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일 안보보좌관 12일 비공식 訪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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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재신임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나섰을 때 미국 내 한국 전문가들은 "이제 한국의 이라크 파병은 물 건너갔다"는 분위기였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무엇보다 盧대통령 지지자들의 상당수가 파병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12월 15일에 국민투표를 하려면 盧대통령으로선 지지세력을 최대한 결집시켜야 한다.

따라서 지지표의 이탈을 가져올 결정은 못 내린다는 것이다. 또 미국 정부에 대해서도 "국내 정세가 이렇게 불안한 판에 어떻게 파병을 하느냐"면서 시간을 끌 명분이 생겼고 盧대통령 정부가 그것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라는 게 미 전문가들의 지적이었다.

이 때문에 라종일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과 외교통상부 이수혁 차관보가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워싱턴을 비공개로 방문한 것은 큰 관심을 끌었다. 게다가 두 사람이 체류한 12~13일은 일요일과 콜럼버스 데이의 연휴기간이어서 정상적으로는 미 행정부 관리들을 만나는 게 쉽지 않은 시점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 등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라이스 보좌관은 14일 盧대통령의 재신임 발언과 한국의 이라크 파병에 대해 언급했다. 라이스 보좌관은 "한국은 종종 이라크에 병력을 보내는 문제에 관심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을 했다"면서 "그것은 확실히 우리가 그들과 가장 관심있게 논의할 문제"라고 말했다. 또 "한국은 강력한 동맹"이라면서 "한국인들이 이라크에서 펼치는 우리 정책에 보내 준 매우 좋은 지지를 앞으로도 계속 보내 줄 것으로 확신한다"고 낙관론을 표시했다.

이와 함께 盧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에 대해서도 "한국은 활기찬 민주국가이며 한국민에 의해 선출된 盧대통령은 그 민주주의를 계속 작동하게 만드는 어떤 방법을 발견할 것으로 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라이스 보좌관의 이 같은 발언은 한국에서 온 대표단과 만난 직후에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일부에선 "盧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이 어려울 것이라는 일반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결정을 내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3박4일간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라종일 보좌관은 15일 "우리 정부가 이라크 파병 여부를 재신임 국민투표 이후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미국 측에 전달했다는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羅보좌관과 함께 입국한 한승주(韓昇洲)주미대사도 "국내 정치와 외교 문제는 직접 관련이 없다"면서 "한.미 관계가 원만하고, 이러한 현지 분위기를 盧대통령에게 말씀 드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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