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친구에 ″사랑의 손발〃4년|전신마비근로자 병상 지키는 황철범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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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친구의 몸이 하루빨리 완쾌돼 벌떡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산업재해로 불구가 된 친구의 손발이 돼 4년째 간병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황철범씨(35·경북 영일군 오천읍 세계4동)는 포항제철 협력업체인 포항축로공업사 기능공으로 근무하던 중 작업장에서 다리를 부상, 창원산재병원에 입원했다가 이 병원에서 우연히 알게된 김헌영씨(35·전 포항 동일정공 근로자) 가 하루빨리 완쾌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이제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 김씨가 입원중인 창원시 중앙동 창원산재병원506호 4평 남짓한 병실에서 간이침대로 새우잠을 자며 자신의 도움 없이는 거동을 못하는 체중75kg의 김씨를 안아 옮기거나 물리치료 등을 하고 식사는 물론 빨래까지 해내 주위의 눈길을 모으고 있다.
친구의 간병생활로 혼기마저 놓쳐 노총각이 돼버린 그는『의지할 곳 없는 친구를 남겨두고 떠날 수가 없어서 돕게된 것』이라고 소박한「동기」를 설명하고『이제는 친구의 병세가 회복되는 것만이 자신의 유일한 소망』이라고 거듭 말했다.
이들이 처음 만난 것은 82년3월. 황씨가 작업 중 다리를 다쳐 신경장애 등으로 이곳 창원산재병원에 입원하면서 이보다 1년 전인 81년1월 작업 중 추락사고로 목뼈가 부러져 전신마비로 입원해 있던 김씨를 만나게된 것.
이들은 둘 다 장남인데다 가족이 경북 영일군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국민학교 졸업 후 철공소와 신발공장 등에서 공원생활을 했던 불우한 과거와 산재환자로 병원생활을 하게된 처지가 비슷해 쉽게 가까운 사이가 됐다.
병원생활을 하는 동안 병세가 호전된 황씨는 자주 김씨의 병상을 찾아가 식사를 도와주거나 서로를 위로하면서 생활했다.
85년 2월 먼저 퇴원한 황씨는 완치가 안돼 회사복직을 하지 못하고 장애보상금 5백여 만원으로 복사기를 구입, 영일군 오천읍사무소 부근에서 문방구를 차렸으나 1년만에 적자로 문을 닫고 말았다.
이 무렵 병원에 혼자 남게된 김씨도 86년4월 퇴원, 보상금으로 마련한 포항시내 집에서 자가치료를 받고 있었으나 그 동안 간병을 해왔던 여동생(28)이 87년3월 결혼을 하면서 뒷바라지 해줄 사람이 없게됐다는 딱한 사정을 전해듣고 문병 차 들렀던 황씨가 김씨의 손발이 돼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황씨는 친구의 대소변은 물론 목욕·식사·물리치료 등 온갖 궂은 일을 가리지 않고 처리했다.
이후 지난해4월 김씨의 신경장애증세가 재발해 심한 통증을 겪게돼 창원산재병원에 다시 입원, 이곳 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병원치료비는 산재보험에서 지급되지만 병원에서 쓰이는 생활비는 김씨의 결혼한 남동생 태진씨(33·광양제철 기능공)가 매월20만∼30만원씩 보내주는 돈으로 꾸려가고 있다.
황씨는 그 동안 가족들로부터 결혼권유를 받았으나 병상의 친구를 그냥 두고 떠날 수가 없어 거절하는 바람에 최근 2∼3년간은 아예 가족들과 편지·전화연락마저 끊긴 상태.
뜨거운 우정으로 맺어진 이들은 카톨릭신자인 이 병원 약제과장 하득수씨(42)의 주선으로 카톨릭신자가 돼 세례를 받아 주말에는 김씨를 휠체어에 태워 창원반송성당에 나가 미사에도 참석하고 있다.
하 과장은『친구를 위해 헌신하는 황씨의 인간애에 감동을 느낀다』고 말하고 황씨에게 몇 차례 결혼권유를 했으나 자신이 아니면 체중이 무거운 친구를 도울 수가 없다며 친구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창원=허상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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