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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본 세상] (26) '윤석열 정권은 다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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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끝났다. 승자와 패자는 갈렸다. 패자는 5년 후를 다짐하며 울분을 삭이고, 승자는 전리품 배분에 나설 것이다. 곧 승자들의 자리 나눠 먹기 '파티'가 벌어질 것이다. 그게 우리나라 대선 후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우리는 다를 것입니다. 성공한 정부 만들겠습니다.' 새 정권은 항상 그렇게 약속한다. 새 희망을 얘기한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나~'다. 호기를 부리며 출발한 정권은 끝날 때쯤 여지없이 국민의 지탄을 받고 물러나야 했다.

윤석열 정권은 다를까?

당연히 달라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주역을 여는 이유다. 그 질곡의 역사를 끊어낼 팁이 혹 있지 않을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참배를 한 뒤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그는 '위대한 국민과 함께 통합과 번영의 나라 만들겠습니다'라고 썼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참배를 한 뒤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그는 '위대한 국민과 함께 통합과 번영의 나라 만들겠습니다'라고 썼다. /연합뉴스

주역 7번째 '지수사(地水師)' 괘는 흔히 '전쟁의 괘'로 통한다(䷆). 전쟁 승리의 길(道)을 보여준다. [주역으로 본 세상] (11)편에서 살폈던 대로다(혹 읽지 않으신 분들은 꼭 찾아보시라).

'지수사' 괘의 마지막 효(爻)는 전쟁이 끝난 후 상황을 묘사한다. 효사(爻辭)는 이렇다.

'開國承家, 小人勿用'

논공행상((論功行賞)에 관한 내용이다. 승리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 사람은 제후(諸侯)로 봉해 개국 공신으로 우대한다. 공이 그보다 덜한 사람은 경(卿)이나 대부(大夫)로 삼아 집안을 대대로 이어가게 했다.

그다음 말에 더 주목해야 한다. '소인은 쓰지 마라.' 소인은 사욕에 물든 사람이다. 오로지 '자리'만을 노리고 전쟁에 뛰어들었던 사람이다. 그 숱한 '정치꾼'을 말함이다. 주역은 전쟁에 아무리 공이 있더라도 '사욕에 젖은 정치꾼'에게 공직을 맡기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전쟁은 목숨을 거는 행위다. 명분을 놓고 싸운다. 그러기에 누가 사리사욕을 챙기는지 금방 드러난다. 그런 자에게는 재물을 챙겨줄지언정 관직을 줘서는 안 된다고 주역은 말하고 있다. 반드시 나라를 어지럽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必亂邦也).

정권 초기 정국 운용의 길을 보여주는 또 다른 괘는 '택지췌(澤地萃)'다. 주역 45번째 괘로 연못을 상징하는 태(兌, ☱)와 땅을 뜻하는 곤(坤,☷)이 위아래로 놓여있다(䷬).

'택지췌(澤地萃)'는 주역 45번째 괘로 연못을 상징하는 태(兌, ?)와 땅을 뜻하는 곤(坤,?)이 위아래로 놓여있다./바이두

'택지췌(澤地萃)'는 주역 45번째 괘로 연못을 상징하는 태(兌, ?)와 땅을 뜻하는 곤(坤,?)이 위아래로 놓여있다./바이두

땅 위의 물은 흐르고 흘러 연못으로 모인다. 그래서 '萃(췌)' 괘는 '모인다'라는 뜻을 가진다(萃,聚也). 전쟁으로 인해 갈라졌던 민심을 모으고, 진영으로 나누어진 인재를 한 곳으로 모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택지췌'는 '단결의 괘'로 불린다. 괘사(卦辭)는 이렇게 시작한다.

'王假有廟, 利見大人'

'왕은 묘당에서 지극히 제사를 지내고, 대인을 찾아 살피니 이롭다.'

전쟁에서 승리한 왕이 해야 할 일은 딱 두 가지다. 첫째 분열된 민심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 둘째는 국정을 맡길 인재를 발탁하는 것이다.
주역의 시대, 묘당은 이데올로기 통합의 장소였다. 묘당에서 지극히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곧 민심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이었다. 정통성을 확인하는 행사다.

현대라고 다를까. 선거로 갈린 민심을 어떻게 하나로 통합할 것인가는 새 정권이 직면한 첫 과제다. 종묘에 가 제사를 지내는 것만으로 통합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민심을 하나로 모을 툴을 보여줘야 한다. 윤석열 당선인은 '통합 정부'를 내걸었다.

핵심은 인사다. 통합에 어울리는 인재를 발탁하고, 포진시켜야 한다. 괘사 '대인을 살핀다(利見大人)'라는 말은 바로 그 뜻이다. 그렇다면 '대인(大人)'은 어떤 사람을 말할까? 두 번째효사에 힌트가 있다.

'孚乃利用禴'

'믿음이 있으니 소박한 제사로도 허물이 없다'

'禴(약)'은 봄에 지내던 제사다. 나물(채소)만 올려놓고 간단하게 지냈다. '소박한 제사도로 허물이 없다'는 것은 곧 그럴 만큼 백성의 신뢰를 얻는 사람이다. '아, 저 사람이면 국정 이끌어가는 데 문제가 없겠다'라는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 그가 바로 '대인'이다.

당태종(唐太宗) 시기의 충신 위징(魏徵, 580~643). /바이두백과

당태종(唐太宗) 시기의 충신 위징(魏徵, 580~643). /바이두백과

어떤 사람을 뽑아 옆에 둬야 하나. 중국의 많은 주역 해설서는 당태종(唐太宗) 시기의 충신 위징(魏徵, 580~643)을 사례로 든다.

당태종이 어느 날 위징에게 물었다.

'何謂明君, 暗君?'

'어떤 이를 명석한 임금이라 하고, 또 어떤 이를 우매한 임금이라 하는가?

위징이 답한다.

君之所以明者, 兼聽也
君之所以暗者, 偏信也.

군주가 명석하다 함은 폭넓게 듣는 것을 말합니다. 군주가 우매하다고 하는 것은 치우치게 믿는 것을 뜻합니다.

위징은 사례를 들어 보충했다.

"진나라 2세 왕(胡亥)은 깊은 궁궐에 앉아 대신을 보지 않고 오로지 환관 조고(趙高)의 말만 믿었습니다. 천하 대란이 터져 결국 자기도 화를 당했습니다. 수(隋)나라 양제도 우세기(虞世基)의 말만 믿다가 천하를 잃고 말았습니다."

폭넓게 들어라!
치우치게 믿지 마라!

쉬운 말이다. 그러나 이 평범하면서도 쉬운 말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쓸쓸한 만년을 보내야 하는 리더들이 많았다. 옆에 위징 같은 신하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징은 당태종에게거스를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도 당태종은 이를 받아줬고, 정책에 반영했다. 군신의 신뢰가 있었기에 '정관의 치(貞觀之治, 627~649)'가 가능했다. '믿음이 있으니 소박한 제사로도 허물이 없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택지췌' 괘 첫 효사는 '믿음이 끝까지 지속하지 못하면 혼란이 다시 싹트게 된다(有孚不終 乃亂乃萃)'고 했다. /바이두

'택지췌' 괘 첫 효사는 '믿음이 끝까지 지속하지 못하면 혼란이 다시 싹트게 된다(有孚不終 乃亂乃萃)'고 했다. /바이두

권력 초기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국민을 섬기고, 통합의 정치를 펼치고, 번영된 나라를 만들겠다고 거듭 약속하고 있다. 처음에는 다 그런다.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 초심을 유지하느냐에 달려있다.

'有孚不終 乃亂乃萃'

'믿음이 끝까지 지속하지 못하면 혼란이 다시 싹트게 된다.'

'택지췌' 괘의 첫 번째 효사다. 윤석열 당선인이 두고두고 명심해야 할 구절이다.

한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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