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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내가 지지하지 않은 대통령 당선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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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제20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3일 오후 서울 종각옆 앞에서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선거벽보를 살펴보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이날 오전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시작으로서의 정권교체, 즉 '더 좋은 정권교체'를 위해 뜻을 모으기로 했다"고 밝혔다.[뉴스1]

제20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3일 오후 서울 종각옆 앞에서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선거벽보를 살펴보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이날 오전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시작으로서의 정권교체, 즉 '더 좋은 정권교체'를 위해 뜻을 모으기로 했다"고 밝혔다.[뉴스1]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9년여 전의 일이다. 지금은 사라진 경기도 김포의 애기봉 크리스마스 점등식 얘기다.

강력한 네거티브…전쟁같은 대선 #유권자 30%대 지지로 당선되어도 #동료 시민의 선택이란 점 인식해야

 1954년 이후 크리스마스 때면 대개 불을 밝혔는데 2004년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 이후 꺼졌다. 그러다 이명박(MB) 정부 때인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재개했다. MB 정부는 2012년에도 점등할지 고민했다. 당시 북한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앞으로 “단 한 점의 불빛이라도 보이는 경우, 그 즉시 무자비한 물리적 타격과 경고 없는 조준격파 사격이 가해질 것”이란 협박성 전화통지문까지 보낸 터였다.

 MB는 숙의 끝에 계속하기로 했다. 그는 “북한의 위협이 두려워 점등식을 포기한다면 북한 주민들을 위한 희망의 불빛은 영원히 밝힐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위협에 굴복해 중단해 버리면 다음 정권에서 재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도 했다”(『대통령의 시간』)고 적었다. 실제 애기봉 트리는 25㎞ 떨어진 개성에서도 보이는 ‘남한의 풍요로움 상징’이었다.

 김황식 국무총리의 기억은 더 자세하다. 청와대에 들어갔더니 MB와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고 한다. MB가 “아이고, 마침 잘 왔다. 최종 오더를 줘야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김 총리와 김 장관 사이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한다.

 “우리가 쏘면 저 사람들이 어느 정도로 쏠 것 같나.” “못 쏜다.”
 “만약 쏘면 어떤 대비를 하고 있느냐.” “다 조치해 두었다. 미군과도 얘기했다.”
 “북한이 우리의 대비태세를 알고 있느냐.” “그 사람들, 다 알고 있다. 여러 가지로 살짝 흘려서 그 사람들이 다 알게 해놓았다.”

 MB의 선택에 동의하지 않을 이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MB가 과거와 미래를 보며 최선 아니면 차선, 최악 아닌 차악을 선택하려 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대통령의 일상이 ‘최종 오더’의 연속이다. 대통령직은 우리 국민 중 10여 명만 경험한, 대단히 배타적이면서도 대단히 극한의 직업이다. 스스로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지만 물러날 때면 최선을 다했는지 회의하게 되곤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무엇을 얼마 했을까. 절반의 성공도 하지 못했다. 시작한 것도 거의 미완성이다. 그래서 절반의 성공도 못 되는 절반의 미완성”이라고 자책했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새 정권에서는 대북 송금 사건을 어떻게 매듭지을 것인가. 북핵 문제는 어떻게 풀릴 것인지. 이 땅의 인권은 어떻게 될 것인가. 국민들은 국민의 정부와 나를 기억해 줄 것인가”라고 번민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전무후무한 임기 말 지지율을 보며 지지율을 연료 삼아 처리했어야 할 난제는 후대로 미루고 엉뚱한 일을 했다고 보지만, 적어도 문 대통령이 관저로 서류뭉치를 들고 가 밤늦도록 봤다는 참모의 설명은 믿는다. 대통령이란 그런 자리다.

 9일 밤 아니면 10일 새벽이면 새 대통령이 결정된다. 단언컨대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지지하지 않는 ‘소수파’ 당선인일 것이다. 1987년 체제에서 대통령들은 전체 유권자 대비 30.5(MB)~40.3%(DJ)의 지지를 받고 시작했다. 문 대통령의 경우엔 31.6%였다.

 더욱이 이번엔 감정의 골도 깊다. 후보들 자체의 한계에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전쟁이었다. 네거티브는 입에 올리기 부끄러울 정도로 천박했고 강력했다. 후보들이 어쩌면 이미지보다 덜 무식·무능할 수도, 덜 거짓말의 달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동료 시민의 선택이란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더라도 대통령직 자체는 존중해야 한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반대파에 대해 한 말이 도움될 수 있겠다. “그들이 세상에서 제일 악랄한 악마라 할지라도 그들의 얼굴은 천국을 향해 있네.”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