체 장비 도입이나 연구개발(R&D), 공장 건설에도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본의 움직임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미국·대만과 손잡고 ‘반도체 3각 협업 체제’가 가동하면 반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어서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라피더스의 미래에 대해 한 가지 예외 가능성은 미국·대만과의 협업”이라며 “일본이 반도체 산업의 허리, 대만이 팔다리, 미국이 머리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과 대만의 협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TSMC는 내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구마모토 공장에 이어 일본에 두 번째 공장 건설을 검토 중이다. 권 교수는 “한국은 2나노 혹은 그 이하급 반도체를 양산하는 경쟁력을 확보하는 등 K반도체 수성을 위해 차별화한 기술적 자산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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