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도 안 봐준다, 英워런버핏 "탄소 감축 계획 없으면 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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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저널은 크리스토퍼 혼이 S&P 500 기업을 상대로 탄소배출량 감축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 캡쳐]

월스트리트 저널은 크리스토퍼 혼이 S&P 500 기업을 상대로 탄소배출량 감축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 캡쳐]

‘영국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는 억만장자 투자자 크리스토퍼 혼(54)이 글로벌 기업들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탄소 배출량 감축에 힘쓰지 않는 기업에 대해 주주들의 힘을 모아 공격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최근 세계 각국이 ‘탄소 중립(탄소를 배출한 만큼 흡수해 합을 ‘0’으로 만드는 것)을 선언한 가운데, 투자자로서 기업이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도록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2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혼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수십 개의 회사를 상대로 탄소배출량 감축 계획을 발표하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를 통해 내년 말까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에 편입된 기업 중 최소한 100개 이상이 기후변화 문제에 발 벗고 나서도록 하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을 경우, 주주투표로 압박할 방침이라고 WSJ은 덧붙였다.

크리스토퍼 혼이 운영하는 TCI는 '주주 행동주의'를 내세워 기업 경영에 관여한다. [TCI 홈페이지]

크리스토퍼 혼이 운영하는 TCI는 '주주 행동주의'를 내세워 기업 경영에 관여한다. [TCI 홈페이지]

혼은 전 세계에서 가장 수익이 높은 헤지펀드 투자사 중 한 곳인 TCI의 설립자다. 단순히 투자하고 배당을 받아가는 것을 넘어 주주가 기업 경영에 적극 개입한다는 이른바 ‘주주 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를 기치로 내세웠다. WSJ에 따르면 혼은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기업으로부터 속 시원한 답을 받을 때까지 끊임없이 질문한다. 그는 “주주로서 규제 당국이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만 기다릴 수 없다”며 “투자자들이 이 위협을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는지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TCI는 최근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 측에 ‘탄소 배출량 감축 관련 주주 결의안’을 보냈다. 미국의 대표 화물철도 업체인 유니언 퍼시픽과 에너지 음료 제조사 몬스터 베버리지도 혼과 관련된 비영리 단체로부터 최근 주주결의안을 받았다. 비슷한 움직임은 유럽과 호주 기업을 상대로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크리스토퍼 혼이 운영하는 기업 TCI는 최근 구글 모기업인 알파벳에 탄소배출량 감축 관련 주주 결의안을 제출했다. [AP=연합뉴스]

크리스토퍼 혼이 운영하는 기업 TCI는 최근 구글 모기업인 알파벳에 탄소배출량 감축 관련 주주 결의안을 제출했다. [AP=연합뉴스]

WSJ는 유니온 퍼시픽이 “주주들과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고, 환경·사회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알파벳과 몬스터 베버리지는 아직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크리스토퍼 혼은 지난 2019년 한 해 동안 19억 달러(약 2조1000억원) 이상을 벌어 헤지펀드계 ‘연봉 킹’에 등극했다. 이 해 혼이 운용한 개별 펀드의 수익률은 4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포브스는 지난해 그의 순 자산이 50억 달러(약 5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크리스토퍼 혼은 자메이카 태생의 유럽계 이주민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자동차 정비공이었고, 어머니는 법률회사 비서였다. 영국 사우스햄프턴 대학교에 진학했다가, 한 교수의 제안으로 하버드대학원에 진학해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투자회사에 취업했다가 2003년 TCI를 설립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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