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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배상 뒤집어""불법부터 풀라"…대우조선 다시 파국 위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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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지욱 전국금속노조 부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20일 오후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에서 열린 긴급 브리핑에서 추후 일정에 대해 밝히고 있다.송봉근 기자

홍지욱 전국금속노조 부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20일 오후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에서 열린 긴급 브리핑에서 추후 일정에 대해 밝히고 있다.송봉근 기자

임금인상도 포기했는데 사측이 손해배상 합의를 뒤집었다. (홍지욱 민주노총 금속노조 부위원장)

정식 합의가 아니었다. 불법 점거부터 풀어야 손배소 문제도 조정할 수 있다. (권수오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업체협의회 회장)

지난 20일 오후 11시 30분쯤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내 서문 금융센터 6층. 이날 오전 11시부터 12시간 넘는 시간 동안 하청노조 파업 사태 해결을 두고 마라톤 교섭을 마친 직후 노사 양측 발언은 이렇게 엇갈렸다. 오전까지만 해도 ‘협상 타결’ 분위기 감돌았던 ‘교섭장’은 결국 손해배상소송 문제에 발목이 잡혀 종료되자 ‘성토장’으로 바뀌었다

대우조선해양 협력사 대표단이 21일 새벽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에서 긴급 브리핑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20220720

대우조선해양 협력사 대표단이 21일 새벽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에서 긴급 브리핑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20220720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거통고하청지회)는 이날 교섭을 정회한 뒤 긴급 브리핑을 열었다. 노조는 사측이 최근까지 이견 조율을 이뤘던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라는 합의를 뒤집었다고 주장했다. 홍지욱 민주노총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이 사태를 더 악화시키지 않고 공권력 투입을 막아야겠다는 일념으로 파업에 돌입한 이유였던 ‘임금인상 요구’까지 포기했다”고 말했다. “내일(21일) 협상에서도 사측이 의지가 없다면 평화적 해결을 위한 협상에만 매달릴 수 없다”고 했다.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업체협의회도 곧장 반박 브리핑을 열었다. 사측은 민·형사상 소송 취하 건에 대해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권수오 사내협력업체협의회 회장은 “민·형사상 문제는 최대한 협의해보겠다고 구두로 한 것이지 문서로 작성하는 등 합의된 것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권 회장은 “(불법 파업 조합원에 대한) 회사 내부 차원에서 사규에 의한 징계도 없이, 소송도 제기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대표들 의견이 있었다”며 “때문에 대표들을 설득하면서 조정할 수 있도록 ‘독(dock) 점거’ 등을 풀어달라고 했지만, 노조가 (손배소 안 한다라는 내용이) 100% 확인될 때까지 못 풀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양측은 21일 오전 10시부터 교섭을 진행했지만 여전히 손배소 문제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20일 오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에서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와 하청지회가 협상을 재개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20220720

20일 오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에서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와 하청지회가 협상을 재개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20220720

경남 ‘대마’ 대우조선지회 금속노조 탈퇴 시도

이런 상황에서 대우조선지회는 21일 오전 6시부터 총회를 열어 노조원에게 금속노조 탈퇴 의사를 묻는 찬반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오후까지 전체 조합원 중 약 70%가 투표했다. 투표는 22일 오후 1시까지 진행되며, 이날 오후 4시쯤 개표가 완료될 예정이다. 대우조선지회에는 4720여명이 가입해있다. 재적 인원 과반이 투표해 이 가운데 3분의 2가 찬성하면 대우조선지회는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기업형 노조로 전환된다. 하청노조 장기 파업에 대한 반발심 등으로 첫날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것으로 지회 측은 보고 있으며, 내부적으로 금속노조 탈퇴에 무게추가 쏠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회 한 관계자는 “결과는 투표함을 열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우조선지회는 금속노조 경남지부 조합원의 4분의 1 이상(26.1%)을 차지하는 이른바 ‘대마’다. 하지만 수천억원대 손해와 근로자 생계 위협 등 막심한 진통을 동반해 50일째 이어지고 있는 거통고 하청지회 파업과 관련, 금속노조가 제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책임론’이 대우조선지회 내부에서 제기되며 탈퇴 논의가 불거졌다.

21일 오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내 외업복지관 투표소에서 노조원들이 '조직 형태 변경 찬반투표(금속노조 탈퇴 여부)'에 참여해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21일 오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내 외업복지관 투표소에서 노조원들이 '조직 형태 변경 찬반투표(금속노조 탈퇴 여부)'에 참여해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투표 결과가 나온 이후에도 노노(勞勞)갈등의 여진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총회에 이르는 과정에서부터 금속노조 경남지부와 대우조선지회가 갈등을 빚었다. 경남지부는 이번 투표를 일찌감치 ‘일부 탈퇴 종용 세력에 의해 강행된 총회’로 규정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경남지부가 규약을 근거로 총회 투표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거란 우려도 나온다.

결렬되면 ‘최악의 사태’ 우려

하청 노사 양측은 대우조선해양 휴가 시작 전날인 22일까지를 교섭의 데드라인으로 보고 있다. 만약 교섭이 결렬되면 공권력 투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날 대우조선해양 사태 공권력 투입에 대해 말을 아꼈던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빨리 불법행위를 풀고 정상화하는 게 모든 국민이 바라는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말해 ‘빠른 상황 해소’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노사의 협상이 재개된 21일 오후 경찰들이 노조원들이 농성중인 제1도크를 방문해 농성장 주변을 살펴보고 있다. 송봉근 기자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노사의 협상이 재개된 21일 오후 경찰들이 노조원들이 농성중인 제1도크를 방문해 농성장 주변을 살펴보고 있다. 송봉근 기자

경찰은 현장 안전진단을 마친 상태이며, 21일부터 사전 모의연습 등 공권력 투입에 대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이날 경찰과 소방 관계자들이 조선소내 1독(dock) 안팎을 둘러보는 모습이 포착됐다. 경찰 내부에서는 세부적인 작전 계획 및 투입 시기 등을 조율하고 있다. 손배소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반복하는 하청업체 노사 협상이 끝내 결렬되면 공권력 행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노사의 협상이 재개된 21일 오후 농성장인 1독(dock)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노조원들이 소화기를 준비해 두고 있다. 송봉근 기자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노사의 협상이 재개된 21일 오후 농성장인 1독(dock)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노조원들이 소화기를 준비해 두고 있다. 송봉근 기자

전문가는 공권력 행사를 통한 해결 과정에서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웅희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물리력이 투입되면 언제나 예상 밖의 상황이 생길 수 있다. 현재 파업 현장에 시너가 반입돼있고, 상황이 매우 폭력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이어 “임금 교섭과 달리 노조에 대한 손배소 문제는 여러 주체의 의사가 반영되는 문제로 보인다. 합리적인 타협점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이 21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과 면담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박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이 21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과 면담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이날 현장을 찾은 박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공권력 투입에 대한 (파업 참여자들의) 불안감이 매우 큰 상황으로 파악했다. ‘살아서 나가고 싶다’ ‘어떠한 물리적 충돌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인권위가 이 부분에 대해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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