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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정하의 시시각각

진화하는 안철수의 철수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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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정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 3일 전격적으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하자 일각에선 ‘네 번째 철수’란 표현이 나왔다. 그가 2011년 서울시장 보선, 2012년 대선, 2021년 서울시장 보선에 이어 이번까지 네 번이나 선거에서 중도사퇴를 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시장 보선에선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치열한 여론조사 경선을 벌여 패배한 것이다. 이것까지 자진 철수로 집계하는 건 가혹한 처사다. 안 대표가 스스로 철수한 것은 세 번으로 보는 게 맞다.

과거엔 도와줬지만 얻은게 없어 #이번 단일화는 철저한 정치 행위 #후일 도모하려는 집요함 느껴져

2011년 9월 6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오른쪽)은 세종문화회관에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만나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자리를 양보했다.          [중앙포토]

2011년 9월 6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오른쪽)은 세종문화회관에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만나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자리를 양보했다. [중앙포토]

2011년의 철수는 아마추어리즘의 극치였다. 그해 9월3일 중앙일보-한국갤럽이 여야 서울시장 출마예상자 10인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39.5%로 압도적 1위(2위 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위원 13.0%)를 차지했다. 전국이 안철수 신드롬에 휩싸였을 때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고작 3.0%. 안 대표가 마음만 먹으면 서울시장은 떼논 당상이었다. 그런데 그는 놀랍게도 박원순 상임이사에게 후보 자리를 선선히 양보했다. 아직도 그가 그때 왜 그랬는지 얘깃거리다. 아마 서울시장쯤은 건너뛰고 대선으로 직행하자는 의도였겠지만, 정치판의 생리를 모르는 순진한 발상이었다. 서울시장 양보가 대선 행보의 추진제가 되도록 하는 정치적 장치를 전혀 마련하지 않았던 것이다. 도움을 기대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나중에 오히려 라이벌이 됐다. 남 좋은 일만 시켜주고 끝난 철수였다.

2012년 12월15일 저녁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오른쪽)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유세를 하던 중 예정에 없이 안철수 전 후보가 깜짝 등장해 자신이 매고 있던 노란 목도리를 문 후보에게 둘러매 주고 있다.   [중앙포토]

2012년 12월15일 저녁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오른쪽)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유세를 하던 중 예정에 없이 안철수 전 후보가 깜짝 등장해 자신이 매고 있던 노란 목도리를 문 후보에게 둘러매 주고 있다. [중앙포토]

2012년의 철수는 유의미했으나 다분히 자폐(自閉)적이었다. 당시 안 대표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단일화 방식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다 갑자기 백기를 들고 문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후 안 대표는 문 후보를 돕는다고 도왔겠지만, 문 후보 입장에선 영 성에 차지 않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안 대표가 대선 당일날 개표 결과도 보지 않고 뜬금없이 미국행 비행기를 탄 게 결정적이다. 누가 봐도 대선에 관심이 없다는 시그널이었다. 이에 대해 문 후보는 2017년 대선 때 대담집을 통해 5년 전 안 대표의 미국행을 두고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하는 많은 아쉬움이 있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그러자 안 대표는 즉각 “동물도 고마움을 아는데,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짐승만도 못한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서로에게 뒤끝만 남긴 철수였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운데)가 지난 5일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후문에서 열린 유세에서 이준석 대표(왼쪽),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운데)가 지난 5일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후문에서 열린 유세에서 이준석 대표(왼쪽),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시스]

2022년의 철수는 철저한 정치적 행위로 보인다. 아마추어 시절의 어설픈 감동 따윈 없다. 대신 어떻게든 후일을 도모하겠단 집요한 의지가 느껴진다. 여러 선택지와 대선 결과를 결합한 정교한 시뮬레이션을 돌려 이해득실을 따져본 뒤 최종 방향을 잡은 듯한 인상이다. 어쨌든 그가 지난해 서울시장 보선에 이어 이번 대선까지 일관되게 정권교체라는 큰 깃발을 붙잡았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2011년의 실수를 거울삼아 지난해 서울시장 보선 뒤엔 정무부시장 등 일정 지분을 챙겨 서울시정에 부분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만약 이번 대선에서 야권이 승리한다면 훨씬 더 큰 정치적 자양분을 흡수하게 될 터다. 설령 패배하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는 명분은 쥘 수 있다. 안 대표는 대선 뒤 국민의힘과 합당을 추진한다고 공언했다. 그도 정치 경력이 10년이 넘어가면서 깨달음을 얻은 것일지 모른다. 제3지대가 아름답긴 해도 아무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을.

하나 더. 안 대표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독자 완주를 공언했고, 윤석열 후보를 겨냥해선 “무능한 후보를 뽑으면 1년 지나 손가락 자르고 싶다고 할 것”이란 말까지 했다. 그랬는데 지금은 윤 후보와 공동 유세에서 “윤 후보의 공정과 상식에 안철수의 통합과 미래가 합치면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고 외치고 있다. 정치권에선 농반진반으로 정치인으로 대성하려면 후안(厚顔)이 필수란 말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확실히 옛날의 안철수는 아닌 것 같다.

김정하 정치디렉터

김정하 정치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