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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만 모르는 트루먼쇼 같다" 본인엔 관대, 尹엔 박했던 그날 [현장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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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데 본인만 모르는 모습이 마치 영화 ‘트루먼쇼’를 보는 것 같았다.”

김형동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25~26일 JTBC에서 방영된 문재인 대통령과 손석희 전 앵커의 특별대담(‘대담 문재인의 5년’)을 이렇게 평가했다. 김 대변인은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민심과 괴리된 채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지낸 문재인 대통령 5년 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압축판이었다”고 했다.

JTBC에서 25. 26일 방영된 문재인 대통령과 손석희 전 앵커의 특별대담에서 문 대통령이 발언하는 모습. JTBC 방송 화면 캡처

JTBC에서 25. 26일 방영된 문재인 대통령과 손석희 전 앵커의 특별대담에서 문 대통령이 발언하는 모습. JTBC 방송 화면 캡처

이런 비판적인 평가가 현 정부와 대척점에 있는 야권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문 대통령의 대담을 본 중도층과 일부 여당 인사들 사이에서도 “당황스러웠다”는 반응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이 대담에서 부동산·경제·남북 문제와 인사·내로남불 논란, 조국 사태 등을 넘나들며 조목조목 자기 생각을 밝혔다. 하지만 이 정부에서 불거진 각종 문제에는 진정성 있는 사과 대신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해명을 많이 했다. 또 정부 성과에 대한 평가는 일반적인 여론에 비해 많이 후한 편이었다. 불리한 사례는 거론하지 않거나 말을 돌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JTBC 손석희 전 앵커와 대담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JTBC 손석희 전 앵커와 대담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문 대통령이 특히 열변을 토했던 분야는 부동산 문제였다. 그는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전 세계적 현상”이라며 “비슷한 수준의 나라 중 우리나라의 부동산 가격 상승 폭이 가장 작은 편에 속한다”고 말했다. 손 전 앵커가 “받아들이기엔 당혹스럽다”며 “통계의 맹점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한국은 부동산 자산 비중이 커서 큰 폭으로 올랐을 때 국민이 느끼는 위기감이 컸다”고 하자 “그런 것까지 얘기하면 굉장히 복잡해진다”고 말을 돌렸다.
과거 대통령 본인이 부동산 문제에 대해 직접 사과했었다는 사실을 잊은 듯한 태도였다. 집값 상승을 ‘다주택자와 투기꾼들의 문제’로만 몰아갔던 정부 실책에 대한 반성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가 자신 있다.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안정화하고 있다”(2019년 ‘국민과의 대화’), “부동산 종합대책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2020년 8월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고 했던 과거의 인식이 다시 살아돌아온 느낌이었다.

‘조국 사태’관련 발언도 민심과는 거리가 있었다. 문 대통령은 “그 사람과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은 마음이 아프다”며 “잘못한 게 있어서 벌을 받는 것이 맞다고 하더라도 결국 우리 정부에서 민정수석이 되고, 법무부장관에 발탁되고 하는 바람에 그런 상황이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국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공정의 가치나 내로남불 논란, 반으로 쪼개진 국민 갈등에 대한 최고지도자로서의 자성, 국민들의 상처를 달래는 다독임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 침류각에서 JTBC 손석희 전 앵커와 대담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 침류각에서 JTBC 손석희 전 앵커와 대담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남북문제에 대해서도 과거의 성과를 강조하는 데 주로 시간을 할애했다. 점점 가팔라지는 북한 도발 수위에 대한 대통령의 진심어린 고뇌와 우려를 접하긴 어려웠다. 문 대통령은 “2017년 핵 실험이 거듭되면서 한반도에 조성됐던 전쟁 위기를 대화와 외교의 국면으로 전환했다”며 “그 점에서 저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결과론적으로 (남북 관계가) 다시 원위치가 돼버린 상황이기도 하다”는 손 전 앵커의 질문에는 “그러면 5년간의 평화는 어디 날아갔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억울하다”라거나 “문제없다”는 식의 대응이 잦았다. 인사검증 실패 논란에는 “인원이 얼마 안 되는 청와대 검증이 완전무결할 수 없다.검증실패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 취임 전 스스로 밝혔던 5대 임명 불가 원칙(위장 전입, 논문표절, 세금 탈루,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을 두고는 “지금 눈높이와는 다른 시대를 살아왔던 분들”이라며 “도덕성 검증 쪽에만 너무 매몰돼 정치화되니까 망신주기 청문회가 된다”고 했다. 청와대 참모들의 부동산 투기 등으로 촉발된 ‘내로남불’ 논란에는 “저쪽(보수 진영)이 부동산 보유나 투기 등 모든 면에서 더 문제인데 가볍게 넘어가고, 이쪽(진보 진영)의 보다 작은 문제들이 훨씬 부각되는 이중잣대도 문제”라고 억울해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JTBC 손석희 전 앵커와 대담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JTBC 손석희 전 앵커와 대담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이처럼 자기 진영엔 관대했지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겐 시종일관 박한 평가를 했다. 윤 당선인의 용산 집무실 이전 계획에 대해서는 “별로 마땅치 않게 생각된다”며 “안보 위기가 고조되는 정권 교체기에 ‘3월까지 방 빼라. 5월 10일부터 업무를 시작한다’는 식의 일 추진은 정말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반면 자신이 ‘광화문 대통령 시대’ 공약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선 “옳은 판단이었다”고 넘어갔다. 윤 당선인이 대선 후보 시절 북한 선제타격론 등을 언급한 것을 두고는 “국방장관이나 합참의장 정도면 몰라도, 국가 지도자로는 적절하지 못하다”며 “후보 시절 모드와 대통령 모드는 달라야 한다”고 훈수를 뒀다.

윤 당선인 측은 발끈했다. 당선인 측 관계자는 27일 “전직 대통령이 협조해서 새 정부를 잘 도왔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국가지도자의 품격”이라고 맞받았다. 배현진 당선인 대변인은 “퇴임 시점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책무에 집중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반면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그간 문재인 정부를 둘러싼 의혹과 프레임, 적극적으로 공박하지 못한 것들까지도 대통령께서 다 말씀하셨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퇴임 뒤 대통령이 행복하게 남은 삶을 사셨으면 좋겠다”며 “퇴임 후 대통령을 걸고넘어지면 물어버릴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퇴임을 앞둔 대통령의 인터뷰가 또 우리 사회에 갈등의 화두를 던진 모양새다. 물론 문재인 정부에도 공과(功過)가 두루 있을 것이고, 과보다는 공을 부각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을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국민들중에도 부동산 문제나, 내로남불 논란 관련 발언엔 동의하지 못하는 이들이 꽤 있었을 듯 하다. 본인은 윤 당선인에게 "후보 모드와 대통령 모드는 달라야 한다"고 했지만, 정작 대담에 임한 문 대통령 자신은 '정권재창출에 실패하고 떠나는 현직 대통령 모드'에 진솔했는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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