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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용호의 시시각각

한 표가 더 소중해진 '못난이 대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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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용호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1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 서울 서대문구 신촌 거리에서 각각 서울 집중유세를 펼쳤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1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 서울 서대문구 신촌 거리에서 각각 서울 집중유세를 펼쳤다 [뉴스1]

 "1987년 체제 이후 여덟 번째 대선인데 이번처럼 낮게 추락한 선거는 처음 본다. 국가 경영에 대한 비전은 고사하고 네거티브만 하면 이기는 줄 안다. 시대정신은 오간 데 없고 갈등구조를 어떻게 해소할지에 대해 아예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 글로벌 체제의 밸류체인이 변하는데 어떻게 우리의 위치를 확고하게 해 발전시키려는 개념도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선거가 이렇게 됐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비호감 대선 굴레는 끝내 못 벗어 #초박빙 선거, 내일부터 사전투표 #승자는 패자 포용, 화해정치 보여야

 "전 세계가 디지털 혁명, 뉴노멀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번 대통령은 이 시대적 전환기를 책임져야 하는데 어떻게 미래에 대한 담론이 하나도 나오지 않나. 정말 실망스럽다. 지도자가 국민과 다른 게 뭐냐. 지도자는 높고 넓은 시야로 앞을 보면서 경고하고 예고해야 한다. 시대정신 논의가 없는 것도 말이 안 된다. 후보들의 수준이 낮은 거다."(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두 원로 정객의 대선평은 통렬했다. 비판에 거침이 없었다. 지난달 28일, 전화기 너머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선 이따금 톤이 높아지기도 했다. 비호감 대선, 우울한 대선이란 표현으로 시작된 선거전은 막판까지 그 굴레를 벗지 못했다. 두 정객이 통탄했듯 미래는 없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어코 이기고 말겠다는 술수만 가득했다. '소가죽 굿판' '기생충 가족'은 양측의 '묻지마식 폭로'를 상징한다. 심지어 어느 쪽에선 '지면 감옥'이란 말까지 나왔다. 당과 후보들은 대립을 조장했다. 옥석을 가려 줄까 했던 TV토론 역시 낯 뜨거운 비방으로 비호감만 높였다. 그나마 위안거리가 될까 했던 공약들은 그냥 퍼주기였다.
 왜 이 정도밖에 안 됐을까. 사실 비호감 선거라는데 비호감은 과거의 후보들에게도 있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역감정으로 인한 반감이 만만찮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독재자의 딸'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시선에 따라선 결코 만만치 않은 비호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시대정신에 호소해 이를 극복해 나갔다. 한 정치권 인사는 "지금 후보들은 여론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화두를 던질 능력이 안 된다. 그러니 끌려가는 선거를 하게 되고, 시대정신 논쟁이 안 되다 보니 할 게 네거티브뿐인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정치권 인사도 "주도권을 가질 힘과 능력이 없으니 이번 대선은 개별적 사안에 대해 리액션만 하는 못난이 선거가 됐다"고 지적했다.
 어느새 내일(4일)부터 사전선거다. 차악이든 차선이든 선택해야 할 때가 왔다. 이번 선거를 보면서 다음부터는 꼭 안 봤으면 하는 장면이 있다. 후보 부인들이 줄줄이 나와 사과하는 참담한 장면이다. 한 여권 인사는 "권력을 싹쓸이하는 구조라 어떻게든 상대편의 치부를 들춰야 한다는 흐름이 낳은 비극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런 점에서 누가 선거에서 승리하든 권력구조를 개편하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할 거다. 더불어 누가 당선되더라도 먼저 손을 내밀며 화해하자 얘기해야 한다. 이긴 자가 먼저 상대를 적으로 여긴 걸 반성해야 한다. 그래야 갈라진 진영을 되돌릴 수 있는 시발점이 생길 거다. 다음 정권에서 이처럼 또 갈라져 싸울 수는 없는 일이다.
 선거 결과는 막판까지 가늠이 어렵다. 이제 승부를 가를 변수는 절박함 정도가 아닐까 싶다. 더 간절한 쪽이 한 명이라도 투표장에 더 나가지 않겠나. 행여 아직도 누구에게 표를 던질까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면 두 원로 정객이 전하는 메시지는 이랬다.
"심각해진 양극화를 개선할 사람을 뽑아야 한다. 유권자들이 안정 추구로 갈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그걸 누가 잘할지 판단해야 한다."(김종인)
"프랑스 정치학자 토크빌은 '민주주의란 시민의식이 투철하지 않으면 못 한다'고 했다. 국민이 투철한 시민의식을 발휘해 줬으면 한다."(윤여준)
 승부는 끝까지 더없는 초박빙이란다. 그럴수록 한 표의 힘이 더욱 커진다. 소중한 한 표 한 표 잘 행사하시길.

신용호 Chief 에디터

신용호 Chief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