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대리급이 부려먹는다"…생수병 미스터리, 인사불만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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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경찰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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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회사에서 일어난 이른바 ‘생수병 독극물 사건’과 관련해 인사 불만에 따른 이 회사 직원의 단독 범행인 것으로 경찰이 결론짓고 수사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경찰 “생수병 사건, 인사 불만 단독 범행”

 ‘생수병 사건’이 벌어진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회사 모습. 직원들은 재택근무 중이고 사무실 문은 닫혀 있다. 김지혜 기자

‘생수병 사건’이 벌어진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회사 모습. 직원들은 재택근무 중이고 사무실 문은 닫혀 있다. 김지혜 기자

서울 서초경찰서는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피의자 30대 A씨의 살인·살인미수 혐의에 대해 공소권 없음 처분으로 수사를 종결한다고 16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가 사망하면서 수사에 한계가 있었지만, 인사 불만과 업무지시에 대한 불만에 따른 A씨의 단독 범행으로 본다”며 “관련자 조사나 사무실 수색, 휴대전화 포렌식 등을 통해 범행 동기나 방법 등을 규명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사건은 지난달 1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회사 남녀 직원 2명은 이날 오후 사무실 책상 위에 놓여있던 생수병에 든 물을 마신 뒤 1시간 간격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물맛이 이상하다”는 말을 남기고서다. 생수병은 이미 뚜껑이 열려 있었다고 한다. 직장 동료인 A씨는 사건 발생 이튿날 자택에서 독극물을 마시고 숨진 채 발견됐다. 앞서 지난달 10일에는 룸메이트로 알려진 또 다른 직원이 음료수를 먹고 쓰러지는 일이 있었다. “불특정 다수를 노린 게 아니라 정확히 세 사람을 특정해 A씨가 범행했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이유는 인사에 따른 불만 등이라고 경찰은 추정했다. 피해자들은 모두 A씨와 같은 팀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이었다. A씨 책상에서는 ‘짜증 난다’ ‘제거해 버려야겠다’와 같은 내용이 담긴 메모가 나왔다고 한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회사 관계자들로부터 “A씨가 평소 지방 인사 발령 가능성을 듣고 불만을 품었을 수 있다” “잦은 업무 지적에 불만이 있어 보였다” 등과 같은 진술도 확보했다.

경찰 관계자는 “직급(대리)과 나이가 같은 여성 직원을 보며 A씨가 이 사람이 나에게 일을 많이 시키고 부려먹는다는 생각을 했었다”며 “메모에도 여성 직원을 향한 원망이나 일 관련 불만이 있다”고 말했다. 먼저 범행을 저지른 룸메이트 직원에 대해서는 “그만큼 친했는데 이런 일(인사 관련)은 나서서 막아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조치가 없었다는 데 따른 불만이 있었던 거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룸메이트는 대리인 A씨보다 상급자(과장)로 파악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숨진 A씨에게서는 피해 직원들의 혈액에서 나온 것과 같은 독극물이 검출됐다. 직급이 팀장인 남자 직원은 사건 발생 엿새 만인 지난달 23일 결국 숨졌다. 여성 직원은 현재 건강 상태가 양호하다고 경찰은 전했다.

“유서 없어 죽음 이유 파악 어려워”

서초경찰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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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범행 때 쓰인 것과 똑같은 독극물을 산 A씨의 인터넷 기록을 확보했다. 휴대전화 포렌식을 통해서는 지난 9월쯤 독극물 검색 기록을 확인했다. 또 해당 성분의 독극물 용기를 A씨 자택에서 찾는 등 A씨 범행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도 찾았다. 하지만 A씨가 유서를 남기지 않고 사망하면서 범행 동기 파악에 어려움을 겪었다. 경찰 관계자는 “다른 증거가 나오지 않아 죽음 이유를 알 수가 없다”며 “포렌식을 했으나 왜 독극물을 살해 도구로 택했는지도 확인되는 게 없다”고 말했다.

해당 사건은 사무실에 폐쇄회로TV(CCTV)가 없고, 생수병에서 독극물이 검출되지 않아 미스터리 사건으로도 불렸다. 이에 대해 경찰은 “생수병이 8시간 후에 수거가 되면서 증거 동일성이 확보가 안 됐다. 피해자가 마신 생수병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생수병이 바꿔치기 됐을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앞서 A씨는 9월 중순쯤 다니던 회사와 계약 관계에 있는 다른 회사의 사업자등록증을 도용해 인터넷으로 독극물을 샀다. 해당 사이트에서는 소속 기관을 등록해야만 약품을 살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절차상 확인을 하고 판매하게 돼 있는데 처벌 규정이 없다”며 “수사 종결 이후 관계 부처인 환경부에 이런 문제가 있었다고 공문을 보내 개선안에 대한 관련 건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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