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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를 "정무직 공무원"이라 부른 여당, 또 "나가라" 폭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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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이날 오전 민주당 최고위에서 "홍남기 즉각 사퇴" 주장이 제기됐다. 뉴스1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이날 오전 민주당 최고위에서 "홍남기 즉각 사퇴" 주장이 제기됐다. 뉴스1

“홍남기 부총리가 즉각 사퇴해야 한다.”

3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홍남기 경질론’이 또 터져 나왔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비공개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 고통을 덜어드리고자 당정 협의하겠다는 연설을 정무직 공직자가 기재부 내부용 메시지로 공개 반박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잘못된 행태”라면서 “오늘 회의에서 ‘즉각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력하게 제기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최 대변인이 “정무직 공직자”라고 표현한 당사자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정무직’이라는 말로 ‘선출직’ 의회 권력과의 차이를 강조했고, 누구나 볼 수 있는 페이스북 글을 ‘기재부 내부용 메시지’로 지칭했다. 앞서 홍 부총리는 전날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맞춤형 지원과 전 국민 지원을 함께 협의하겠다”고 4차 재난지원금 지급 계획을 밝히자마자 “전 국민 보편 지원과 선별 지원을 한꺼번에 하겠다는 것은 정부로선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박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날 민주당 최고위에선 홍 부총리를 이대로 좌시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주를 이뤘다고 한다. 최 대변인은 경질론을 말한 당사자가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였냐는 질문에 “말할 수 없다”며 “(최고위) 참석자 중 한 분이 제기했다”고만 했다. 기자들을 모아놓고 회의 내용을 전하는 자리에서 사퇴론을 꺼낸 것 자체가 민주당 차원의 기재부 압박 메시지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달 20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회의실에 제1차 고위당정협의회가 열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발언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듣고 있다. 오종택 기자

지난달 20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회의실에 제1차 고위당정협의회가 열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발언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듣고 있다. 오종택 기자

복수의 회의 참석자는 통화에서 “경질론은 최고위원이 아닌 한 참석자의 돌출 발언이긴 했지만 4차 재난지원금 문제는 민생을 현장에서 확인하는 당이 주도해서 실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최고위 모두발언에서 “민생의 고통 앞에 정부·여당이 겸허해져야 한다. 재정의 역할을 확대할 때가 됐다”며 “재정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민의 삶을 지탱하는 데 필요하면 재정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홍 부총리는 그간 재난지원금 지급 때마다 민주당과 크게 충돌했다. 첫 재난지원금 지급이 논의되던 지난해 3월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가 언성을 높여 홍 부총리 경질을 거론했다. 지난해 11월엔 홍 부총리가 낸 사표를 문재인 대통령이 반려하는 일도 있었다.

4차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이번 갈등은 지난 1일 오후 갑자기 소집된 비공개 당정협의회에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고 한다. 회의 참석자 주변에서 “김 원내대표와 홍 부총리가 늦은 시각까지 지급 범위 등을 놓고 고성으로 격론을 벌였다”는 말이 나왔다. 당시 좁혀지지 않은 당정 간 견해차가 이 대표의 교섭단체 연설 이후 외부에 그대로 노출됐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 참석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 참석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다만 민주당은 당정 갈등이 자칫 국정 운영의 불협화음으로 보이는 걸 경계하는 모양새다. 이날 최고위에서도 김 원내대표를 비롯한 다수는 “이 문제가 개인의 거취 문제로 전개되면 본질이 흐려진다. 특정인을 겨냥하는 문제는 더는 거론하지 않도록 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당내에서도 “홍 부총리에 대한 분노야 크지만,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석 달 전에 재신임하지 않았느냐”(민주당 관계자)는 의견이 나온다.

홍 부총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어제 SNS(페이스북)에 드린 말씀은 숙고하고 절제되게, 정중하게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낙연 대표의 연설은 공직 생활 중 들은 가장 격조 있는 연설이었다. 다만 정부와 다른 이견 사항이 정부 (부처)들에게 확정된 거로 전달될까 봐 재정당국 입장을 절제된 표현으로 (페이스북에) 말씀드린 것”이라고 설명하면서다. 그는 양당 교섭단체 대표 연설 청취차 이틀 연속 국회에 왔다.

격화하는 당정 갈등 속에 보편·선별 지급 등 4차 재난지원금의 구체적 방침은 청와대가 정리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경제부처하고 당하고 1차, 2차, 3차 재난지원금 (지급) 그때마다 이견들이 있었다”며 “그것은 어찌 보면 보장되고 또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이런 이견들을 조정하고 또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새롬·김효성·김준영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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