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지휘권 폐지했는데…檢보완수사도 없앤다

중앙일보

입력 2021.02.20 05:00

업데이트 2021.02.20 16:11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의 파동에도 여권에선 중대범죄수사청(중대청) 신설 등 검찰 직접수사권을 완전히 폐지하는 제도 개편을 서두르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 안에서도 율사 출신 의원 사이에 신중론이 새어 나오고 있지만, 열성 지지층이 호응하는 만큼 향후 당 대표 선거나 대선 경선 등 당내 선거를 거치면서 추진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여전하다.

중대범죄수사청 무엇이 문제인가 ③

황운하 민주당 의원 등이 중대청설치법을 발의한 건 지난 8일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올해 초부터 새로운 형사사법시스템이 적용된 지 38일 만이다. 수사기관에 종사하는 한 관계자는 “검찰·경찰 모두 수사권 조정 전 벌어진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비일비재한 상황”이라며 “이런 가운데 또 다른 제도를 만들겠다는 건 일선 현장을 모르는 이들의 발상”이라고 토로했다. 중대청의 필요성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바뀐 제도부터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게 우선이라는 취지다.

지난해 1월 13일 통과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올해 1월 1일부터 경찰에 1차 수사종결권을 주고,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원칙적으로 폐지하는 새 형사사법제도가 시행됐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안내표지판 뒤로 서울서초경찰서 건물이 보인다. 뉴스1

지난해 1월 13일 통과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올해 1월 1일부터 경찰에 1차 수사종결권을 주고,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원칙적으로 폐지하는 새 형사사법제도가 시행됐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안내표지판 뒤로 서울서초경찰서 건물이 보인다. 뉴스1

①보완수사권도 없애겠단 與=올해 초부터 시행된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은 6대(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산·대형참사) 중대 범죄를 제외하곤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대한 보완수사 요구 ▶경찰이 송치하지 않은 사건에 대한 재수사 요청(1회)경찰이 수사 과정 등에 대한 시정조치 요구 권한만 갖는다. 경찰에 1차 수사종결권을 부여해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사실상 폐지한 데 따른 것이다. 다만 고소인 등의 이의신청이 있는 경우엔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아 수사할 수 있다.

그런데 여권은 이 같은 권한도 6대 범죄에 대한 수사권과 함께 박탈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검찰개혁특위 소속 박주민 의원은 지난 1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와 이의신청에 따른 2차 수사권과 관련해 “남용되면 사실상 1차 수사를 하는 경우와 비슷해지겠다고 판단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부분을 좀 더 제한하려 한다”고 말했다. 경찰의 수사종결권을 보다 강화하고 검찰의 수사권·수사요구권은 더 약화하겠단 것이다.

법조계에선 “현재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인정되지 않는 국가도 극소수지만, 그러한 나라에서도 검사의 조언이나 개입 없이 수사를 종결하진 않는다”는 반론이 나온다. 검사의 수사지휘를 권력의 상하 관계가 아닌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한 제도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뜻이다. 경찰이 검찰에 송치하지 않은 사건을 손도 대지 못하게 하면, 경찰이 혐의가 있는데도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종결했을 경우 이를 사후에 바로잡는 데 큰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2월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당초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엔 중대범죄수사청에 관한 과제는 없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2월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당초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엔 중대범죄수사청에 관한 과제는 없었다. 연합뉴스

②거짓말은 어떻게 통제하나=개정 전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이 수사 과정에서 진술한 내용과 법정에서 진술한 내용이 서로 다를 경우, 검사의 피의자신문조서 증거 능력을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경찰의 피의자신문조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부여한 개정 후 형사소송법은 재판에서 피고인의 진술이 달라질 경우 경찰뿐만 아니라 검사의 피의자신문조서도 증거 능력을 갖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312조). 이 제도가 시행되는 내년 1월 1일부터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말을 바꾸면 범죄에 대한 처벌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실제 해외 주요국은 수사기관이 취득한 피의자 진술의 증거능력을 대체로 인정하는 추세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별도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미국·일본·독일·프랑스·영국 등은 사법방해죄와 같이 허위 진술을 처벌하거나, 면책을 조건으로 증언을 취득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한 진술이 신빙성을 갖도록 유도하기 위한 장치다. 증거가 부족할 때 형량 거래를 통해 유죄를 끌어낼 수 있는 유죄협상(plea bargaining) 제도 역시 주요 선진국이 도입하고 있는 제도 중 하나다.

이에 법조계에선 “범죄자에 대한 유죄 입증이 더 어려워진 상황에 대한 보완이 먼저”란 지적이 나온다. 검찰의 직접수사권 폐지 주장의 근간에 ‘무소불위 권력의 인권 침해’ 우려가 있다면, 개정된 형사사법시스템 아래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범죄자의 인권 침해’ 우려가 있단 점에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여권이 주장하는 ‘검찰개혁’에는 검찰 힘 빼기만 있지, 국민의 기본권 보호는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열린민주당 소속 초·재선 의원 주도로 중대범죄수사청 신설과 검찰청 폐지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2일 민주사법개혁 의원모임과 민주연구원(민주당 정책연구소) 주최로 열린 '민주사법개혁 연속세미나: 검찰개혁 입법과제'에 참석한 민주당 박주민·김남국, 열린민주당 최강욱, 민주당 황운하 의원(오른쪽부터)의 모습. 연합뉴스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열린민주당 소속 초·재선 의원 주도로 중대범죄수사청 신설과 검찰청 폐지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2일 민주사법개혁 의원모임과 민주연구원(민주당 정책연구소) 주최로 열린 '민주사법개혁 연속세미나: 검찰개혁 입법과제'에 참석한 민주당 박주민·김남국, 열린민주당 최강욱, 민주당 황운하 의원(오른쪽부터)의 모습. 연합뉴스

③이미 100억 넘게 들였는데=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른 새 형사사법시스템을 정비하는 데엔 약 105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중대청 등을 신설할 경우 이미 투입되고 있는 이 예산은 사실상 증발하고, 중대청 인력·조직 구성과 청사 건립·운영 등 막대한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황운하 의원안에 따르면, 중대청은 본부 외 6개 고등법원 관할 지역 소재 지방청까지 총 7개 조직을 신설한다. 검사와 검찰 수사관 일부가 중대청 수사관을 희망해 이동한다고 하더라도 신규 인력 충원이나 수사 장비를 사는 데 필요한 예산 편성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있다.

검찰 등에 따르면 지방검찰청을 기준으로 부지 구입과 건물(8층 규모) 신축에 드는 비용은 약 722억원이다. 이미 보유한 부지에 건물(6층 규모)만 올리는 경우 약 209억원이 필요하다. 같은 규모로 중대청 청사를 짓는다고 할 때, 청사 건립 예산만 5000억원을 웃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다만, 중대청설치법을 주도하는 황운하 의원은 19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기존 각 지방고등검찰청사를 전부 비우고 중대청이 입주하면 비용이 들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인력 충원 방안에 대해서도 “검찰의 수사권이 모두 폐지되면 검찰 내 수사인력은 직제 개편에 따라 자연스레 면직 처리되고 새 채용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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