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가 알고 있지만...횡단보도서 보행자 건너라고 멈춘 차 '0'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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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의 무신호 횡단보도를 보행자가 건너고 있지만 차량이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가고 있다. [사진 한국교통안전공단]

종로의 무신호 횡단보도를 보행자가 건너고 있지만 차량이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가고 있다. [사진 한국교통안전공단]

 '100%.' 

  왕복 2차선 도로 상의 신호 없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가 길을 건너려고 할 때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친 차량 비율이다. 단 한대도 보행자를 배려하거나 양보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심지어 어린이보호구역에서도 일시정지 준수율은 5%대에 그쳤다.

교통안전공단, 종로서 횡단 실험 #185회 시도, 정차한 차 8대 불과 #어린이보호구역의 준수율 5%대 #국민 92% '일시정지 규정 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4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무신호 횡단보도 운전자 일시정지 의무 준수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조사는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의 진출입로와 단일로, 어린이보호구역 등 5곳에서 이뤄졌다.

 이에 따르면 보행자가 무신호 횡단보도에서 185차례 길을 건너고 있거나 건너려고 시도하는 동안 보행자를 위해 운전자가 정차한 사례는 단 8회에 불과했다. 현행 도로교통법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을 때는 모든 차량은 일시정지토록 규정하고 있다. 위반하면 승용차 기준으로 7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왕복 2차로의 단일로에 있는 무신호 횡단보도에선 79명의 운전자 모두 일시정지를 하지 않았다. 보행자는 이들 차량이 모두 지나간 뒤에야 겨우 길을 건널 수 있었다는 얘기다.

 [자료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료 한국교통안전공단]

 특히 어린이보호구역인 초등학교 앞 도로에서도 보행자를 위해 잠시 차를 멈추는 경우는 36대 중 2대에 그쳤다. 준수율이 5.5%에 불과한 것이다. 그나마 넓은 도로와 좁은 도로가 만나는 진출입로에서의 준수율이 8.6%로 가장 높았다.

 공단 관계자는 "진출입로에서는 운전자가 도로 합류를 위해서 속도를 줄이면서 보행자에게 양보하는 비율이 좀 더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보행자 배려보다는 도로 합류를 위한 감속 영향이 크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더 큰 문제는 운전자 10명 중 9명은 횡단보도 일시정지 의무를 알고 있으면서도 지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교통안전공단이 실시한 '무신호 횡단보도 일시정지 의무 인식조사'결과를 보면 국민의 92.1%가 "규정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대다수가 알지만 준수하지 않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무신호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보이면 대부분 정차한다. [자료 한국교통안전공단]

선진국에서는 무신호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보이면 대부분 정차한다. [자료 한국교통안전공단]

 정부는 보행자 보호를 위해 현행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뿐 아니라 횡단을 하려고 할 때도 차량에 일시정지의무를 부과할 계획이다. 이런 방향으로 법이 개정되면 보행자가 횡단보도 앞에 서 있기만 해도 차량은 멈춰야 한다.

 권용복 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은 "사람이 우선인 교통문화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보이면 일단 멈춤'의 습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차에서 내리면 누구나 보행자가 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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