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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수사권 없다"는 美검찰, '전두환 비자금' 환수 주도했다

중앙일보

입력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 신설 추진으로 검찰 수사권의 완전한 폐지 논의가 이뤄지는 한국과 달리 해외 주요국은 검사의 수사권을 대체로 인정한다.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미 연방 사법절차법에는 연방검사의 범죄 기소권과 정부 대리 소송권 등만 명시하고 있지만, 법무부 규정(Justice Manual)으로 연방검사의 직접 수사권과 연방수사국(FBI) 등 50여개 연방수사기관에 대한 수사요구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에선 이러한 미 연방검사의 수사 기능을 평가절하하며 검찰 수사권 폐지를 외친다. 민주당 검찰개혁특위 소속 황운하 의원은 23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입법 공청회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지배하는 문명국가 어디에서도 검찰이 직접수사권을 전면적으로 행사하는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수사-기소 완전 분리를 위한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입법 공청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수사-기소 완전 분리를 위한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입법 공청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황 의원은 또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수사한다는 뉴욕 연방검찰도 직접 수사로 수사를 주도하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을 따져보려면 미 연방검사(U.S. Attorneys)의 수사 권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미국의 각종 규정부터 살펴봐야 한다.

미 법무부 내규는 연방검사 권한(AUTHORITY OF THE U.S. ATTORNEY)에 대해 “미국 연방검사는 연방범죄와 관련해 무제한의 권한을 가지며 법무부 장관의 지휘·감독 아래 이를 행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에 대한 모든 범죄를 기소해야 하는 연방검사의 법률상 의무는 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권한도 수반한다"며 권한들의 첫 번째로 연방범죄 혐의 수사를 꼽았다. 두 번째로 적절한 연방수사기관의 수사 제기, 이어 공소의 거부·기각·항소 등을 포함한 기소권 순으로 열거했다.

수사와 관련해선 "연방검사는 (93개 연방지검) 관할 구역의 최고의 법집행기관으로서 연방수사기관에 수사 개시를 요구할 권한이 있으며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 연방검사는 여러 수사기관 요원들로 수사팀 구성을 요구할 수 있으며, 대배심(Grand Jury)을 활용할 수도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배심은 소환·구속·압수 등 중대 사건의 강제수사와 기소 여부 결정을 위해 23명의 배심원단으로 구성하는 미국의 독특한 사법제도다.

한 법조계 인사는 “한국에서 피의자 신문 조사를 하는 식으로 책상 앞에 앉혀놓고 검사가 타이핑을 치지 않는단 이유로 검사가 수사를 안 한다고 하면 바보 같은 소리”라며 “범죄 혐의 입증을 위해 증거를 모으는 게 보편적 의미의 ‘수사’라면 미국 검사들도 당연히 직접 수사를 한다”고 말했다. 미 검사들의 수사권 행사를 한국의 형사소송법 체계와 시각에서 해석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가 2013년 9월 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가 2013년 9월 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미 연방검찰이 직접 수사로 성과를 낸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에도 익숙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국 내 비자금에 대한 환수 작업이다. 전 전 대통령 추징금 집행 시효를 앞둔 2013년 국회에선 ▶시효를 10년 더 연장하고 ▶범죄수익의 경우 제3자 재산 추징도 가능케 하는 특례법이 통과됐고, 그해 8월 한국 법무부는 전 전 대통령의 미국 은닉 재산 동결·몰수를 위해 미 법무부에 형사사법공조를 요청했다.

이후 미 연방검찰이 수립한 수사 계획에 따라 FBI·국세청(IRS)·국토안보수사국(HSI)이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2년여에 걸친 수사 끝에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 부부의 부동산·투자이민채권 등 재산을 파악해 2015년 총 112만 달러를 몰수해 한국으로 환수했다. 미 연방검찰은 전재용씨 부부와 유죄협상(Plea Bargain)을 통해 기소 없이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민사 절차를 밟았다.

당시 한국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미 법무부 내 수사국(Criminal Division)에는 한국 검찰처럼 검사와 수사관이 있어 실질적으로 직접 수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FBI 등 연방수사기관이 자체 수사를 하더라도 성공적인 기소를 위해 수사 단계에서 검사의 개입을 요청하거나, 증거능력 확보를 위해 수사 과정을 검사에 보고하는 게 당연한 절차”라며 “검사가 피의자와 유죄협상을 할 수 있는 것도 그 전까지 수사 전반을 다 컨트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시 리우 미 워싱턴DC 연방검사가 2019년 10월 워싱턴에서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유통 다크넷 사이트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한국인 손정우씨와 전세계 38개국 이용자 337명을 적발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제시 리우 미 워싱턴DC 연방검사가 2019년 10월 워싱턴에서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유통 다크넷 사이트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한국인 손정우씨와 전세계 38개국 이용자 337명을 적발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5년 11월 9일(현지시각) 김현웅 당시 법무부 장관(왼쪽)이 미국 워싱턴DC 소재 미국 연방 법무부에서 로레타 린치 당시 미 법무장관으로부터 전두환 전 대통령 은닉 재산에 대한 환수 자금 인도증서를 건네받고 있다. 법무부 제공

2015년 11월 9일(현지시각) 김현웅 당시 법무부 장관(왼쪽)이 미국 워싱턴DC 소재 미국 연방 법무부에서 로레타 린치 당시 미 법무장관으로부터 전두환 전 대통령 은닉 재산에 대한 환수 자금 인도증서를 건네받고 있다. 법무부 제공

2015년 당시 김현웅 법무부 장관에게 환수자금 인도증서를 직접 건넨 로레타 린치 법무장관은 뉴욕동부지검 검사장으로 재직하며 국제축구연맹(FIFA) 간부들의 뇌물 혐의 수사를 직접 이끈 주인공이다. 법무장관 시절엔 연방검찰 주도로 FBI 등과 함께 수사하도록 지시해 FIFA 간부들을 스위스에서 긴급 체포하고 기소하는 등 ‘FIFA 저승사자’로 불리기도 했다. 전두환 비자금 환수와 FIFA 수사는 오바마 행정부 당시 미국 내 외국계 비리 척결 노력에 따른 연방검찰과 수사기관의 공조수사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황 의원은 이날 공청회에서 “우리 검찰은 수사기관으로 정체성이 변질되면서 본연의 역할인 공소관으로서 요구되는 객관성과 중립성을 상실한 지 오래”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미 형사사법제도에 밝은 한 법조계 관계자는 “미 연방검사들에게 물어봐라. 우수한 검사는 훌륭한 수사를 통해 공판까지 가지 않고 유죄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자신의 역할이 공소제기와 공소유지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주로 선출직인)주 검찰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적어도 강력·경제범죄 등 중요범죄를 다루는 연방검찰은 FBI 등 수사기관을 지휘해 직접 수사하고 오히려 공판을 덜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대범죄 강제수사 및 기소에 활용되는 대배심이나 유죄협상 제도 등은 한국엔 없는 제도라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순 없다. 같은 이치로 미국 검사가 직접 수사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건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중대범죄수사청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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