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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본 세상](25) 중화DNA,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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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주의자, 중국으로 꺼져~'

언젠가 필자의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중국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쓴 기사에는 여지없이 욕설 댓글이 덕지덕지 붙는다. 반중(反中)정서의 깊이를 보여준다.

이해가 간다. 서해 불법 조업, 미세먼지, 사드 한한령, 코로나19, 쇼트트랙 편파 판정…. 중국을 싫어하는 요인을 꼽으라면 열 손가락이 부족하다.

중국 인터넷도 한국 넷심을 자극한다. '소국(小國)이면 소국답게 굴어~' 김치도, 한복도 중국 거라고 우긴다. 인터넷 공간은 양국 젊은이들의 정서가 격하게 부딪치는 싸움터로 변했다.

2030 젊은 세대들은 되묻는다.

"기성세대들은 왜 중국을 좋아하지?"

궁색하지만,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다.

'맞다. 중국, 정말 무서운 나라다. 그래서 더 공부하고, 연구해야 할 것 아닌가. 반중을 하더라도 제대로 알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한다. 그들은 '중국 나쁜 X들'하면서 댓글을 남기고 사라진다.

거칠어지고 있는 중국, 그런 이웃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려운 숙제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국난에 직면한 우크라이나를 보면서 중국이라는 존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다시 주역을 열어본다. 8번째 괘 '수지비(水地比)'를 뽑았다. 물을 상징하는 감(坎, ☵)이 위에, 땅을 뜻하는 곤(坤, ☷)이 아래에 있다(䷇). 물이 대지 위를 유유히 흐르는 형상이다.

地得水而柔 水得地而流

땅은 물을 얻어 부드러워지고, 물은 땅을 얻어 흐른다. 그렇게 땅과 물은 서로 돕는다. 그래서 괘 이름이 '친근하다','밀접하다', '서로 돕다'라는 뜻을 가진 '比(비)'다.

한자 '比(비)'는 사람이 어깨를 맞대고 걸어가는 형상이다. 여기에서 '친근하다','밀접하다', '서로 돕다'라는 뜻으로 발전했다.

한자 '比(비)'는 사람이 어깨를 맞대고 걸어가는 형상이다. 여기에서 '친근하다','밀접하다', '서로 돕다'라는 뜻으로 발전했다.

'수지비'는 '전쟁의 괘'로 통하는 '지수사(地水師)' 다음에 온다. 전쟁은 승자와 패자를 낳는다. 승자는 군림하고, 패자는 복종해야 한다. 전쟁 후 형성된 정세를 보여주는 괘가 바로 '수지비'다. 괘를 다시 한번 보자.

6개 효(爻) 중에서 음효(陰爻)가 5개, 양효(陽爻)가 1개다. 그런데 양효는 흔히 '군왕의 효'라고 불리는 아래에서 다섯 번째에 있다. 5개 음효(신하)가 한 개 양효(군왕)을 받드는 형상이다. 패자가 승자에 복종하는 걸 상징하기도 한다.

이렇듯 '비(比)' 괘의 관계는 수평적이지 않다. 군림과 복종, 상하 관계만 있을 뿐이다. 그게 주역이 말하는 '잘 어울리는 이웃'이다. 아버지와 아들, 임금과 신하, 사장과 직원, 팀장과 팀원…. 좀더 넓게는 '중화-오랑캐'라는 중화 질서로 연결된다.

'不寧方來, 後夫凶'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어도 찾아온다. 늦게 오는 자 흉할 것이다.'

괘사(卦辭)의 한 구절이다. 맹주(盟主)에게 복종하지 않고 버티는 자는 화를 당할 것이라는 얘기다. 주변 소국은 응당 대국의 지배를 인정하고, 복종해야 한다. 조공이라도 바쳐야 한다. 주역에 중화DNA의 원형질이 담겨있다.

중국이 내심 좋아할 만한 대목이다. 지난주 얘기했듯, 중국은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할 때만 해도 '늑대가 왔다(狼来了)'며 서방을 무서워했던 나라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경제 규모는 세계 2위로 올라섰다. 군사력은 주변국을 압도한다. 화성 탐사 등 우주항공 분야에서도 강국이 됐다. AI, 빅데이터, 전기자동차 등 여러 첨단 분야에서는 앞서 치고 나가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이제 우리가 짱이야. 내 밑으로 다 모여!

'늑대'를 무서워하던 중국은 지금 스스로가 야수로 변하고 있다. 중국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해가 되면 정색을 하고 달려들어 보복을 가한다. 자국 반체제 인사에게 노벨상을 줬다는 이유로 노르웨이 연어 수입을 막는다. '작은 나라가 어디 감히~' 중국은 그렇게 사드 보복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중요한 걸 놓쳤다. '군왕이라고 다 대접받고, 대국이라고 다 주변국의 존중을 받는 것은 아니다'라는 주역의 가르침 말이다. 위에서 본 괘사 앞에는 이 문구가 붙는다.

元永貞, 无咎

'元(원)'은 '도량이 넓다(大度量)'라는 뜻. 주역 연구가 정쓰창(曾仕强) 대만사범대학 교수의 해석이다. '군왕은 관대하고, 포용심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변덕이 심해서도 안 된다. 언제나 바름(貞)을 지킬 수 있어야 주변의 존중을 얻는다.

제5효 효사(爻辭)는 좀 더 구체적으로 존경받는 군왕의 조건을 제시했다.

'王用三驅, 失前獸, 邑人不誡'

왕이 사냥할 때 3면으로 포위한다. 한 곳은 풀어놓는다. 달아날 구멍을 터주기 위해서다. '동물에게도 저러할진대, 사람에게는 얼마나 더 너그러울까~' 그런 군주라야 백성들은 경계심을 갖지 않는다.

나라와 나라 사이도 마찬가지다. '대국'으로 자처하면서도 자기 이익만 집착하고, 쪼잔하게 주변국을 괴롭힌다면 어찌 주변국의 존경을 받을 수 있겠는가. 수틀린다고 윽박지르고, 보복하고, 깔본다면 주변국은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을 것이다.

서해 불법 조업 문제만 해도 그렇다. 중국은 자국 어민들이 당국의 지시를 어기고 한국 쪽으로 넘어가 꽃게를 잡고 있다고 변명한다. 개인적인 문제라고 둘러댄다. 턱도 없는 소리다. 중국은 공산당이 국가를 장악한 나라다. 당이 마음만 먹으면 하루아침에 불법 조업 어선을 묶어놓을 수 있다. 안 하니까 준동하는 것이다. 그러니 '서해를 언젠가는 중국 내해(內海)로 만들려는 속셈'이라는 의혹을 키우고, 반중 감정은 쌓인다.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은 '서해를 언젠가는 중국 내해(內海)로 만들려는 속셈'이라는 의혹을 키우고, 반중 감정을 자극한다.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은 '서해를 언젠가는 중국 내해(內海)로 만들려는 속셈'이라는 의혹을 키우고, 반중 감정을 자극한다.

그렇다면 음효(신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양효(군왕)를 대해야 할까. 제5효가 군왕의 길을 보여준다면, 이와 호응하는 제2효(아래서 두번째)는 신하의 길을 제시한다.

'比之自內, 貞吉'

'자기 스스로의 결정으로 군왕을 따른다. 바름(貞)을 지키면 길하다.'

공자는 이 효사를 설명하며 '스스로를 잃지 않는 것(比之自內, 不自失也)'이라고 했다. 자존심을 지키라는 얘기다.

소국이 대국을 섬기는 이유는 자국 백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다. 강국의 틈바구니에서 자국의 활로를 열기 위함이다. 대국이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따르는 건 주역의 논리가 아니다. 그건 세상 물정 모르고 명분에 집착했던 조선 시대 성리학자로 충분하다.

문재인 정부의 첫 주중 대사 노영민은 시진핑을 만난 뒤 방명록에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말을 남겼단다. 맹주(盟主)에 대한 제후의 충성 서약으로 쓰던 단어다. 조선 성리학자들이 이미 멸망한 명(明)나라 황제를 제사 지내겠다고 사당을 지었고, 그 사당 이름으로 걸어둔 현판이기도 하다. '모화(慕華)'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걸 시진핑 앞에 버젓이 써놨으니 무식했거나, 아무런 생각이 없었거나….

'만절필동(萬折必東)'은 맹주(盟主)에 대한 제후의 충성 서약으로 쓰던 단어다. 조선 성리학자들이 이미 멸망한 명(明)나라 황제를 제사 지내겠다고 사당을 지었고, 그 사당 이름으로 걸어둔 현판이기도 하다.

'만절필동(萬折必東)'은 맹주(盟主)에 대한 제후의 충성 서약으로 쓰던 단어다. 조선 성리학자들이 이미 멸망한 명(明)나라 황제를 제사 지내겠다고 사당을 지었고, 그 사당 이름으로 걸어둔 현판이기도 하다.

중국 어선이 떼로 몰려와 서해 꽃게 잡아가도 정부 차원의 항의 한 번 제대로 못 한다. 중국 게임은 한국 시장에서 분탕질을 치며 돈을 긁어가고 있는데도 중국은 여전히 한국 게임 못 들어오게 막는다. 그래도 정부는 못 본 척한다. '만절필동'의 심리구조다.

결기를 보여줘야 할 때 슬며시 숙인다. 자존심도 없다. 중국도 문제지만, 문재인 정부의 중국 대응은 더 한심하다는 비난이 제기된다. 2030 세대의 반중감정은 그래서 더 깊어진다.

'대국'이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따르는 건 주역의 논리가 아니다. 세상 물정 모르고 명분에 집착했던 조선 시대 성리학자로 충분하다. / 바이두

'대국'이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따르는 건 주역의 논리가 아니다. 세상 물정 모르고 명분에 집착했던 조선 시대 성리학자로 충분하다. / 바이두

주역의 '비(比)' 철학은 맹자에게 그대로 반영된다. 맹자와 제(齊)나라 선왕(宣王)과의 대화 한 대목을 보자(孟子·梁惠王下).

'齊宣王問曰: 交隣國有道乎?
孟子對曰: 有. 惟仁者爲能以大事小. 惟智者爲能以小事大'

'제선왕: 주변국과의 교류에 도가 있습니까?
맹자: 있습니다. 큰 나라는 오직 인자함으로 작은 나라를 존중하고, 작은 나라는 오직 지혜로서 큰 나라를 존중해야 합니다.'

대국은 포용력을 보여야 소국의 존중을 받는다. 그게 맹자가 말한 인(仁)이다. 당연한 얘기다. 무서운 대국을 어찌 존중할 수 있겠는가.

소국은 오로지 '지혜'로서 대국을 상대해야 한다. 맹자는 '지혜로운 자만이 사대(事大)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왜 사대하는가. 나라와 백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니 '불편해도 스스로의 판단으로 가는 것(不寧方來)'이다. 막연한 모화주의와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국제 정치의 현실은 냉혹하다. 몸집이 커진 만큼 행동하고, 더 요구하게 되어 있다. 중국에 대해서만 '너는 계속 양(羊)처럼 순하게 있어야 해'라고 한다면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그들도 늑대가 될 수 있고, 근육질을 과시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런 시각으로 중국을 봐야 현실적인 대중 정책을 짤 수 있다.

'에이 나쁜 XX~'하고 돌아앉아 욕만 해서도 안 되고, 순한 양 같은 중국을 마냥 기대해서도 안 된다. 자존심 내팽개치고 비굴하게 빌붙어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우리의 이익을 침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기를 보여주고, 필요하다면 동맹을 끌어들여 호가호위(狐假虎威)라도 해야 한다. 그런 한편으로는 맹자의 말대로 '지혜로운 사대'도 할 줄 알아야 한다.

거칠어지고 있는 중국,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오로지 '지혜', '지혜' 뿐이다.

한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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