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가루 씻겨줘" 문경에만 있다, 광부들 홀린 족살찌개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1.11.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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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호 내셔널팀장의 픽: ‘탄광 활황’ 속 문화가 된 음식

“탄광 일을 마친 후 동료들과 나눠 먹었습니다. 지금도 찌개를 먹으면 그때가 생각납니다.”

최근 황복규(67)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왕릉3리 이장이 한 말입니다. 그는 1975년부터 13년간 문경탄광에서 광부로 일했답니다. 문경은 남한에서 처음으로 탄광이 문을 연 곳이기도 합니다.

“보글보글 족살찌개…탄광 일할때 생각나”  

문경시 은성탄광 갱도 내에 접목된 디지털 콘텐트 영상. 문경탄광은 일제강점기 당시 문경탄광과 은성무연탄광을 합쳐 부른 말이다. 사진 문경시

문경시 은성탄광 갱도 내에 접목된 디지털 콘텐트 영상. 문경탄광은 일제강점기 당시 문경탄광과 은성무연탄광을 합쳐 부른 말이다. 사진 문경시

문경탄광의 산증인이라는 황 이장은 문경을 대표하는 문화로 족살찌게를 꼽습니다. 원래 ‘족살’은 문경에서 키우는 약돌돼지의 앞다릿살을 뜻했답니다. “이제 탄광은 남아있지 않지만 고기와 두부를 넣고 보글보글 끓여먹는 족살찌개를 먹으면 탄광 일을 할 때가 생각난다.”(황규복 이장)

문경 광부들이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기름기 많은 돼지고기가 목에 낀 탄가루와 함께 씻겨 내려간다고 생각한 겁니다. 고기와 어우러진 국물에는 막걸리 한 잔도 빠질 수 없었겠지요.

족살에 갖은 채소…칼칼하고 시원한 맛

황복규 문경시 가은읍 왕릉3리이장(가운데)이 정임순 수정식당 사장(오른쪽), 권홍기 문경시 관광진흥과 주무관(왼쪽)과 함께 경북 문경시의 '족살찌개'를 소개하고 있다. 과거 문경에 광업이 성행했을 때 광부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황복규 문경시 가은읍 왕릉3리이장(가운데)이 정임순 수정식당 사장(오른쪽), 권홍기 문경시 관광진흥과 주무관(왼쪽)과 함께 경북 문경시의 '족살찌개'를 소개하고 있다. 과거 문경에 광업이 성행했을 때 광부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찌개에는 돼지고기 앞다릿살에 무, 두부, 팽이버섯, 새송이버섯, 어슷하게 썬 파를 넣습니다. 무와 돼지고기는 애벌로 끓여 두부와 버섯과 파, 후추를 뿌리는 게 요령입니다. 그렇게 칼칼한 국물과 쫄깃한 돼지고기가 잘 어우러진 족살찌개가 탄생을 하게 됩니다.

문경이 탄광지대로 명성을 떨친 건 1926년 ‘문경탄광’이 시초라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문경탄광과 은성무연탄광을 합쳐 부른 말입니다. 이후 문경은 강원 태백에 이어 국내 제2 탄전지대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게 됩니다. 당시 작은 규모의 광산까지 합치면 광산 운영을 하는 업자만 300명쯤 됐다고 합니다.

한때 문경에는 광부가 7200명에 달할 때도 있었답니다. 마을마다 요정이 서너 개씩 있었고, 광부들의 월급날은 지역 사회가 들썩였을 정돕니다.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길을 가던 행인 10명 중 7명이 뒤를 돌아봤다.”(한국문화원연합회-‘사라져 가는 기억, 한국의 탄광’)

남한 최초 탄광…문화가 된 음식

문경 석탄 박물관. 중앙포토

문경 석탄 박물관. 중앙포토

1994년 7월 문경의 탄광은 모두 문을 닫게 됩니다. 주된 연료가 연탄에서 석유로 바뀐 데다 치솟는 석탄 생산비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 겁니다. 정부가 1985년부터 석탄 광산을 정리하자 문경 탄광도 하나둘씩 사라집니다. 탄광이 호황일 때 16만 명을 웃돌던 문경 인구도 7만5000명으로 반 토막 났습니다.

이제 문경에 탄광은 없지만 그때 그 시절 흔적은 남아있습니다. 광부들이 즐겨 먹던 ‘족살찌개’ 입니다. 칼칼한 찌개가 단순한 음식을 넘어 지역문화로 자리한 것도 이런 역사성에 기인합니다.

족살찌개는 문경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막장에서 구슬땀을 흘렸던 광부들의 밥상을 문경시가 직접 관리하고 나선 겁니다. 1호점인 수정식당을 시작으로 황토성, 매봉산, 메밀꽃필무렵, 한우리식당 등 5곳이 족살찌개 전문식당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엄격한 심사…전문식당 5곳 선정”

문경시 은성탄광 갱도 내에 접목된 디지털 콘텐트 영상. 문경탄광은 일제강점기 당시 문경탄광과 은성무연탄광을 합쳐 부른 말이다. 사진 문경시

문경시 은성탄광 갱도 내에 접목된 디지털 콘텐트 영상. 문경탄광은 일제강점기 당시 문경탄광과 은성무연탄광을 합쳐 부른 말이다. 사진 문경시

문경시는 선정 당시 ‘미스터리 쇼퍼(Mystery Shopper)’ 방식으로 심사를 진행했답니다.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손님을 가장한 전문 심사위원 4명이 맛과 서비스를 평가한 겁니다. 이들 심사위원은 음식의 맛은 물론이고 친절도와 접근성 등을 까다롭게 따졌다고 합니다.

이런 절차를 밟은 덕분인지 전문식당의 자긍심도 높습니다. 1호점인 수정식당 정임순(68) 사장의 말만 들어도 족살찌개의 오랜 명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내려온 레시피대로 만들기 때문에 과거 광부들이 먹던 맛을 이어갈 수 있다. 결국 돼지고기와 갖은 채소의 맛을 얼마나 신선하게 유지하느냐가 맛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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