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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친척과는 결혼 금지, 그 뜻밖의 결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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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호 20면

위어드

위어드

위어드
조지프 헨릭 지음
유강은 옮김
21세기 북스

서양은 다른 문화권과 어떤 차이가 있기에 지난 수백 년 동안 앞선 문명으로 전 세계를 지배해왔을까. 서양 문명에서는 기원 1000년 이후 기독교가 확산하면서 고유의 문화적·심리적·사회적 시스템이 자리 잡았다. 1600년 이후엔 ‘대항해 시대’를 열어 전 세계로 나섰다. 그리고 18세기 이후엔 산업혁명과 신기술 개발로 경제적 번영을 구가했다.

서양의 성공과 다른 문화가 부진한 원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이러한 문화권 간의 사회적 편차가 발생하는 원인에 대한 의문은 오랫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화두였다. 흔히 서구의 계몽주의·합리주의를 차별화 요소로 지적하지만, 이 기원은 대체 어디일까.

저자는 서양에서 결혼과 친족 관계의 사회적 규범에 기독교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결혼식 신부 꽃다발. [AP=연합뉴스]

저자는 서양에서 결혼과 친족 관계의 사회적 규범에 기독교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결혼식 신부 꽃다발. [AP=연합뉴스]

미국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 교수인 지은이는 ‘위어드(WEIRD)’라는 다섯 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지목한다. ‘서구의(Western·W)’ ‘교육수준이 높은(Educated·E)’ ‘산업화된(Industrialized·I)’ ‘부유한(Rich·R)’ 그리고 ‘민주적인(Democratic·D)’이라는 요소다. 머리말을 이으면 ‘기교한’ ‘기묘한’이라는 뜻의 단어가 된다.

지은이는 ‘위어드’가 우연히 정립된 게 아니라 기독교를 비롯해 특정한 역사적·제도적 환경 속에서 진화된 심리적인 특징이 작용했다고 강조한다. 특히 혼인과 가족·친족 관계에 관련한 사회적 규범에 대한 기독교의 영향력을 강조한다. 위어드 문화의 정착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유럽 지역에서 기독교의 ‘결혼 가족 강령’에 주목한다. 일부일처제, 그리고 사촌을 비롯한 가까운 친척·인척과의 결혼 금지가 포함됐다. 사촌과 굳이 결혼한다면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하며, 이에 대한 남은 기록은 지은이의 연구 대상이 됐다.

이 강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결혼한 부부의 독립 거주로, 또 장자 상속에 국한되지 않고 유언에 따른 임의적인 재산 분배나 기부로 이어졌다. 이는 친족 간 유대감을 느슨하게 하면서 집합적인 삶을 해체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 여파는 개인주의와 이성적이거나 분석적인 사고, 그리고 기부 문화의 발달로 연결됐다.

장자가 없는 경우 재산을 교회에 기부하는 사람이 늘면서 교회는 사회·경제적인 힘을 축적했다. 지은이의 연구에 따르면 그 영향은 지금도 이어진다. 유럽 각 지역을 연구한 결과, 한 지역에서 사촌 간의 결혼비율이 낮을수록 낯선 사람을 위해 자발적으로 헌혈하는 비율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또 기독교의 문명의 영향이 비교적 약하고 사촌 간 결혼 비율이 높을수록 분석적 사고의 비율이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기독교의 강령은 사회적 변화를 이끌고 개인의 독립적인 삶을 가능하게 했다. 친족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노력과 실력으로 사회·경제적 생활을 영위하는 서양식 사고와 삶의 방식이 여기에서 비롯한 셈이다.

이는 개인의 일탈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도 연결된다. 지은이가 친족에 대한 의존도를 가리키는 ‘친족집중도’를 바탕으로 ‘절도’의 의도를 연구한 작업은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서구 문명권인 미국 로스앤젤레스나 기독교 영향력이 큰 우크라이나의 스토로주니차는 친족집중도가 ‘0’에 가까운데 이 지역에선 절도를 판단할 때, 개인의 의도를 무시하고 범죄라는 점만 보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 친족집중도가 최고 수준인 남태평양 피지나 서남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선 절도의 의도를 살펴야 한다는 의견이 높았다. 관련한 통계 데이터는 범죄나 일탈에 대한 사회적 처벌이나 교육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혈연 중심의 친족 대신 개인이나 직업적 공동체가 사회의 핵심이 되면서 서양 사회는 도시에 사람이 몰리고 경쟁력이 강해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경제적 생산성도 높아졌다는 게 지은이의 지적이다. 기독교 교회에서 나온 규범이 서양 사회가 세계적인 영향력과 경제적 번영을 누리는 바탕을 이뤘다는 이야기다. 이는 중국이나 이슬람권과는 확연히 다른 서양 문명의 특징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위어드’가 인류의 역사와 뇌 구조까지 바꿔놓은 문화적 진화의 힘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책는 인류학은 물론 심리학·생물학·역사학·사회학·경제학까지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통섭적인 통찰이 돋보인다.

지은이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에서 심리학과 경제학 교수를 맡을 당시 ‘국가의 부와 빈곤’이라는 과목을 강의하면서 인류 진화를 경제학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 길에 눈을 떴다고 고백한다.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거나 서로 시너지를 얻는 학제간 연구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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