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양보지심” 3일 뒤 “정치 야합”…국민의힘 오락가락 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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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과 박홍근 더불어민주당(오른쪽),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6일 ‘검수완박 중재안’ 협의를 위해 만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과 박홍근 더불어민주당(오른쪽),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6일 ‘검수완박 중재안’ 협의를 위해 만나고 있다. 김상선 기자

“혜안과 양보지심으로 (만든) 원만한 합의”가 “정치 야합”으로 뒤바뀌는 데는 3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박병석 국회의장,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함께 마련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에 서명하면서 해당 안을 한껏 치켜세웠다. “박병석 의장의 혜안과 박홍근 원내대표의 양보지심으로 원만한 합의를 통해 상생과 협력의 정치를 열었다”며 “정말 감사드리고 다행”이라고 말했다. 기자들과 만나선 16분에 걸쳐 ‘백브리핑’ 형태로 중재안의 당위성을 설명하며 “일선 검사들은 잘된 합의안이다, 이렇게 생각한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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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민의힘은 서명 사흘 만인 25일 번복 의사를 밝혔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검찰의 6대 범죄(수사권) 가운데 선거, 공직자 범죄가 빠진 것에 대해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한 데 이어 26일에도 “재협상을 거듭 요청한다”고 했다. 스스로 서명한 합의안을 “민심에 반하는 중재안”이라고 평가절하한 뒤 “그대로 통과시킨다면 정치 야합, ‘셀프 방탄법’이라는 국민 지탄을 면할 길이 없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은 1시간23분에 걸친 22일 의원총회 추인 절차도 스스로 무위로 만들었다. 이날 “저도 동의 의사를 밝혔고 의총에서 추인됐다”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6일 “의총에서 더 논의가 되고 그걸 바탕으로 집단적 판단이 이뤄졌어야 했다”고 말했다. 사흘 만의 합의 번복이 머쓱했던지 “지금 더 당혹스러운 건 국민들”이라고 자조 섞인 해석을 덧붙였다.

사실 이런 좌충우돌은 22일 이미 예견돼 있었다. 중재안 추인을 위해 열린 국민의힘 의총에는 113명의 당 소속 의원 중 불과 40여 명이 참석했다. 의총 직후 한 초선 의원은 “원내대표가 전문가라 상세한 설명을 듣고 다들 납득했다”고 말했고, 한 3선 의원은 “내용을 자세히 모르겠다. 일찍 나왔다”고 했다. 일부 의원은 “법사위원이나 원내지도부에게 물어보라”고만 했다. 일각에선 검찰의 수사 대상에서 선거범죄를 빼는 것에 국민의힘도 내심 동조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저는 국민들 먹고사는 것만 신경 쓸 것”이라며 그간 논의에 거리를 둬왔다. 배현진 당선인 대변인에 따르면 22일 윤 당선인은 권 원내대표로부터 전화로 중재안 내용을 보고받았지만 ‘국회와 당이 잘해 주실 것’이라며 특별한 주문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재안에 비판 여론이 들끓자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을 통해 “검수완박 법안이 헌법 정신을 크게 위배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25일), “중재안이라는 게 의미가 없다”(26일)고 했지만 타이밍을 놓친 뒤였다. 검찰의 집단 반발, 국민의 싸늘한 민심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그럼에도 장 실장이 26일 “대통령 당선인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문재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실 것”이라고 한 건 마지막 공마저 민주당과 청와대에 돌리는 것처럼 들렸다.

“힘없는 소수정당”이라지만 국민의힘은 불과 10여 일 후면 집권여당이 된다. 지금도 제1야당으로 주요 협상에 책임 있게 나서 국민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이끌어낼 책무가 있다. “합의문 잉크도 마르기 전에 입장을 번복하는 ‘갈지자’ 행보”(25일 박홍근 원내대표)라는 민주당의 비판에 이번만큼은 국민의힘이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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