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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C도 못건드는 '살아있는 권력'…푸틴 처벌, 이 방법 밖에 없다 [똑똑 뉴스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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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독자 김현지님의 질의를 받아 담당 기자가 심층 취재해 작성했습니다.

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한 여성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한 여성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1424명. 유엔(UN)이 9일(현지시간) 발표한 우크라이나 내 민간인 사상자 숫자다. 이중 어린이 37명을 포함해 516명이 사망했다. 지난달 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2주 만이다. 여기엔 포격이 끊이지 않는 마리우폴 등 몇몇 도시의 사상자는 반영되지 않은 만큼 실제 피해자 수는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일에도 러시아군의 민간시설 포격이 이어졌다. 특히 마리우폴 어린이 병원이 폭격을 당하며 최소 17명이 숨지거나 다친 것으로 파악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아이들을 치료하던 의료시설이 파괴됐다. 환자와 아이들이 잔해 밑에 깔렸다”며 “이건 전쟁 범죄이자 우크라이나인 집단 학살의 확실한 증거”라고 비판했다.

앞서 러시아군의 폭격에 민간인들의 피해가 겉잡을 수 없이 늘어나면서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러시아군의 전쟁범죄 여부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수많은 민간인 피해자와 수백만명의 피란민을 야기한 '전쟁 원흉'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처벌도 가능할까. 과연 무슨 혐의를 적용해 심판대에 세울 수 있을까.

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서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어린이 병원이 붕괴됐다. AFP=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서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어린이 병원이 붕괴됐다. AFP=연합뉴스

민간인 무차별 폭격… “전쟁 범죄, 합리적 근거 있다”

현재 러시아군의 전쟁범죄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인 국제형사재판소(ICC)는 국제 사회에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해당 국가가 기소할 수 없을 때, 개인을 수사하고 처벌하는 유일한 상설 국제기구다. 과거 나치 전범을 처벌했던 ‘뉘른베르크 재판’을 제도화한 격이다. ICC가 다루는 범죄는 집단살해(genocide, 제노사이드), 전쟁범죄(war crime), 반인도적 범죄(crime against humanity), 침략범죄(crime of aggression) 등 네 가지에 한한다.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서 9일 우크라이나 긴급구조사들이 임산부를 급히 이송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날 러시아군이 마리우폴의 산부인과를 포격했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서 9일 우크라이나 긴급구조사들이 임산부를 급히 이송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날 러시아군이 마리우폴의 산부인과를 포격했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지난 2일 ICC 회원국 39개국은 ICC에 러시아 전쟁 범죄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다. 이날 카림 칸 ICC 검사장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반인도적 범죄와 전쟁범죄를 일으켰다고 볼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며 조사 개시를 밝혔다.

가디언은 이에 대해 “전쟁 범죄는 고의적인 살상·광범위한 파괴·의도적인 민간인 포격 등을 포함하고 있고, 반인도적 범죄는 민간인에 대한 광범위한 공격 등을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러시아군은 제네바 협약에 따라 금지되는 민간인 상대의 무차별적 폭격 외에 진공폭탄(열압력탄) 등 민간인 살상 무기를 사용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국제형사제판소(ICC). AP=연합뉴스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국제형사제판소(ICC). AP=연합뉴스

다만 범죄 요건 가운데 침략범죄에 대해선 ICC가 나서기 쉽지 않다. ICC 기반이 되는 로마규정에 따르면 침략범죄에 대해 ICC가 사법권을 갖기 위해선 두 국가가 모두 회원국이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ICC에 수사를 요청해야 한다.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모두 ICC 비회원국이며, 러시아는 유엔 상임이사국으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 외 범죄의 경우, 비회원국이어도 해당 국가가 ICC의 관할권을 인정하면 ICC는 조사를 진행할 수 있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이 경우 ICC는 해당 영토에 대해 관할권을 갖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범죄에 대해 러시아의 고위 관계자들을 기소할 수 있다.

‘살아있는 권력’ 처벌 사례 없어

국제형사재판소가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러시아군의 전쟁범죄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주요 외산과 전문가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범죄의 책임을 지고 법정에 설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AFP=연합뉴스

국제형사재판소가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러시아군의 전쟁범죄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주요 외산과 전문가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범죄의 책임을 지고 법정에 설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AFP=연합뉴스

하지만 범죄 성립과 처벌은 별개의 문제다. 주요 외신과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기소돼도 처벌까지 이어지긴 어렵다고 분석한다. 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하거나 기소를 해도 회원국 밖에서 이를 집행할 강제력이 없기 때문이다. 2002년 ICC가 설립된 이후에도 제노사이드와 내전 등 전쟁범죄는 끊이지 않았지만, ICC가 단 한 번도 지도자급의 ‘살아있는 권력’을 처벌하지 못한 이유다.

포린폴리시는 “ICC가 푸틴 대통령을 전쟁 범죄 등으로 기소할 수 있지만, 그가 재판을 받을 가능성은 작다. 현직 국가 원수들은 수년간 성공적으로 ICC의 구속력을 피해왔다”고 짚었다. ICC가 기소한 46건 중, 현직 국가원수를 기소한 사례는 오마르 알바시르 전 수단 대통령과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두 차례에 불과하다. 더구나 경찰력과 자체 병력이 없는 ICC의 경우 강제 체포가 불가능해 기소한다고 해도 현직 권력자를 법정에 세우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푸틴 대통령의 경우 세계 강대국 러시아의 지도자인 만큼 더욱 처벌이 쉽지 않다. ICC는 창설 이후 강대국보다는 아프리카 전쟁 범죄만 다룬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더 취약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ICC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미군의 전쟁범죄 수사를 시도했지만, 매번 무산되거나 한 번도 관련자를 기소하지 못했다.

가능성은… “쿠데타 후에야 가능할 수도”

국제형사재판소(ICC) 페이지에 등재돼있는 오마르 알바시르 전 수단 대통령. '다르푸르 학살' 사태로 전쟁범죄, 제노사이드, 반인도적 범죄 등 혐의로 2009년 기소됐지만 아직 법정에 서지 않았다. [ICC 갈무리]

국제형사재판소(ICC) 페이지에 등재돼있는 오마르 알바시르 전 수단 대통령. '다르푸르 학살' 사태로 전쟁범죄, 제노사이드, 반인도적 범죄 등 혐의로 2009년 기소됐지만 아직 법정에 서지 않았다. [ICC 갈무리]

다만 이번 사태의 경우 영국 등 서방 국가가 한목소리로 규탄하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푸틴이 범죄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사우샘프턴대 국제법 교수인 니나 요르겐센은 알자지라에 “푸틴 대통령이 정권을 잡고 있는 동안은 재판이 열리지 않겠지만, 향후 정권교체가 벌어질 경우 푸틴 대통령이 법정에 설 가능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다르푸르 학살’을 일으킨 수단의 독재자 알바시르는 2009년 기소되고도 10년간 대통령으로 재임했지만 2019년 쿠데타로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외신에 따르면 수단 정부는 지난해 8월 ICC에 알바시르를 넘기기로 협약하고 추진 중이다.

포린폴리시는 “러시아 지도부에게 형사 책임을 묻는 건 분명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ICC 회원국 3분의 1인 39개국이 러시아군의 전쟁범죄 수사를 요청했다. 미래에 이 국가들이 자국을 방문하는 푸틴 대통령을 포함한 러시아 군 지도부를 ICC에 넘길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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