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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때도 그랬다…경찰에 '이태원 직무유기죄' 묻기 어렵다, 왜 [그법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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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법알 사건번호 108] ‘112 신고 부실 대응’ ‘늑장 보고’ 드러난 경찰…형사 처벌 가능한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이태원 참사’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경찰의 사전 예방 조치가 부실했어도 사후 대응이라도 빨랐으면 피해를 상당히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부분입니다. 압사가 발생한 지난달 29일 오후 10시 15분, 그보다 4시간 전부터 시민들은 “압사당할 것 같다”며 112 신고를 했지만 참사 현장인 해밀톤호텔 골목길 진입 통제나 일방통행 조치는 없었습니다. 이태원 파출소 경찰 A씨는 “다른 신고 출동까지 겹쳐 20명 인력으론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기동대 배치를 요청했지만 묵살됐다”고 했습니다.

경찰이 '이태원 참사' 당시 지휘부 보고를 늦게 한 책임을 물어 총경급 경찰 간부 2명을 대기발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사진은 3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로비. 연합뉴스

경찰이 '이태원 참사' 당시 지휘부 보고를 늦게 한 책임을 물어 총경급 경찰 간부 2명을 대기발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사진은 3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로비. 연합뉴스

대규모 인파나 혼잡 상황에 대한 통제는 ‘경찰 기동대’의 역할입니다. 이태원 현장에 기동대가 최초 도착한 시각이 오후 11시 20분께. 이미 비좁은 골목에 수백명이 넘어지고 깔린 10시 15분에서 1시간 이상 지났을 때입니다. 최초 압사 위험 신고 이후 다섯 시간이나 걸린 이유는경찰 지휘 시스템 자체가 작동하지 않은 겁니다.

여기서 질문

신고 접수부터 기동대 출동까지 주요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경찰 지휘 계통에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3일 오후 강원 춘천시 한림대학교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합동분향소에서 한림대 소속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다.연합뉴스

3일 오후 강원 춘천시 한림대학교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합동분향소에서 한림대 소속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다.연합뉴스

관련 법률은

① 형법 제122조 〈직무유기죄〉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직무를 유기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② 형법 제268조 〈업무상과실치사상〉 “업무상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사람을 사망이나 상해에 이르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법조계 의견은

우선 직무유기죄를 보겠습니다. 다수의 법률 전문가에게 문의한 결과, “직무유기죄 입증은 과실치사상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해석이 많았습니다. 직무유기죄는 과실범이 아닌 고의범이어서 직무를 버린다는 인식 아래 의도적인 방임 행위가 증명돼야 한다는 이유입니다.

경찰 자체 조사에 따르면, 112 신고센터가 용산경찰서에 상황을 전달하고, 용산서가 다시 이태원파출소에 전파한 것까진 확인됐습니다. 다만,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기동대 출동이 늦어진 건 늑장 보고가 원인이란 게 일부 드러났습니다. 이임재 용산서장(대기발령·수사의뢰)은 사고 당일 오후 9시 30분~10시께 보고를 받았는데, 기동대 출동 권한이 있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11시 36분에야 최초 보고했습니다. 윤희근 경찰청장도 2시간 가량 지난 자정 직후에야 보고를 받았습니다.

용산서장은 최소 1시간 반 동안 윗선에 보고하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현장에도 11시가 넘어서야 도착한 것으로 알려져 추가 조사로 경위를 밝힐 부분입니다.

이태원파출소 측은 또 “서울경찰청 기동대 지원 요청을 했으나 거부됐다”고 폭로했습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용산서가 서울경찰청에 기동대 지원을 요청했는지를 포함해 누가, 어떤 이유로 기동대 요청을 묵살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기본적으로 늑장 보고나 근무 태만 자체로는 ‘직무유기죄’가 입증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 형사부 부장판사는 “경찰이 신고를 받았다고 100% 출동해야 하는 건 아니다”며 “출동 여부는 경찰의 자율 영역, 재량권의 범위에 속하므로 직무유기죄가 성립하려면 아예 신고 전화를 안 받는 것과 같은 의도적인 방임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파출소 안에 핼러윈데이 관련 작전도에는 압사 사고 현장 해밀턴 호텔 왼쪽 골목길도 '적색선'으로 표시돼 있었다. 뉴스1

서울 용산구 이태원파출소 안에 핼러윈데이 관련 작전도에는 압사 사고 현장 해밀턴 호텔 왼쪽 골목길도 '적색선'으로 표시돼 있었다. 뉴스1

당일 서울경찰청 주말 당직 112상황실 책임자였지만, 근무지를 이탈해 본인의 사무실에 있다가 뒤늦게 상황실에 복귀한 류미진 총경도 비슷합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세월호 표류 등 이상 움직임을 전혀 포착하지 못하는 등 관제를 소홀히 한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 센터장(경감)을 포함해 해경 13명을 직무유기로 기소했지만 전원 무죄였습니다. 다만 이 중 12명은 근무일지를 사후 조작한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죠.

당시 대법원은 “직무유기죄에서 '직무를 유기한 때'란 공무원이 법령, 내규 등에 의한 추상적 성실의무를 태만히 하는 일체의 경우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의 무단이탈, 직무의 의식적인 포기 등과 같이 국가의 기능을 저해하고 국민에게 피해를 야기시킬 가능성이 있는 경우를 가리킨다.”(2015도10460 판결)고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근무태만 수준이 아니라 ‘일부러 직무를 거부하는 행위’에만 해당한다는 얘깁니다. 다른 부장판사도 “하급자 다수가 제자리를 지키며 정상적으로 근무한 이상, 몇 시간 다른 장소에 머무른 근무 태만으로는 ‘결근으로 직무수행이 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업무상과실치사죄의 경우, 진상 규명이 더 진행돼야 판단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쟁점은 '사전 예방 조치'와 '당일 대응'에서 과실이 있었는지 두 갈래로 구분됩니다.

먼저, 사전 조치에 있어 핵심은 ‘예측 가능성’입니다. 군중이 몰려 혼잡한 상황에서 압사가 발생할 수 있다고 객관적인 예측이 가능했는지가 중요합니다. 예측할 수 있었다면 그에 따른 주의의무가 부여되기 때문입니다.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는 “사고 며칠 전부터 경찰, 용산구청 관계자 등이 참석한 대책회의가 있긴 했다. 이밖에 이전 연도까지 어떤 방식의 인원 통제가 이뤄졌는지도 파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당일 대응 부분을 볼까요? ▶112 신고로 압사 사고를 충분히 예견 가능했는지 ▶기동대 출동, 신속한 진입통제·일방통행 등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원인이 무엇인지 ▶현장에서 압사 사고를 촉발한 다른 원인은 없었는지 등 이번 참사의 인과관계를 포함한 진상이 최우선으로 규명돼야 합니다.

경찰은 이임재 용산서장, 류미진 총경을 대기발령 이후 수사 의뢰하며 형사처벌 가능성을 열어뒀습니다. 두 사람 역시 압사 사고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고,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입증돼야 처벌이 가능합니다.

다만, 윤희근 경찰청장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지휘부의 경우 사고 1시간 이상 지나 늑장 보고를 받은 게 사실이라면 법적 책임을 묻기가 어렵습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몰랐다는 이유로 죄를 묻는다면 공무원에 대한 과도한 처벌”이라면서도 “첫 신고가 오후 6시 반인데 사고 발생한 10시 15분까지 경찰이 군중을 산개하는 가시적인 조치가 없었던 이유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세월호 때는 현장 지휘관만 ‘업무상 과실치사’ 유죄

세월호 참사 때도 구조 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은 현장 해경 및 지휘부를 업무상 과실치사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이 중 현장에 출동했던 해경 123정 정장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유죄가 인정돼 징역 3년이 확정됐습니다. 법원은 “배가 45도 기운 상황에서도 승객의 퇴선을 유도하지 않았다”는 근거를 들었습니다.

반면, 해경 지휘부에 대해선 “당시 현장 구조세력과 통신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심에서 무죄를 받은 상태입니다. 1심 재판부는 ‘통신 상태가 원활하지 않아 곧 침몰할 것이라고 예견하지 못한 상황에서 퇴선 명령 등을 하지 않은 것은 업무상 과실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태원 참사에서 경찰 지휘부의 업무상 과실치사죄가 성립하려면 ‘용산서 등 일선으로부터 상황 보고가 적시에 올라왔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는 판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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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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