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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 막은 헌재소장 공관, 운영비 예산은 ‘깜깜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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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헌법재판소장 공관 측의 요청으로 서울 종로구 삼청동 청와대 인근 탐방로가 끊긴 후 ‘후진국형 공관 문화’라는 비판여론이 커지는 가운데, 헌재 측이 많게는 1년에 1억 원 이상의 공관 운영 예산을 쓴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공관 운영 자체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된다는 점에서 각 지자체 공관처럼 시민에게 개방하거나 매각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2일 헌재의 ‘헌법재판소장 공관 예산 및 집행내역’에 따르면 삼청동 헌재소장 공관을 운영하는 데 통상 월 400만 원 가까운 예산이 투입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의 경우 공공요금 및 제세(1509만원), 공관 유류비(1465만3000원), 일용 임금(685만1000원) 등 총 4234만7000원이 투입됐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하지만 당시 경비시설을 새로 지으면서 발생한 설계 및 공사비 7199만8000원을 합칠 경우 1년간 총 예산 집행액은 1억1434만5000원에 달한다. 이에 대해 헌재 측 관계자는 “일용 임금은 환경미화, 임야관리 등 인력에 쓰인 것으로 안다”며 “경비시설 확충 등 돌발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통상 한해 공관 예산으로 4000만~5000만 원이 쓰인다”고 설명했다. 현재 헌재소장 공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 한 동으로 대지면적 2810㎡, 건물면적 1051㎡ 규모다.

전문가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공관이 운영된다는 점에서 예산 정보를 상시로 공개하고 납세자인 국민의 감시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각 지자체장 관사 운영 현황 등과 달리 헌재소장 등의 공관 관련 운영예산은 일반 국민이 알 수 있는 통로가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다. 국내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정보공개법 6조(공공기관의 의무)와 9조(비공개 대상 정보)에 따라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헌재를 비롯해 국회와 법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보공개 의무 대상에서 일부 제외된다. 세입세출 각목명세서를 비롯해 예산·지출의 세부사항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타 정부 기관이나 전국 광역·기초자치단체와 비교된다.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헌재 소장처럼 현재 단독주택형 관사를 사용 중인 곳은 강원도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건물면적은 414.2㎡로 헌재소장 공관 면적과 비교하면 40% 수준으로 작다. 강원도의 경우 2020~2021년 한 해 평균 전기·도시가스·수도요금, 소독·소(小)수 선비용으로 530여만 원의 예산을 지출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관 폐지가 잇따르는 시대적인 흐름에 맞춰 헌재소장 공관 역시 민간에 개방하거나 매각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고위 공직자라고 특권을 누려선 안 된다”며 “하루빨리 공관은 사라져야 한다. 벌써 늦었다”라고 말했다.

국유재산법상에도 허점이 많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관 운영 근거 법령을 같은 법 시행령에 두고 있으나 국유재산으로서의 범위만 나열하고 있어서다. 현재 ‘공무원 주거용 재산 관리 기준’ 등이 있으나 어겨도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는 등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홍기용 인천대(경제학부) 교수는 “납세자에게 적어도 공관 투입 비용의 총액이라든가 핵심적인 계정과목 등은 소상히 설명하고 국민의 감시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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