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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싸움' 전락한 교육감 직선제...시·도지사 러닝메이트가 대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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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지난달 19일 오후 세종시 보람동에 부착된 시장, 비례대표, 교육감 후보들의 벽보를 한 시민이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지난달 19일 오후 세종시 보람동에 부착된 시장, 비례대표, 교육감 후보들의 벽보를 한 시민이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90만3227표'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나온 무효표 수다. 투표장에 간 국민 90만여명이 교육감 뽑기를 포기했거나, 표기를 잘못했다는 의미다. 함께 치른 시·도지사 선거에서 나온 무효표의 2.6배다. 교육감 선거에 관심이 없거나, 후보가 누군지도 모르고 투표장으로 향하는 유권자가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다. 직선제가 도입된 지 15년째 반복되는 현상이다.

'깜깜이 선거 피로감'에 선거는 끝났지만 이번에는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교육계에서는 지금이 기회라는 분석이 나온다. 2010년 첫 전국 단위 교육감 선거가 시행된 이후 처음으로 진보와 보수 중 어느 한쪽이 압도하지 못하는 9대 8의 팽팽한 구도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직선제 이후 정치권에서는 여러차례 교육감 선거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실제 법 개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른바 '진보 교육감 전성시대'가 계속되면서 상대적으로 진보진영 측이 제도 개편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영향이 컸다. 하지만 이번 선거로 힘의 균형을 이루면서 여야가 한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이 갖춰졌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정치인들도 교육감 선거를 덜 중요한 선거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면서 "이제는 함께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껍데기만 '정치중립' 선거, 차라리 정당 표명하자"

정당이 개입하지 못하는 현행 교육감 선거의 근거는 헌법이 명시하는 '교육의 정치중립성'이다. 문제는 그러다보니 유권자들의 무관심 속에 후보가 난립하고 선거 결과도 사실상 단일화라는 선거 공학에 따라 결정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당의 공천 과정만 없을 뿐 진영간 대결이라는 정치색 역시 엄연히 존재한다.

이때문에 '정치 중립성'을 융통성 있게 해석해 깜깜이 선거의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시·도지사 후보와 교육감 후보가 동시에 입후보하는 러닝메이트제 등이 대표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 시절 “교육감이 주민에 의해 선출되더라도 정치적 중립과 과도한 선거운동에서 좀 합리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광역단체장과의 러닝메이트 개념이 좋지 않겠냐”고 언급한 바 있다.

러닝메이트제는 지자체와 교육청간 갈등의 소지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 가상준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자체장과 교육감 간 갈등이 완화할 수 있다”며 “교육자치를 지방자치의 산하 개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감할 수 있는 후보들이 함께 보조를 맞춰가는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교육감 선거에 드는 비용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발 더 나아가 정당의 개입을 허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선거 자체가 이미 “정치적 행사”라는 이유다. 서현진 성신여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이념을 표방하지 않는 후보들은 당선되기 어렵다. 교육감 선거가 정치적 이념성을 벗어날 수 없는 구조”라며 “껍데기만 독립적인 선거를 언제까지 치러야 하나. 이럴 바엔 정당을 표명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현행법에선 정당이 후보자를 추천할 수 없고, 후보자는 정당을 지지하거나 표방할 수 없다. 안선회 중부대 교육학과 교수는 “난립하는 후보를 정리하고 민심을 수렴해서 정책을 만드는 역할을 정당이 할 수 있다”며 “러닝메이트나 공동 등록제를 주관할 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조희연(왼쪽부터)·조전혁·박선영·조영달 서울시교육감 후보들이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S에서 서울시교육감선거 후보자 토론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조희연(왼쪽부터)·조전혁·박선영·조영달 서울시교육감 후보들이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S에서 서울시교육감선거 후보자 토론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교육감에 집중된 권력구조도 바꿔야"

직선제 피로감이 커지면서 일각에선 임명제로 돌아가자는 주장도 나온다. 시‧도지사가 교육감을 직접 임명하자는 것이다. 시‧도의회의 동의를 거쳐야 하므로 오히려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다만 참정권을 완전 배제하고 15년 전으로 회귀하는 방식이라 현실적으로 반발이 클 수 있다.

학부모와 교원 등 교육감 선거와 이해관계가 있는 유권자만 참여하는 '제한적 직선제'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유권자를 일부 시민으로 제한하면 참정권이 침해될 수 있고, ‘이해 관계자’를 결정하는 기준을 놓고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교육감 선거 제도를 유지하되 완전한 '공영제'를 적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개인 선거운동은 최소화하면서 전체 선거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는 방법이다. 고전 제주대 교수는 “교육은 특수한 분야인 만큼 후보자 개인의 선거운동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며 “개인이 유세차를 타고 다니는 운동은 지양하고 TV토론회 기회를 늘려 유권자들이 교육 정책을 통해 비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선거와 달리 교육감 선거만 국가가 부담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문제가 뒤따를 수 있다.

13일 오후 세종시 어진동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열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교육감 당선인 간담회에서 도성훈 인천시 교육감(오른쪽부터)과 강은희 대구시 교육감, 하윤수 부산시 교육감, 최교진 세종시 교육감 당선인 등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뉴스1

13일 오후 세종시 어진동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열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교육감 당선인 간담회에서 도성훈 인천시 교육감(오른쪽부터)과 강은희 대구시 교육감, 하윤수 부산시 교육감, 최교진 세종시 교육감 당선인 등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뉴스1

교육감에 집중된 권력을 감시·견제할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선거 방식을 어떻게 바꾸든 ‘권력 독점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면서 “선거방식을 논의하기 전에 교육감에 지나치게 집중된 권력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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