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45)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군에 대한 반격과 방어 작전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고 10일(현지시간) 밝혔다. 그간 대반격 개시 여부에 대해 함구하던 우크라이나가 처음으로 관련 사실을 공식 인정한 것으로, 러시아군 점령지 일부에서 우크라이나의 탈환 작전이 성공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날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이 시작했다고 언급한 것과 관련해 논평 요청을 받자, 어깨를 으쓱하며 이를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다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구체적인 진행 상황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그는 "(작전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는 자세히 얘기하지 않겠다"며 "나는 매일 여러 지역의 지휘관들과 연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크라이나군 최고 수뇌부를 일일 거명한 뒤 "(작전의 성과에 대해) 모두가 긍정적인 분위기다"라며 "푸틴에게 그렇게 전해달라"고 덧붙였다.
푸틴 대통령은 9일 러시아 관영 언론과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반격을 시작했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군의) 전략 물자 비축량 사용분을 통해 입증된다"고 말했다. 러시아 측은 지난 4일부터 우크라이나의 대공세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수개월 간 우크라이나는 대반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공언해왔으나, 작전 보안 등을 이유로 개시 여부에 대해선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달 들어 자포리자주(州)·도네츠크주·루한스크주 등 동남부 지역의 러시아 점령지에서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이 잇따르면서 대규모 반격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군은 지난해 2월 러시아 침공 이후 최장기간 전투 끝에 지난달 러시아군에 빼앗긴 동부 바흐무트에서 집중 교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동부 군사령부 대변인은 10일 지역 방송에서 "지난 24시간 동안 바흐무트 인근에서 6차례에 걸쳐 교전을 벌였다"면서 "러시아군 사상자가 상당수 발생했으며, 전선의 여러 방향에서 최대 1.4㎞까지 진격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또 동남부 지역 일대에서 "지난 24시간 동안 러시아군 지휘본부 4곳, 무기·군사 장비 밀집지역 6곳, 탄약고 3곳, 포병부대 5곳 등을 타격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이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9일 "남부 자포리자와 동부 도네츠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을 격퇴했다"며 "1000명 이상을 사살하고 수십 대의 전차와 장갑차를 파괴했다"고 밝혔다.
현재 어느 쪽이 우위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영국 국방부 산하 국방 정보국(DI)은 10일 "우크라이나가 최근 48시간 동안 동남부 여러 지역에서 중요한 작전을 수행했다"며 "일부 지역에서 러시아군 제1 방어선을 뚫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다만 DI는 "다른 지역에선 우크라이나의 진전이 더 느린 곳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러시아 민간용병기업 바그너 그룹과 러시아 국방부 간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바그너 그룹이 러시아 정규군을 납치, 고문하고 무기를 갈취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11일 가디언에 따르면 러시아 제72 기동소총여단 전직 사령관이라고 밝힌 로만 베네비틴은 최근 온라인에 올린 영상을 통해 이 같이 주장했다.
그는 "나와 내 여단은 바그너에 의해 조직적으로 납치, 학대당했으며 때로는 성폭력에 노출됐다"고 밝혔다. 이어 "바그너가 T-80 전차 2대와 기관총 4자루, 트럭 1대와 기갑전투차량 1대를 훔쳤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 그룹 수장은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부인했다. 앞서 지난주 베네비틴은 개인적 적대감을 이유로 바그너 측 차량에 총을 쏴 바그너 그룹에 체포돼 신문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