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여가,시설 부족이 문제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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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피서인파가 절정을 이루면서 바캉스문화의 실종을 개탄하는 소리가 높다. 사실 유원지나 계곡ㆍ바닷가 어느 곳이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질서한 행락과 자연훼손ㆍ쓰레기더미 등에 접하게 되면 거기에서 문화를 느끼기는 커녕 최소한의 공중도덕심마저 팽개쳐 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러나 시각을 바꾸어 그런 곳에라도 찾아가지 않고는 달리 휴가철을 보낼 곳이 없는 서민들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바캉스문화의 실종을 개탄하기 전에 우리의 여가생활이 이렇듯 무관심속에 방치되어도 좋은가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평소의 몇배나 시간이 걸리는 찜통 자동차 행렬에 시달린 끝에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불편한 시설과 바가지 요금,폭력배의 횡포 등으로 휴식을 취하기는 커녕 떠날 때보다 더 짜증스럽고 지친 몸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 해마다 되풀이되는 우리네의 휴가철 풍속도다.
피서지의 무질서와 혼란은 물론 기본적으로는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질서의식과 공중도덕에 문제가 있다고 해야 하겠지만 동시에 피서객들이 찾아갈 곳이 한정돼 있는 데다 그곳에서 이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설비마저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에도 책임이 있음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여가는 있되 그 여가를 건전하게 보낼 수 있는 휴식공간과 시설이 없다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고 볼 것이다.
잘 알다시피 지금 우리는 정치ㆍ경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소비생활에서도 커다란 전환기를 맞고 있다.
당장 먹고 사는 일을 넘어서 삶의 질을 중시하게 된 배경에는 물론 임금상승등 소득수준의 향상이라는 객관적 여건의 변화가 깔려 있는 것이지만 어쨌든 과거에는 외식을 생각 못하던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외식을 즐기게 되었고,바캉스를 생각 못하던 사람들이 피서지를 찾게 되었다. 휴가철 바캉스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여가생활을 보내는 문제가 중요한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여가 수요의 급증에 우리 정부나 사회가 적절히 대응할 태세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일부에서는 이같은 변화까지를 싸잡아 과소비풍조로 몰아붙이고 있고 또 피서지에 몰리는 인파와 그들이 겪는 고통과 불편을 외면하는 데도 그같은 의식의 편린을 읽을 수 있다.
또 정부나 사회가 국민의 「노는 일」에까지 신경을 써야 하느냐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온국민이 건전한 여가생활을 보내도록 한다는 것이 바로 생산성 향상과 노사화합,사회적 갈등의 해소 및 기강확립에도 필수적인 요소라는 사실이다.
이와관련해 시급한 과제는 여가생활을 위한 시설의 부족이다. 휴가철뿐만 아니라 일상 공휴일에도 누구나 값싸게 즐길 수 있는 수영장ㆍ배구장ㆍ탁구장 등 대중 생활스포츠 시설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늘려가야 한다. 전문 선수들을 위한 거대한 경기장에 수백억원씩 투자하는 것도 필요는 하겠지만 그에 앞서 지역마다 근로자ㆍ청소년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소규모 시설을 대폭 늘려야 한다.
여가를 건전하게 보내도록 하는 문제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중요한 과제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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