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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가문과 결혼하며 영토확장, '해가 지지 않는' 천년제국[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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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
마틴 래디 지음

박수철 옮김

까치

합스부르크 왕가 카를 5세는 1516년 외할아버지 페르난도 사후에 어머니 가문의 스페인 왕위를 물려받았다. 이후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중앙 유럽 합스부르크 영지에 스페인, 남부 이탈리아, 북아프리카 해안, 포르투갈 등이 추가됐다. 카를 5세 치세에는 또 스페인이 식민개척한 아메리카 신대륙의 멕시코, 페루, 칠레가 영토가 됐다. 동아시아의 필리핀도 영토로 선포됐다.

카를 5세는 세계의 지배자였다. 왕 중의 왕, 우주의 군주였다. 중앙 유럽을 물려받은 그의 아들 페르디난트 1세는 헝가리와 보헤미아까지 흡수해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가족 초상화. 앞줄에 훗날의 카를 5세, 페르디난트 1세, 헝가리의 러요시 2세가 있다. 베른하르트 슈트리겔 그림. 1516년경.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가족 초상화. 앞줄에 훗날의 카를 5세, 페르디난트 1세, 헝가리의 러요시 2세가 있다. 베른하르트 슈트리겔 그림. 1516년경.

유럽의 많은 왕가 중에 합스부르크만큼 오랜 기간 영토와 권력을 확장하고 대륙과 대양을 지배한 가문은 없을 것이다. 영국 하노버 왕가의 빅토리아 여왕에 몇백 년 앞서 처음으로 ‘해가 지지 않는 방대한 제국’을 건설한 것도 이들이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좌우명은 ‘더 멀리(Plus Ultra)’다.

합스부르크의 상징인 오스트리아 빈의 호프부르크 궁전 내 제국도서관의 천장 프레스코화에는 ‘AEIOU’라는 이합체시(각 구의 첫 글자를 조합하면 다른 뜻이 나타나는 시)가 있다. ‘오스트리아가 전 세계를 지배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는 10세기 칸첼린에서 시작해 왕조가 몰락하는 20세기 초까지 영광과 오욕이 교차하는 천 년의 가문역사를 거의 완벽하게 집대성해 놓은 대작이다.

시골의 영주에 불과했던 합스부르크 가문 사람들은 원래 라인강 상류 지역과 프랑스-독일 국경지대인 알자스 그리고 스위스 북부 아르가우에서 살았다. 칸첼린의 후대는 수도원을 토대로 부를 축적했다. 수많은 자녀를 유력 가문과 결혼시켜 상대 가문의 대가 끊어질 때마다 영토를 흡수하면서 세력을 키웠다.

신성로마제국은 합스부르크와 거의 동일시된다. 황제직이 공석이었던 대공위시대(1250~1273년)가 끝나고 합스부르크의 루돌프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에 선출되면서 가문의 기반이 더욱 다져졌다. 이후 이 가문은 신성로마제국을 간간이 통치했고 1438년부터 이 제국이 무너진 1806년까지는 끊임없이 통치했다.

루돌프 2세의 초상. 로마신화에 나오는 계절, 정원, 과수원의 신 베르툼누스로 묘사했다. 주세페 아르침볼도 그림. 1590~1591년경. . [사진 까치]

루돌프 2세의 초상. 로마신화에 나오는 계절, 정원, 과수원의 신 베르툼누스로 묘사했다. 주세페 아르침볼도 그림. 1590~1591년경. . [사진 까치]

18세기 마리아 테레지아는 합스부르크 가문이 낳은 걸출한 스타다. 카를 6세 사후 남성 혈통이 끊어져 왕위를 승계한 그는 치세의 절반을 전쟁으로 보냈다. 하지만 주변의 우려를 불식하고 합스부르크 가문을 지켜냈으며 아들 요제프 2세와 함께 계몽군주로서 대대적인 개혁에 성공했다.

노예 상태의 소작농을 자작농으로 전환시키고 농민의 자녀를 의무적으로 등교시켜 교육을 받게 했다. 귀족의 특권을 제한하는 조치도 시행했다. 흡혈귀 미신, 복권 당첨 번호 예언, 가톨릭 교회의 사후의 마법 등 비과학적인 관행을 철폐하고 공무원과 의사를 파견해 미신을 타파했다.

그의 남편인 프란츠 슈테판은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됐으며 무역상을 통해 전 세계 식물을 수집해 빈자연사박물관 세우는 등 지식의 수호자를 자처했다.

1914년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암살 사건은 합스부르크가의 몰락을 재촉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발발한 1차대전에서 독일제국과 동맹을 맺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전쟁에 패했다. 합스부르크 가문도 막을 내리게 됐다.

1914년 6월 28일 오전 10시 45분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그의 부인이 사라예보 시청을 떠나는 모습. 5분 뒤 두 사람은 죽음을 맞았다. 이날은 두 사람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했다. [사진 까치]

1914년 6월 28일 오전 10시 45분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그의 부인이 사라예보 시청을 떠나는 모습. 5분 뒤 두 사람은 죽음을 맞았다. 이날은 두 사람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했다. [사진 까치]

합스부르크 가문은 천 년의 명맥을 유지하며 유럽과 전 세계의 정치, 사회, 문화,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혁명 때 처형된 마리 앙투아네트와 황후 시시, 멕시코의 막시밀리안 황제, 루돌프 황태자 등 예술 작품의 주인공이 된 인물도 이 가문 출신들이다. 단일한 민족 집단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보편성은 흥미로운 탐구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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