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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경찰, 단어만 복붙"…4·19혁명 폐지한 ‘경찰 영장청구’ 부활했다[Law談스페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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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를 위해 제출한 ‘검수완박’ 법안(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놓고 기존 법률 ‘검사’ 자리에 ‘사법경찰권’을 ‘복붙’(복사, 붙여넣기)한 졸속 법안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헌법재판소 결정례 등을 분석해 4·19 혁명 이후 헌법이 경찰의 직접 영장청구를 없애고 검사의 영장청구권·수사지휘권을 확립한 것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위헌 법률” 주장도 줄을 잇고 있다.

김오수 검찰총장이 지난주 “검수완박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한 바통을 넘겨받은 일선 검사들은 “헌법 공부를 다시 하라”(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 김종민 의원 등)는 민주당에 직접 반박하고 나섰다.

김오수 검찰총장이 더불어민주당의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 법안 발의에 반발하며 사의를 표명한 17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는 간부들의 긴급 회의가 소집되는 등 하루종일 긴장감이 감돌았다. 뉴스1

김오수 검찰총장이 더불어민주당의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 법안 발의에 반발하며 사의를 표명한 17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는 간부들의 긴급 회의가 소집되는 등 하루종일 긴장감이 감돌았다. 뉴스1

17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검사들은 안동지청이 낸 ‘헌법재판소 결정에 비추어 본 형사소송법 등 개정안의 위헌성’ 자료 등을 통해 형소법 개정안 일부 조항은 그 내용 자체로 위헌이라고 지적했다. 기존 형사소송법 조문 파일을 열고 ‘Ctrl+F’(찾아바꾸기) 기능을 활용해 단순히 ‘검사’를 ‘사법경찰관’으로 바꾸면서 헌법에 명시된 검사의 영장청구권조차 훼손했다는 점에서다.

현행 헌법 12조 3항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따라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16조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는 검사의 신청에 따라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를 위배한다는 것이다.

헌법 12, 16조(검사의 영장신청권)

인신·주거에 대한 체포·구속·압수·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하고, 현행범인 경우나 중형죄를 저지르고 도피 또는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경우 사후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민주당이 발의한 형소법 개정안은 검사가 사법경찰관의 신청 없이 직접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검사의 신청 없이 판사가 직권으로 구속영장을 발부한 사례에 대해 “사법적 억제의 대상인 수사기관이 사법적 억제의 주체인 법관을 통제하는 결과를 낳아 오히려 영장주의의 본질에 반한다”며 판사의 직권 영장 발부는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한 적이 있다.

이에 검사들은 “사법적 억제의 대상인 사법경찰관이 사법적 억제의 주체인 검사를 오히려 통제하는 결과를 낳는다”며 법안이 헌법상 검사의 영장신청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오영환, 박찬대(왼쪽부터) 의원이 지난 15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위한 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하고 있다. 박홍근 원내대표가 대표발의한 개정안에는 민주당 소속 172명 국회의원 전원이 이름을 올렸다.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오영환, 박찬대(왼쪽부터) 의원이 지난 15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위한 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하고 있다. 박홍근 원내대표가 대표발의한 개정안에는 민주당 소속 172명 국회의원 전원이 이름을 올렸다. 국회사진기자단

개정안은 또 사법경찰관이 검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영장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도 포함돼 있다. 사후 압수수색 영장 청구에 관한 형소법 217조에서다. 현행법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1항(체포 후 24시간 이내 긴급 압수·수색·검증) 또는 216조 1항 2호(체포 현장에서의 압수·수색·검증)에 따라 압수한 물건을 계속 압수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지체 없이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는데, 개정안에는 ‘검사’가 삭제돼 사법경찰관만 압수수색영장 청구의 주체로 명시됐다.

헌법 11조(평등권), 27조(재판청구권)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개정안은 검사의 6대 범죄 수사권을 없애면서 ▶경찰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범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소속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범죄에 대해선 예외를 뒀다. 이외 일반 사건은 경찰이 1차 수사를 마친 경우 직접 보완수사를 하지 못한다. 문제는 검사가 수사하면 불기소 처분 때 항고·재항고·재정신청 등 불복절차를 빠르게 밟을 수 있는 반면, 경찰이 수사하면 불송치 결정 때 달리 손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고소인 등의 이의신청 등으로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도록 한 규정도 전부 없앴기 때문이다.

헌재는 2020년 공수처법상 수사 대상자에 따른 차별 문제가 제기되자 “공수처 수사 등의 대상이 된다 하더라도 적용되는 절차·내용·방법 등은 일반 형사소송절차와 같고, 수사 등의 주체만을 수사처로 달리할 뿐”이라며 평등권 침해가 아니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의 경우 수사 대상에 따라 절차·내용·방법 등 형사소송절차가 달라져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게 검사들의 견해다. 검사들은 또, 일반 국민인 피해자가 형사재판절차를 시작하고 싶어도 경찰 불송치 땐 도리가 없어 재판청구권 역시 침해된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당 소속 의원들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반대하는 내용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당 소속 의원들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반대하는 내용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70년 형사사법제도 근간 갈아엎어, 국민투표 부의 대상”

개정안에는 공판 단계에서 압수물 처분과 당사자 통지에 관한 규정에도 ‘검사’ 대신 ‘사법경찰관’이 삽입돼 있다(135조). 사법경찰관은 소송 당사자(공판검사·피고인·피해자 등)도 아니고, 기소된 사건의 압수물은 검사가 보관해 사법경찰관에 통지할 이유가 없는데도 기계적으로 ‘검사’를 ‘사법경찰관’으로 고친 것이란 게 법조인들의 분석이다. 전날(16일) 항의성 사표를 낸 김정환 서울북부지검 형사3부장은 “현행 조문을 펼쳐놓고 키워드로 ‘검사’를 검색해 들어내는 식으로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70년간 유지된 형사사법시스템을 통째로 흔드는 만큼 국민투표 부의 요건을 갖췄다는 반응도 나온다. 박광현 부산지검 형사2부장은 “현재 발의된 법안은 70년간 유지·발전시켜 온 형사사법제도의 근간을 갈아 엎으면서도 졸속입법으로 내용이 상당수 상충·모순되거나 입법공백까지 대거 포함된 상태”라며 “시행될 경우 국가와 국민의 혼란상과 각종 피해를 고려하면 헌법 72조에 명시된 ‘그 밖의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이며 이는 ‘대통령 국민투표 부의권’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박 부장검사는 “소위 ‘검수완박’ 법안에서 경찰, 공수처 비리는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게 했다고 해서 일견 그럴듯하게 들리나 수사기관 피의자만 수사할 수 있고 그 바탕이 되거나 연결된 기업·브로커·정관계는 수사 대상에서 제외해 형량이 높은 뇌물 비리는 빠져나가게 만드는 구조가 형성된다”며 “검찰총장이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인께 국민투표 부의권 행사를 즉시 촉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김오수 총장은 이날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법조계 “국회의원, 국회법 다시 공부해야” 

학계에서는 쟁점 법안에 대한 숙의와 여야 합의 위해 만들어진 국회 상임위 안건조정위원회를 무력화하는 것도 위헌성이 있단 비판이 나온다. 친여(親與) 성향의 무소속 의원을 안건조정위원으로 끼워 넣어 제1교섭단체와 그 밖의 의원 3대 3(여야 동수) 구도를 4대 2로 뒤집은 편법이기 때문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애초에 정상적인 입법 절차는 여야 간의 정상적인 합의를 통해서 이뤄져야 하는데, 여야 동수로 합의하라고 만든 제도를 무력화하는 것이라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국회의원들이 국회법 정신부터 다시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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