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이용구 내사종결때, 경찰청 "중요사건 보고" 지시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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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에 대해 서울 서초경찰서가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의혹과 관련, 경찰청이 사건 발생 수십일 전 일선 경찰서에 “중요 사건의 보고를 철저히 하라”고 특별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서초서는 “상급 관서에 이 차관 사건을 보고하지 않았다”고 해명해왔다. 이는 경찰청 지침에 배치되는 것이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31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을 방문했다. 뉴스1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31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을 방문했다. 뉴스1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실이 최근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청은 지난해 9월 15일 ‘중요사건 보고 및 수사지휘 강조 지시’ 공문을 서울경찰청 등 전국 시·도 경찰청에 내려보냈다. 각 시·도 경찰청과 산하 경찰서는 ‘경찰청 범죄수사규칙’상 중요 사건과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 등의 중요 수사사항을 반드시 상급 관서에 사전 보고하라는 내용이다.

보고가 지연되거나 누락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고도 강조했다. 국정감사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잘못된 수사에 따른 여론 악화를 막을 목적이었다. 서울경찰청도 서초서 등 산하 경찰서에 수차례 업무 연락·공문 등으로 경찰청 지시를 하달했다.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해 11월 6일 밤 당시 변호사 신분이던 이용구 차관이 자택 근처에서 택시 기사를 폭행했고, 서초서는 형사 입건도 하지 않은 채 내사 종결했다.

이후 봐주기 논란이 불거지자 김창룡 경찰청장은 “서초서가 상급 기관에 보고하지 않고 사건을 처리했다”고 말했다. 서초서도 “이 차관 사건은 중요 사건이 아니어서 서울경찰청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서초서 간부는 지난달 말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이 차관은 당시 차관이 아닌 변호사 신분이었기 때문에 중요 사건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범죄수사규칙 “변호사의 범죄는 중요 사건” 

이런 서초서의 설명과 달리 당시 경찰청 범죄수사규칙 제23조(수사에 관한 보고) 제2항 ‘별표1’에선 ‘법관, 검사 또는 변호사의 범죄’는 보고 및 수사지휘 대상인 중요 사건으로 분류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경찰서장은 중요 사건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시·도 경찰청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2020년 12월 30일 서울경찰청. 연합뉴스

2020년 12월 30일 서울경찰청. 연합뉴스

이 때문에 서초서의 해명이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쪽에서는 경찰청이 중요 사건의 보고·수사지휘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보고가 안 되거나 서초서의 상급 관서가 사건을 인지하지 못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김형동 의원은 “경찰이 이용구 차관 사건 발생 직전에 중요사건 보고 및 수사지휘를 일선 서에 특별 지시했음에도 서울경찰청과 경찰청에서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당시 사건 책임자였던 서초서장이 최근 요직으로 영전한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담당 수사관, 내사 종결 과정에서 큰 부담” 

당시 수사팀이 사건을 내사 종결하는 데 대해 큰 부담을 가졌다는 내부 증언도 있다. 복수의 서초서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담당 수사관은 파출소에서 특정범죄가중법 위반으로 인지해 넘긴 사건을 입건하지 않은 채 폭행 혐의로 바꿔 내사 종결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당초 경찰은 “지침상 사건 처리에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서울경찰청은 “서초서 담당 수사관인 A경사가 이용구 차관의 폭행 블랙박스 영상을 본 사실이 있다”며 진상조사에 나서는 한편 A경사를 대기발령 조치했다. 그리고 수차례에 걸쳐 사과했다. 이와 관련 중앙일보는 서초서 측 입장을 다시 들어보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동언)는 지난달 27일 서초서를 압수 수색을 하는 등 이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 관련 경찰의 봐주기 의혹을 본격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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