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영희칼럼

돌진의 맹장 후퇴의 영웅 성적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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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한국이 국내총생산(GDP)에서 11위 자리를 브라질에 내주고 12위로 떨어진 것은 충격적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멕시코와 러시아와 호주가 한국을 추월하는 것도 시간 문제라는 전망이다. 한국은 무엇을 잘못하고 브라질은 무엇을 잘해 경제력의 순위가 뒤집힌 것인가.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과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의 차이다.

노무현과 룰라는 2002년 말 중요한 공통점을 갖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노무현은 반(反)기득권 세력과 서민계층의 지지를 업고 당선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대통령이다. 룰라는 초등학교 중퇴 후 열두 살에 구두닦이, 열네 살에 금속공장 노동자가 된 골수 서민 출신이다. 세금폭탄과 미국 괴롭히기(이지메)와 국민을 20%의 기득권층 대 80%의 서민층으로 대치(對峙)시키는 갈등의 정치는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 때 예고된 것이다. 같은 이치로 룰라의 당선으로 서민을 위한 복지 확대와 외채상환거부(Default)와 국부(國富)의 절반을 소유한 상위 10%의 고통이 예상됐다.

그러나 대통령 노무현과 룰라는 상반되는 길을 걸었다. 그들이 당도한 종착역에 서서 보면 노무현은 한국의 경제와 안보의 현실적 요구를 무시하고 민족자주의 길로 매진하는 돌진형의 맹장(盲將)이 됐다. 룰라는 브라질의 경제적 현실을 직시하고 지지층과의 약속을 과감히 깨는 후퇴의 영웅이 됐다. 룰라는 대지주들의 땅을 사서 소작인들에게 나눠주겠다는 약속에서 크게 후퇴했다. 자신의 지지기반인 노조 설립을 제한했다. 퇴직 후 재직 때 급여의 100%를 받는 공무원 연금제도에 칼을 댔다. 전임 대통령이 국제통화기금(IMF)에 약속한 대로 재정적자를 줄이고 인플레를 잡았다.

후보 시절의 노무현이 미국 한번 방문하라는 권고에 사진 찍기 위한 방미는 안 한다고 말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룰라는 당선 직후 뉴욕의 월가로 달려가 자신의 정부가 반시장.반기업 정책을 펴지 않을 것임을 약속했다. 노무현이 코드인사에 철저했던 것과는 달리 룰라는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반대당 소속의 재벌기업인을 선택하고 재무.산업.노동장관에 능력 위주로 중도 노선의 사람들을 발탁했다. 1966년부터 노조 활동에 뛰어들어 수많은 파업을 지도하고 80년에는 노동자당을 만든 노동자의 영웅 룰라의 변신은 놀랍다. 그는 양복을 입고 다보스 경제포럼에도 갔다. 룰라 공포는 룰라 효과로 바뀌었다. 대선 기간 중 룰라에게 겁을 먹고 브라질을 떠난 외국자본이 되돌아왔다. 부자 나라들의 G8회의가 그를 특별손님으로 초청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을 포함해 브라질에 투자할 만한 나라들을 열심히 찾아다닌다.

노무현은 왜 룰라 같은 변신, 약속으로부터의 후퇴를 할 수 없는가. 룰라의 '가방끈'은 짧아도 세상 보는 그의 안목은 유럽의 합리주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 사람들이 세운 유럽 문화의 파편으로 출발했다. 한국에 비해 브라질은 훨씬 높은 세계화의 고지에서 출발했다. 그들이 고립주의를 원해도 한계가 있다. 노무현은 합리주의와 거리가 먼 우물 안에서 바깥세상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바깥세상이 무서운 386들의 편협한 민족자주의 사슬에 묶여 있다. 미국과 서유럽 것에 대한 그들의 혐오는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과 브라질은 사정이 다르다. 한국의 빈부격차는 브라질에는 비교도 안 된다. 그래서 노무현은 룰라처럼 철저히 지지층을 배반할 필요는 없다. 룰라의 절반만 현실주의 노선으로 다가서면 될 것이다. 노무현은 자신을 좌파 신자유주의자라고 말했다. 모순되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좌파의 철학으로 신자유주의의 불공정과 폐단을 바로잡고, 신자유주의로 좌파의 이념적 편향을 억제한다는 의미라면 좋다. 자주라는 것도 전향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자주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국익을 위해서는 미국에 자주적으로 예, 예 하는 용기와 미국의 힘을 자주적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