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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작전 축소’ 러, 키이우서 병력 이동… 미 “철수 아닌 재배치일 뿐”

중앙일보

입력

29일(현지시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러시아 평화 협정을 열고 있다. AFP=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러시아 평화 협정을 열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군사작전을 축소하겠다고 밝힌 러시아가 일부 지역에서 병력을 철수하고 있다고 CNN 등이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다만 미국 등 서방 국가에선 “병력 재배치를 위한 시간 끌기 수단”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고 있다.

CNN은 이날 “백악관은 러시아 병력이 키이우에서 다른 지역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당국도 러시아가 키이우와 체르니히우 지역에서 일부 부대를 철수시키고 동부 지역으로 병력을 이동 중인 것으로 파악했다.

앞서 러시아 측 협상 대표인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대통령 보좌관은 우크라이나와의 5차 협상 종료 후 “수도 키이우와 체르니히우 지역에서 군사활동을 대폭 줄일 것”이라며 “협상에 대한 상호 신뢰를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밝힌 바 있다.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노획한 러시아 탱크 위에 올라가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29일 러시아군이 키이우에서 일부 병력을 철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연합뉴스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노획한 러시아 탱크 위에 올라가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29일 러시아군이 키이우에서 일부 병력을 철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연합뉴스

병력 철수에도… “전술적 변화일 뿐”

하지만 미국 등 서방 국가에선 ‘러시아의 전술적 움직임에 불과하다’는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가 그들의 제안을 이행할 것인지 지켜볼 것”이라며 “우리는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유지하고,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지원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러시아 회담에 대해 "러시아가 그들의 제안(키이우에서 병력 철수)을 이행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러시아 회담에 대해 "러시아가 그들의 제안(키이우에서 병력 철수)을 이행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AFP=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협상이 건설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어떤 징후도 보지 못했다. 러시아의 철수 움직임은 사람들을 속이고 주의를 돌리기 위한 시도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최근 키이우에서 이탈한 러시아 병력은 적은 숫자”라며 “이는 진정한 철수가 아닌 재배치라고 판단하고 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내 다른 지역에 대한 대규모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 역시 러시아군의 철수 움직임에 대해 러시아의 전술적 변화라고 분석했다. 믹 스미스 영국 국방부 장관은 성명을 내고 “러시아가 키이우를 완전히 포위하는 데 실패한 것이 확실하다”며 “수도에서 러시아군이 철수하는 것은 러시아가 이 지역에서 주도권을 잃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이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북부에서 동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공세로 병력을 돌리려는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협상이 끝난 후 화상 연설에서 “러시아의 입장은 긍정적이지만, 군사 작전을 축소하겠다는 러시아의 주장을 믿을 이유가 없다”며 “러시아의 포격은 줄어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는 여전히 우크라이나를 향한 공격을 지속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방어 노력을 줄이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화상 연설에서 "방어 노력을 줄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AP=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화상 연설에서 "방어 노력을 줄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AP=연합뉴스

마라톤 협상 계속… ‘영토 문제’도 테이블에

이날 터키 이스탄불에서 4시간 동안 마라톤 협상을 한 양국 대표단은 30일에도 협상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FT 등에 따르면 29일 회담에선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포기하는 대신 여러 국가로부터 ‘나토 헌장 5조(동맹에 대한 공격에 공동 대응 의무)’에 준하는 안보 보장 시스템을 받는 논의가 이뤄졌다. 우크라이나 군사 비동맹과 비핵국 지위를 추구하는 대신 러시아가 유럽연합(EU) 가입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협상 중이다.

특히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이 장악한 돈바스 지역과 러시아가 2014년 병합한 크림반도에 대해서 우크라이나가 전향적 입장을 보여 주목된다. 그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크림반도의 무력 탈환 시도 포기와 돈바스 지역의 독립국 인정을 요구해왔고, 우크라이나는 ‘영토 보전’을 주장하며 협상의 평행선을 그려왔다. 협상단에 따르면 이날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의 지위에 대해 15년에 걸쳐 러시아와 협의할 것을 제안했다.

29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에서 양측의 협상단 대표로 나섰던 블라디미르 메덴스키 러시아 대통령 보좌관(왼쪽)과 데이비드 아라카미아 인민의종 정당 대표(오른쪽). AP=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에서 양측의 협상단 대표로 나섰던 블라디미르 메덴스키 러시아 대통령 보좌관(왼쪽)과 데이비드 아라카미아 인민의종 정당 대표(오른쪽). AP=연합뉴스

협상 진전에 따라 양국 정상회담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전문가들은 신중한 반응이다. 카네기 모스크바 센터 선임연구원 알렉산더 가부에프는 가디언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크림반도 문제를 과거에 해결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크림반도에 대한 키이우의 제안은 푸틴 입장에선 손해처럼 보일 것”이라며 “러시아의 양보 움직임은 일시적인 전술 변화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메딘스키 보좌관은 이날 타스통신에 “키이우와 체르니히우에서 군사작전 축소가 휴전을 의미하진 않는다”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이 상호 수용할 수 있는 합의에 이르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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