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선2035

내 주변에 ‘○○○’을 뽑은 사람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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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태인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박태인 정치팀 기자

박태인 정치팀 기자

“내 주변엔 ○○○을 뽑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0.73%포인트 차이로 승부가 갈린 이번 대선을 돌아보며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이다. 주변을 둘러봐도 ‘○○○ 후보’를 뽑은 사람이 없는데, 결과가 이리 박빙이냐며 농담기를 싹 빼고 물어보는 질문이다.

아이러니하다. 윤석열 당선인과 이재명 전 민주당 대선후보의 득표율은 각각 48.56%와 47.83%였다. 통계상으로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 둘 중 한 명은 나와 다른 후보를 찍었어야 한다.

그런데 주변에 아무도 없다니. 윤 당선인과 이 전 후보는 지난 8일 마지막 유세를 불과 400m 떨어진 서울 시청광장과 청계광장에서 열었다. 그렇게 가까이 있었지만, 지지자들은 완전히 단절됐다.

이번 대선은 역대 최소 표차로 당락이 결정됐다. 사진은 지난 9일 투표를 하던 시민들의 모습. [뉴스1]

이번 대선은 역대 최소 표차로 당락이 결정됐다. 사진은 지난 9일 투표를 하던 시민들의 모습. [뉴스1]

내 주변에 ‘○○○을 뽑은 사람’을 내 주변에 ‘나와 다른 생각’ ‘나와 다른 취미’ ‘나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으로 바꿔 말해도 똑같을지 모른다. 우린 서로 비슷한 사람에 둘러싸여 매일 ‘좋아요’와 ‘슬퍼요’를 누르며 살고 있다. 페이스북에서 ‘싫어요’를 누르고 싶어도 그 버튼 자체가 없다(‘화나요’는 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진다는 점이다. 임기 말에도 40%대를 유지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은 이 배타적 관계의 단면일지도 모른다.

미국의 석학 로버트 D 퍼트넘 하버드대 교수는 이런 문제를 두고 가교(bridging)적 관계가 무너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있고, 이는 사회 양극화와 분열을 초래한다는 주장이다. 퍼트넘 교수는 공동체의 대안이라 여겨진 소셜미디어도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저서 『업스윙』에서 극단적 개인주의의 회귀를 넘어, 다시 공동체주의의 미덕을 살려야 한다고 요구한다.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코로나19란 팬데믹과 불규칙한 플랫폼 노동이 우리를 쉽게 뭉치게 하지 않는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게 뭐가 어때서?”라는 반박도 나온다. 간단한 클릭 하나만으로 나와 다른 사람을 쳐낼 수 있는 시대다. 문제는 그럴 때마다 우리는 오류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대선 당일 개표 방송에 출연한 국민의힘 한 패널은 출구 조사 결과를 듣고 “심장이 터질 뻔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믿어 왔던 세계(최소 4~5%차 완승)가 순간 무너져 내릴 뻔했기 때문이다.

대선 기간 윤 당선인의 유세 대부분을 따라다녔다. 대선 후보는 구조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만 만날 수밖에 없다. 어퍼컷도 그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지금이라도 윤 당선인이 자신을 택하지 않은 ‘절반의 한국’을 만나봤으면 한다. 그것이 0.73%포인트 차로 신승한 대선 후보의 첫 번째 과제여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