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목청을 높이거나 비난하기 전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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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8호 31면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오래간만에 외출했다가 버스를 타게 되었다. 올라타면서 운전기사와 인사를 주고받고 자리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다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썼다. 런던의 경우 대중교통이나 상점 등의 닫힌 공간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게 되어있지만 길거리나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 식당을 나선 다음 마스크를 벗고는 익숙하지 않으니 다시 쓰는 걸 잊고 버스에 그냥 탄 것이다. 한국에서라면 주변 사람들 눈총을 어지간히 받거나 심지어 꾸짖음 섞인 호통을 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버스에 타지도 못했겠지.

영국도 노 마스크 과태료지만 #착용 면제자 존중하는 영 경찰 #안 쓰면 공공의 적 되는 한국 #온라인 마녀재판 과연 옳은가

영국의 경우 코로나19와 관련된 제한은 많이 완화되었다. 백신 접종률이 매우 높아지면서 사망자 수가 큰 폭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우려와는 달리 영국인들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신뢰는 매우 높고, 효과 역시 다른 백신과 차이가 없다고 한다. 상당 부분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마스크 착용은 해야 한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는데, 착용이 면제되는 사유들이 있다. 영국 정부의 공식 홈페이지에 적힌 바에 따르면 10세 이하의 어린이(2세 이하의 경우 질식의 위험이 있다고 보아 착용하지 말도록 권하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대화를 하면 의사전달이 불가능한 사람, 심리적 정서적 신체적 이유로 마스크 착용이 불가능한 경우, 격렬한 활동이나 운동을 할 때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는 경우 등이 면제 사유에 포함된다. 또 임무를 수행하는 경찰이나 응급구조 인력 등은 착용이 면제된다.

이런 면제 조건에 해당되는 사람이더라도 표식을 다는 등의 행위를 통해 본인이 착용 면제자라는 것을 외부에 명시적으로 나타낼 필요는 없다. 소견서나 진단서 등을 받아 이를 소지해야 할 의무도 없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인상적인 것은 영국 정부가 마스크를 쓰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상황이나 조건이 늘 다른 사람에게 명백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므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을 대할 때 주의하고 존중해 달라고 공식 홈페이지에 당부하고 있는 점이다.

선데이칼럼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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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쓰지 못하지만 남들이 보기에 그런 사정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로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청각 장애가 있어 입술을 읽어 의사소통을 하는 이와 동행하는 사람이 마스크를 벗고 대화를 하는 걸 봤다고 치자. 그렇다면 순간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은 누군가 마스크를 벗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 상대가 잘 들리지 않고 입술을 읽어야 한다는 건 바로 알아차리기 어렵다. 또한 마스크 착용을 하지 못할 정신적 또는 심리적 문제가 있다고 하여도 본인이 굳이 밝히기 전에는 제3자가 그 사정을 쉽게 알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일단 누구든 예외 없이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로 보인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란 공공의 적으로까지 취급되는 모양이고 그를 꾸짖을 권리는 널리 인정되는 듯하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에게 뭐라고 호된 질책을 했다거나 심지어 마스크 착용 문제를 가지고 싸움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이렇게 서로를 강력히 단속하는 태도가 감염병을 막는 데 도움이 되기는 했으리라.

하지만 한국 역시 24개월 미만의 영유아, 주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벗기 어려운 사람, 마스크 착용 시 호흡이 어려운 사람은 마스크 착용 의무화 대상에서 예외로 하고 있다.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은 듯하지만 마스크를 안 써도 된다고 공식적인 면제를 받은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다. 앓고 있는 병 때문에 호흡이 어려운 사람을 향해서, 아니면 겉으로는 잘 표가 나지 않는 장애를 가진 사람을 향해서 마스크를 쓰라는 날 선 외침이 먼저 가해지고 그에 대해 일일이 본인이 질병이나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그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면 가뜩이나 사회적 약자인 처지에 가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하루에도 몇 차례 그런 일을 겪을 수 있고,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아예 외출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한국도 백신을 맞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마스크 착용 완화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만일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주변에 있어 신경이 쓰인다면 목청을 높이거나 비난하기 전에 그럴 만한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리고 예의 바르게 착용을 권고하는 것이 먼저다.

이는 비단 마스크 착용 여부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누군가의 실수나 잘못에 대하여 본인은 옳고 정당하다는 전제하에 강력하고 신속한 응징을 가하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듯하다. 판단을 유보하여 잠시 기다려주거나 좋게 설득하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사납게 군다. 이런 일은 집단적으로 벌어지기도 해서, 특히 온라인상에서는 우르르 몰려가 잘못을 저지른 누군가를 공격하고 망신을 주는 모습을 드물지 않게 본다. 사실 이런 언행은 공공의 정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본인의 만족을 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이 잘 모르는 사정이 있을 수 있고, 판단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언뜻 드러나지 않는 마스크 면제 사유처럼 말이다.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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